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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윤 Aug 27. 2023

페스티벌


<짐 목록>

일인용 돗자리

보조배터리

에어팟

네임펜 3개

편지

에너지바

사탕

플랜카드

앨범

포토카드

지갑

모자

휴지

그리고 하루종일 서 있을 수 있는 내 체력

마지막 알람 5시에 맞추고 잠들기

페스티벌 가기 전 날 준비 끝


-

페스티벌


통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음악 페스티벌’ 이란... 예쁘게 입고 손엔 맥주 한 잔 들고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돗자리 펴고 앉아서 말 그대로 쉬면서 즐기고 느긋하게 나오는 그런 거다.

하지만 페스티벌을 가수 덕질로 가면 말이 달라진다. 여러 가수(래퍼)들이 나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래퍼)를 보기 위해 1시부터 길게는 10시까지 서있어야 한다. 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껴서 말이다.


지금부터 쓰는 건 이건 나의 루틴? 같은 거다. 일단 나는 성격이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 그런 성격이다. 스탠딩 공연이기 때문에 이왕 간거 1열 펜스를 잡아야 한다. 또 오늘 가서 앨범이랑 포토카드에 사인을 받고 와야지 하고 생각을 하고 나면 그걸 이뤄내기 위해 준비한다.


암튼 아침 5시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 5시 반쯤 나온다. 이건 첫 차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7시 정도 도착을 하게 시간을 맞춘다. 페스티벌 장소에 거의 다 와가면 그 주변 편의점을 서치해 음식을 산다. 난 공연 전엔 무조건 김밥을 먹는다. 김밥 한 줄과 반숙란 또 에너지바와 주전부리들을 잔뜩 사서 티켓부스 앞으로 간다. 7시면 이미 이른 시간이지만 밤을 새워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조건 있다. 그들 뒤에 가져온 1인 돗자리를 펴고 앉는다. 이제부터 기다림의 시작이다. 티켓부스는 대부분 12시에 오픈이다. 핸드폰을 하며 커피나 에너지음료를 마시며 잠을 깨고 나면 배가 좀 고프다. 9시쯤이다. 반숙란을 꺼내 먹는다. 그리고 10시쯤 김밥을 먹는다. 자리에 가방을 놔두고 공연장 밖을 한 바퀴 쭉 돈다. 11시. 이때쯤 되면 진행요원들이 돌아다니며 줄을 제대로 정리시켜 세운다. 12시. 티켓부스 오픈. 선착 입장이기에 사람들은 굉장히 예민해진다. 진짜 분위기 살벌하다. 내가 앞에 서있다고 해도 티켓부스에서 늦게 티켓을 채워주면 뒤로 밀려난다. 그래서 줄을 서며 여러 티켓부스 중 어디 앞으로 갈지를 본다. 그렇게 손목 밴드를 차고 나면 게이트 오픈까지 줄을 서서 또 기다린다. 1시가 되면 대부분 게이트가 오픈한다. 그럼 이제 또 전쟁 시작이다.

이게 제일 치열하다. 들어가기 직전 짐 검사를 하고 들어가는데 이것도 참 운이다. 암튼 짐 검사까지 마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이제 무대로 달린다. 사실 못 달리게 해서 경보로 걷는다. 이미 기다리면서 내가 어디에 설지를 정해놓기 때문에 그쪽으로 간다. 펜스를 잡고 섰다면 성공이다. 이제 내내 서서 내 래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마지막 순서로 나온다면... 그냥 그다음 날은 죽음이다. 사실 어제도 10시간을 서있었다. 그래서 펜스를 잡는 거다. 거기에 기대지 않으면 절대 못 버틴다. 허리가 너무 아프고 물도 못 마시고 에너지바 씹으며 버틴다. 서 있으면서도 두 번 다시는 못하겠다 싶다가 내가 좋아하는 래퍼가 나오는 순간 잊힌다. 그리고 나오기 직전의 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진짜 신기한 순간이다.


내가 라이브 무대를 가는 이유는 정말로 큰 에너지를 받는다. 이어폰 속에서 들리던 노래가 직접 들리고 , 래퍼의 제스처, 멘트 그리고 순간순간이 다 빛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더 나이 들면 절대 못할 거 같기에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도 있다.

무대가 끝나고 나면 공연장 밖으로 뛴다. 퇴근길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건 거의 복불복인데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지만 일단 오전에 공연장 밖을 한 바퀴 돌며 봐둔 주차장으로 간다. 퇴근길만 보러 온 팬들로 이미 가득하다. 그 속으로 파고든다. 운이 좋으면 가져온 편지를 전달하고 사인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내 래퍼가 퇴근하고 나서야 난 집으로 향한다. 지하철역은 붐빈다. 집까지 못 앉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하다. 집에 오는 내내 오늘 찍은 영상들을 본다. 집에 도착하면 배고픔과 피곤함 그리고 허리와 다리에 감각이 없다. 술 한 모금 안 마셨지만 숙취가 느껴진다.


내가 즐기는 페스티벌은 당일 오전 5시부터 시작되어 그 다음날 컨디션 회복을 하며 내내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공연을 보러 다녀오면 웃기지만스스로가 꽤 강해져있음을 ( 정신적으로도 )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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