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 동삼동 있는 패총 전시관에 갔다. 약 한 달 전,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을 치기 위해 공부하며 알게 된 곳이다. 몇천 년 전 신석기 사람들이 먹다 버린 조개더미(패총)가 이곳 부산 동삼동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도를 보면 왜 이곳에 패총이 발견되었는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동삼동은 영도구에 속해 있어 그 자체로 섬이고, 영도 내에서도 바다와 바로 접한 곳에 있다. 먹을 게 궁한 신석기 사람들은 조개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고, 먹고 남은 날카로운 쓰레기를 안전하게 한 곳에 모아두었다. 때로 박물관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데, 이곳은 그런 것을 몰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약간의 상상력과 가지고 있는 오감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그 심플함에 이끌렸다.
이곳 전시관은 규모가 작아 길게 잡아도 30분이면 관람이 끝난다. 빗살무늬 토기, 조개로 만든 각종 장신구, 동물 뼈, 토기에 새긴 그림 등등 짧은 시간 내로 감상할 수 있다.
빗살무늬 토기는 메인요리처럼 전시관 한가운데 전시되었는데, 그런 데는 이유가 있었다. 거실 식탁만한 큰 크기에 거의 동일한 간격의 빗살이 토기 전체에 걸쳐 정밀하게 새겨져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 교과서에 실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나았다. 실제의 크기와 그 표면에 새겨진 디테일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걸 만든 순간 도공이 다달한 몰입의 경지가 느껴진다. 지금 내가 토기 빗는 법을 배우고 몇 달 연습하면 저 정도 수준의 토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못할 것 같다. 해당 토기를 빚은 재주 좋은 도공은 지금 시대 태어났다면 돈을 꽤나 만졌을 것이다.
장신구 중에서는 조개 팔찌가 가장 눈에 띄었다. 조개껍데기 가운데를 원형으로 뚫은 단순한 형태의 팔찌였는데, 생각보다 근사해서 놀랐다. 수작업으로 만들었을 텐데, 반듯하게 원형으로 되어 있었다. 지금 착용해도 그렇게까지 이상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부 고운 아름다운 여성이 친구들과 해변가를 뛰놀며 백색 조개 팔찌를 찰랑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괜히 가슴이 뛰었다. 분명 그런 미인이 있었을 것이다.
유물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이곳에 살았던 신석기 사람들의 삶을 되도록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았다. 이상하게 그로부터 어떤 위안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이 작은 점 하나로, 축소되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인류사의 극히 일부를 보여주는 물질적 파편은 나를 과거의 사람들과 이어주었으며, 나에게만 사로잡힌 좁은 시야를 넓게 확장시켜 주었다. 나는 인류의 긴 역사 속 찰나의 순간, 특정한 공동체 속에서 작은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모두가 그랬듯, 유물과 관련 있는 그 옛날의 모든 사람이 그랬듯, 나 역시 곧 죽어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이상하게 위안이 되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