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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08. 2023

사원증과 명함의 회사로고가 나를 설명할 때

Motivation _ 외적동기_ 2. 명함값보다 이름값

물론 일반적이라고 단정할 생각은 없다. 회사의 배경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커리어를 효과적으로 만들어가는 직장인이 왜 없을까. 다만 조금이라도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대다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직이라는 거대한 사회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틀에 맞추어 살게 된다는 끔찍한 귀결을.


요즘 같은 시대에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라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익숙해지면 안주하려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안정감을 찾고 관계를 맺고 될 수 있으면 튀지 않고 오래 묻어가려는 생존본능이 작동한다. 운 좋게 유명 대기업에라도 입사하게 되면 회사 그 자체가 안주하기에 최상의 safety zone이 된다. 모든 생활패턴은 마치 블랙홀처럼 회사에 맞춰진다.  


물론 1년 3년 5년 단위의 이직 충동을 겪고 실제 행동에 옮기거나 아예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이를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기업 기준 평균 퇴사율(Turn over rate)은 10%가 채 되지 않고, 중소기업의 경우도 15%를 넘지 않는다. 통계라는 것이 특정 이슈가 있지 않는 한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는 경향성을 감안하면 요즘 세대는 밥 먹듯 회사를 그만둔다는 항간의 보도는 뭔가 과장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대졸 신입사원 1년 차 퇴사율만 떼고 보면 그 비율은 훨씬 더 높아진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는 대기업에 취업한 Z세대들의 1년 내 퇴사 비율이 30%에 육박한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단 대기업들의 대규모 공채 자체가 사라졌다. 많이 뽑는다면 그중 몇이 나가도 티가 안 나지만, 수시로 필요한 만큼 소수를 뽑으면 그만큼 퇴사율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선발 과정에서 역량이 검증된 소수의 유능한 인재들은 복수로 합격했을 가능성, 입사하더라도 타사에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될 가능성이 높아 이동이 상대적으로 수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들이 난립하며 선택 옵션이 많아진 것도 한몫 거들었다. 당장 두 명을 뽑았는데 그중 한 명이 나가면 퇴사율 50%다. 


결국 취업마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표면적 현상이 두드러진 결과일 뿐, 특정 세대의 독특한 특성으로만 보기엔 편협하다. 오히려 그 결과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1등 기업이 아닌 이상 대기업이라도 그럭저럭 무난한 수준의 인재들만 남게 되는 하향평준화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그들의 선배들이 그러했듯 조직에 스며들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직장생활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교묘히 가려진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조직이라는 거대한 압력에 찍소리도 못하고 기꺼이 부품이 되는 길을 자처해 그저 '길고 오래만 버티자'라는 굴욕적 목표를 처세술이라 합리화하는 타협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주체의 뾰족함과 할 말은 하는 야성은 끝내 뭉툭해진다. 


문제는 그래서는 좀처럼 동기부여가 안된다는 데 있다. 대기업로고가 박힌 사원증과 명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봐도 못 본 척, 아닌데도 예라고 하는 예스맨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자기 자신을 거기에 끼워 맞춰야 하는 인지부조화에 빠지고 만다. 어느 순간 자신은 사라지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식마저 무덤덤해진다. 오늘날 무수한 직장인들이 월요일만 되면 워킹좀비가 되었다가 금요일 오후부터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오는 이유다. 


나는 그렇지 않다! 자신 있게 부인할 이 시대의 신입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패기의 신입들은 이미 나가고 없다.




굵게 가야 길게 간다는 역설

가늘고 길게 가겠다는 결심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이름값을 갉아먹고 성장을 멈추게 해 기껏 그 조직에서만 통용될 뿐인 한계에 갇히고 만다. 고비마다 관계와 끈에 의존해 그 장벽을 넘다 보면 어느 순간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얕은 담벼락 하나 수월하게 넘을 수 없는 비루한 존재 '사회적 난쟁이'로 전락하고 만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역설은 실제 전투에서 압도적 승리로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해 내지 않았던가? 내가 원하는 분야를 찾고 그 일을 열정적으로 즐기며 역량을 키우기보다 관계부터 찾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굴해지면 비굴해질수록 가늘고 길게 남겠다는 목표는 점점 더 멀어지는 아이러니를 깨닫게 된다.


퇴사해 보면 그 진리는 더 선명해진다. 이전의 경력과 스펙은 회사 밖 야생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그 정도의 배경과 스펙을 가진 사람들은 시장에 널렸다. 아무리 현역시절 날고 기었어도 밖에서는 그저 개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S사 김 차장, L사 이 부장은 나를 설명해 주기에 충분했지만 회사와 직책을 뗀 자연인 이xx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회사 내에서 통용되는 전문성은 어디까지나 그 맥락 안에서만 유용하다. 내가 이 조직에서 무난히 일하고 평가를 받고 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량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쩌면 공들였던 관계가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맥락을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회사를 나와 오롯이 역량으로만 자신을 증명해야 할 때 큰 낭패에 빠지기 쉽다. 회사 내 에이스들이 스탠다드가 되어선 답이 없는 이유다.


No라고 말하라, 괜찮다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질문하고 답하고 행동하라. 기준에서 벗어나면 단호히  No 라고 하라. 괜찮다. 찍히지 않겠다며 몸 사리고 말조심하는 일은 마치 병균이 몸에 들어올까 무서워 무균실에 들어가 꼼짝 않고 있는 건강염려증 환자와도 같다. 


내 경우 실제로 내리 7년을 5명의 인사담당 임원과 갈등 관계에 있었음에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적은 드물었다. 의외로 상사들은 자신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실무자의 평가를 대놓고 박하게 주지 못한다. 나는 그 기간 동안 평균 이상의 고과를 받았고 승진도 누락 없이 제때제때 해왔다. 쟤는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이런 인식이 박히는 것도 괜찮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갈지자 행보가 평판에는 오히려 더 해롭다.


다만 상사와의 대립도 어느 정도여야지 극한 상황까지 치달아선 좋을 거 하나 없다. 퇴사 전 마지막으로 모셨던 담당임원과는 초기 1년간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대학 출신으로 나름 배려도 받았다. 문제는 1년이 시간이 지난 후 마치 간 보기를 끝냈다는 듯 돌변한 임원의 태도였다. 노골적으로 CEO의 의사를 받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선언하더니 구조조정을 포함한 인사제도들을 졸속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임원은 내게 새로운 팀을 신설했으니 그 팀장을 맡아줄 것을 제안하며 조직문화 업무를 당분간 접으라! 했지만 즉시 거절했다. 사실 그곳에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구조조정 과정 동안 조직문화 기능은 무용지물이 될 테니 타 팀에서 다른 역할을 맡고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조직문화를 시작하라는 의미였지만 알량한 영웅심리 때문이었던지 단호히 No를 했고 그 이후 기꺼이 갈등했다. 생각해 보면 두 눈 질끈 감고 임원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지금 다시 현역으로 돌아가 그 상황에 처한다 해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후회되는 부분은 내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얼마든지 부드럽게 또 예의를 갖춰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음에도 감정이 앞서 감히 인사권을 쥔 윗상사와 위태롭게 맞섰다는 점이다. 


얼마든지 No를 말해도 괜찮지만 상황과 타이밍 등 맥락을 충분히 감안해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 그저 뻗대기만 해서는 서로 괴롭다. 자기 소신을 지키면서도 win win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명함값을 벗고 내 이름값만으로 시장에 선 나 자신을 상상해 보라

단도직입적으로 4~50대 직장인들에게 묻는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면 뭘 해 먹고살건가? 퇴직금을 받아서 치킨집을 할 건가? 아니면 요즘 유행한다는 탕후루 사업은 어떨까? 집 사는데 돈이 모자라 이미 퇴직금을 중간 정산받지는 않았나?


사실 마흔이 넘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뭔가를 새로 해보기에는 부담이 크다. 이미 가정도 있고 이곳에서의 지위도 처우도 안정기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safety zone에 안주해 온 셈인데 이걸 굳이 박차고 나갈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회사가 평생을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다. 40대까지는 몰라도 50대가 되면 이곳저곳에서 눈치가 보인다. 선배들의 결말을 보면 뻔하다. 나라고 다를 일 없다. 사실 일반 회사원이 임원이 된다는 건 하늘에 별따기나 다름없다. 팀장을 몇 년씩이나 하고 임원이 되지 못하면 면직책을 걱정해야 한다. 


이제나 저제나 내려질 선고를 기다리는 미결수처럼 어느 순간 그날이 오면 최악의 경우 내가 데리고 있던 팀원이 팀장이 되어 그 지시를 받게 되는 모욕적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더러워서 나가자니 생계가 걱정이고 붙어 있자니 자괴감으로 괴롭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서 회사를 나간 선배, 동료 이야기를 들어보니 재취업도 쉽지 않다. 이직을 하려면 어떻게든 현역으로 있을 때 결론을 내야 한다. 이미 대리, 과장 시절 줄기차게 연락 오던 헤드 헌터를 통해 입질을 넣어봤지만 신통치 않다. 차장, 부장쯤에 이르면 몸이 무거워져서 이동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젊은 시절이라면 어디든 통했을 스펙과 현재 회사의 경력도 큰 효용이 없어 보인다.


이때, 내 분야가 선명하고 그 안에서 자타공인 프로페셔널이라면 딱히 고민할 일도 없다. 그 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 그만이니까. 이직을 하더라도 그 분야의 공인이라는 증거가 명확하면 이직도 쉽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회사라는 safety zone에 안주해 방구석 여포처럼 일해온 세월이 십수 년, 이미 야성도 내 개성도 뾰족함도 모두 사라진 지 오래다. 직무 역량이라 봐야 회사 내에서 이 팀 저 팀 돌며 익힌 수박 겉핥기 수준, 딱히 내 분야다 할 것도 없다. 자 이제 safety zone을 벗어나 자의 반 타의 반 맨몸으로 광야에 서게 됐다. 이제부턴 뭘 할 텐가?




회사의 명함값은 한동안 나를 증명해 주지만, 그 안에 머무르며 내 이름값을 희미하게 할수록 결국 내 손해다. 명함값을 벗고 발가벗은 상태로 거친 현실에 서 있는 나를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내 이름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장착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 그 일을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일, 스스로 동기부여 되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 그 일을 찾는 것부터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늦은 거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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