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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Apr 17. 2024

마흔다섯의 퇴사, 그 후 4년

퇴사를 하면 괜히 비장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퇴사 당일의 순간은

인생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점으로 남는다.


이직을 위한 퇴사라면 해당사항 없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이직할 곳을 정해놓고

퇴사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특히나 40대에 들어섰다면...


흔히 40대 이후 차부장급은 몸이 무겁다고들 한다.

이직시장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대상은

3년 차에서 8년 차 이내 시니어 사원~대리급이다.

취업 9수생이 아닌 이상 이들은 모두 2~30대다.


회사 내부에서도 차부장급은 부담스럽다

팀 옮기기도 힘들다.

엄청난 능력과 스펙을 가진 에이스급이거나

정기인사에서 팀장으로 팀을 옮기는 일이면 몰라도

웬만해선 타 팀 차부장을 받기 꺼려한다.


하여, 사십 대의 퇴사는 더 비장하다.

미래를 확정해 두고 여유롭게 현 직장을 떠나는 경우는

음... 드물다.


이때의 퇴사는 묘하다.

형식은 자발적이어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떠밀리듯 나가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가족을 생각해

참고 참지만,

욱 해서 '여기 아니면 굶어 죽나?'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여기, 나다.


나와 보면 알게 된다.

회사밖이 얼마나 힘든지.

S그룹 로고와 차장이라는 직책이

콱하고 박힌 명함값을 떼고,

내 이름 이XX로 독고다이

세상에 서는 일이 얼마나 춥고 배고픈 일인지.


위로금, 퇴직금의 규모와 관계없이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이 끊긴다는 건

삶에 무시무시한 위협이다.


퇴직금으로 몇 달은 버티겠지

그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지 피부로 느끼게 되는 순간

2천 원짜리 저가 커피 한잔에도 손가락이 움츠러든다.


퇴사 초기

밥 사주고 술 사주며 격려하던

주변인들도 점차 연락이 끊어진다.

먼저 연락할 일도 없지만, 어쩌다 소식이 닿아도

'요즘은 바빠서...'

라며 곤란한 마음을 표한다.


이해한다. 가족, 직장, 동료 우선순위에서

끈 떨어진 퇴직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리 없으므로.

결국 주위에 남는 건 가족 뿐이다.


딱히 갈 곳도 없고

집에만 박혀 있다.

타고난 집돌이, 집순이 내향인들도

숨이 턱 막혀 뛰쳐 나가고 싶은 순간이 온다.


술 한잔 생각이 들어도 속으로 삭인다

'내가 보자고 하는 것이 혹, 술 한잔 사달라는 말로 들릴까?'

싶어서다.

'내가 산다 나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한달 용돈 10만원 안쪽의 주머니 사정이 발목을 잡는다. 참아~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인간관계를 만들고 

적어도 유지하게 하는 무기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이미 돌아갈 다리는 불타 없어졌고

이렇게 된 거,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이라 여겼던

꿈으로 돌아간다.


하루종일 읽고, 쓴다.

먹고 읽고 쓰고. 자고

일어나 운동하고 쓰고 읽고


하루, 한 달, 일 년 그렇게 4년이 지났다.


그 사이 조직문화 관련 책을 두권 냈고,

밑 MEET이라는 나름의 조직문화 이론도 완성했다.

유튜브 채널을 준비 중이고,

영상 편집프로그램을 익혔고,

회사 이름을 지었고,

콘텐츠 로고도 한땀한땀 손수 만들었다.


이곳 브런치에도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구독자 830명을 넘었고

내 글과 생각에 호응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하나둘 생겼고,

연락이 끊겼던 지인 몇이

돌아와 응원해 주기 시작했다.


직장인 구독서비스인 퍼블리와도 접촉해

조직문화 밑 MEET을 주제로 콘텐츠 기획중이다.  


야심찬 프로젝트도 준비중이다

스타트업 인턴 도전하기.


영화 <인턴>에서 착안했다

비록 70대의 로버트 드니로는 아니지만, 인턴하기엔 늦은나이 아닌가? 마흔후반 인턴지원이라니. 

상식의 허를 찌른다.


장기 근무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딱 3개월이다.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는 현장의 감을 익힐수 있론을 적용해 볼 수 있다.

회사입장에선 17년 조직문화, 육성 부문 경력자를 

싼값으로 장기고용 부담없이 활용하면서 조직문화 방법론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서로 마음을 열고 각자의 강점만을 취하려는 자세로 일한다면,

딱히 손해 볼일은 없는 win-win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현장은 이론의 토대위에 서야하고
이론은 현장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력서를 작성하고 지원하고 도전하는

과정 자체를 생생히 콘텐츠화해 유튜브에 올릴 예정이다.


퇴사 후 4년, 

퇴사 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해야겠다 마음 먹은 일은 어떻게든 한다는 것이다.

회사라는 안전지대에서 막연히 이러면 좋겠다 생각만할 뿐

놓치고 말았던 일은 얼마나 많은가?


물론, 다 마음같지는 않다.

여전히 꿈을 향한 어둠의 터널은 길다.

어디쯤에 와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의 싹이 어딘가 움트고 있음은 감지한다.

가늘지만 분명한 빛의 신호,

바람의 소리, 세상의 말이 두런두런 들려오는 듯하다.


혹여 착각일지라도

언제가는 이 지난한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음을 확신하며

책상 앞에 앉는다.


내 손으로 내가 만들어가는 인생,

재밌지 아니한가?

회사에 남아 있었다면 꿈도 못꿨을

새로운 도전에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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