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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May 08. 2024

어버이날, 늙은 부모가 사준 냉면의 맛

화창한 5월 여덟 번째 날

반백 무명 글쟁이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맨손운동을 하고, 

계란과 사과와 견과류를 먹고, 

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부르르~'

엄마다


"여보세요~"

"점심은?"

시간을 보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먹어야지요."

"혼자 먹지 말고 건너와."

"여기도 먹을 거 있는데 뭐~"

" OO이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돈 보내줬어."

"아이고, 두 분 맛있는 거 사 드세요. 

나는 혼자도 잘 먹으니..."

"경동시장 가서 냉면 먹자고.."


그러고 보니 오늘이 무슨 날인가? 

어버이날이다. 

아차 싶다


비록 주말에 다 같이 모여 

어버이날 기념 식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날이 날인지라 덜컥 걸린다


알겠다는 말과 함께 쓰던 글을 정리한다

창밖을 살피니 어제와 다르게 화창하다

더울까? 옷을 뭘 입을지 몰라 고민하지만

사실 입을 옷도 별로 없다

집에서나 입을 얇은 면티를 입고 셔츠 한 장을 걸친다


햇볕이 뜨겁다

바람은 차다


버스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경동시장으로 달린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화창하고 쨍하다

차창 밖으로 

푸른 하늘과 솜사탕처럼 흩뿌려진 구름이

한가롭다


경동시장은 만물천지다

건어물과 

형체를 그대로 드러낸 붉은 고깃덩어리와

과일과 

산나물과 

한약재와 

나보다 늙은 사람들의 인파가 

생경하다


"어디셔?"

두 노인네는 벌써부터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경동시장 옛 미도파 건물을 지나 수십 년은 된

냉면집으로 향한다


따가운 햇볕에 금방 몸이 더워져

냉면집에 오길 잘했다 싶다

100여 평은 족히 돼 보이는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메뉴판을 보고 흠칫 놀란다

냉면 한 그릇이 14000원이

물냉 둘, 비냉 하나, 만두 한 접시를 시킨다


찬물을 따르고 

연이어 나온 육수도 따른다

육수 맛이 괜찮다


"갈비탕 하나 포장해서 XX 갖다 줘"

"어버이날이라고 전화 한 통 없는 녀석한테 무슨...

그리고 이거 다 내가 살 테니 돈 내지 말아요."


두 노인네가 질겁한다

"OO이가 돈 줬다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글 잘 되서 돈 벌면 그때 사"


때마침 냉면과 만두가 나온다 

못 이기는 척, 

수저를 놓고 

가위를 들어 면을 자르고 

겨자와 식초를 휘휘 두른다


물냉면 위의 편육과 반으로 자른 달걀이 

서로의 그릇 위로 오가고

후루룩후루룩 면발 치는 소리만 가득하다


시원하고

맛있다


부른 배를 두드리고 밖으로 나와

다시 오던 길로 걷는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두 노인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핸드폰을 들어 영상을 찍는다


찬냉면이

속에서 데워지기라도 한 걸까?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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