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조금 다른 독일의 유치원 이야기
아이의 국제학교 유치부 입학 두 달째.
정신없던 적응기가 끝나고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 들려주기 시작했다.
하루는 집에 와서 "엄마, 선생님이 이상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일인가해서 "왜? 뭐가 이상한데?"라고 물으니, 정말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나가서 놀래, 너무 심하지?"라고 말한다.
이 작은 아이의 눈에도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놀이터에 나가서 노는 게 많이 이상해 보였나 보다.
한국에서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거나 할 때는 나가서 놀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야외활동을 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정말 낯선 풍경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에 상관없이, 이제 막 3살인 아이들도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놀이터로 향한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더 신나게 물 웅덩이에서 뛰어놀았다고 했다.
실제로 하루 일과 중 오전, 오후 2번이나 놀이터 시간이 있을 만큼 바깥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야외활동의 시간은 점심시간보다도 길다.
전형적인 한국 엄마인 나는 노는 것보다 먹는 게 더 중요하고, 날이 안 좋을 때는 감기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데, 다들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거 보면 독일에서는 익숙한 풍경인듯하다.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북독일, 함부르크에서 해가 뜬날만 밖에 나가서 놀 수 있다고 한다면, 아마 밖에 나갈 수 있는 날이 1년에 50일도 채 안되지 않을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도시라 그런지, 다들 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우산도 잘 쓰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조금이라도 비를 피해보겠다고 머리에 손을 올리고 걷는다거나 뛴다거나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비가 오는 게 당연하고, 날이 좋은 게 더 이상한 것처럼, 날이 좋으면 오늘 왜 이렇게 날이 좋지 하고 모두가 햇볕을 쬐러 나간다.
또 한 번 아이가 말한다. "엄마, 선생님이 이상해."라고.
이번엔 무슨 일인가 보니, "엄마, 선생님이 손 씻는 물을 물병에 담아줘. 정말 이상하지?"라고.
독일에 온 지금까지도 나는 생수 대신 보리차를 끓여주는데, 여기서는 수돗물을 그냥 먹으니 아이의 눈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나 보다. 매일 자기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가는데, 그 물을 다 마시면 선생님들이 수돗물을 채워주니 한국 엄마들은 그게 싫어서 물을 2병씩 싸서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아이는 그렇게 조금씩 다른 점들을 받아들이며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즐겁게 학교에 다니고 있다.
내가 볼 때,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거의 모든 것이 스스로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옷 갈아입고, 밥 먹고, 화장실도 혼자서 들어가서 혼자서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어린이집에서는 다 같이 화장실 가서 선생님이 옷 정리까지 다 해주었다면 여기서는 모든 게 혼자. 어느 날부턴가 딸아이는 집에 와서 "엄마, 나 쉬하고 올게"하더니 화장실에 혼자 가서 쉬를 하고 옷을 입고 손까지 씻고 나온다. 오히려 그 모습이 낯선 내가 따라 들어가려고 하자 들어오지 말고 기다리라고 문을 닫아버린다. 낯설다. 모든 걸 해달라고 하던 우리 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반에 어떤 남자아이가 우리 딸을 너무 좋아하는데 매일 얼굴을 쓰다듬다 못해 만지고 혀로 얼굴을 핥고, 뽀뽀하고, 정말 과한 표현을 하는 아이가 하나 있다. 나는 몇 번 선생님한테 이 얘기를 했고, 한국 같으면 선생님이 당연히 개입해서 그 행동을 제지해주거나 아이들을 분리시켜 줄텐데, 여기서는 그것도 스스로 하는 걸 가르친다고 했다. 선생님은 누군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을 때는 자기가 싫다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 때는 "STOP"이라고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분명 그 상대 아이에게도 그 행동은 너무 과하니까 적당하게 표현하라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우리 아이에게도 거절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 뒤로 딸아이는 뭔가 자기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STOP"이라고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고 있는데, 살아가면서 당연히 배워야 하는 것임에도 아직 3살밖에 안된 아이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대견하기도 하다.
이곳에 와서, 혼자 하는 걸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아이가 혼자 조금씩 무언가를 해내가고 있다.
통제된 환경에서 규율이나 규칙은 잘 따르지만 자유롭게 활동하는 걸 할 줄 모르고, 혼자서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어쩌면 국제학교는 엄청난 도전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첫 OT 때 선생님은 혼자 있는 시간은 너무 중요하고, 우리는 여기서 그걸 가르칠 거라고 했는데 정말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공부는 나중이라고, 글씨는 7살 이후에 배울 거고, 심지어 글씨를 연필로 쓰는 건 7살 이후에나 하면 된다고 그 전에는 글자를 배우더라도 모래 위에 쓰거나 유리창에 써보던가 무조건 놀이라고, 노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었는데 진짜 그랬다.
첫 달에는 이름만 배운다고 했고, 내년 6월까지 일 년 동안 숫자는 5까지만 알면 된다고 한다.
'아니, 외국애들이 수학을 안 시키는 건 알았지만 5라고? 지금 한국 나이 4살인데 숫자 5라니, 이게 맞나?'
그리고 무슨 이름을 한 달 동안이나 배우나 했는데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가 아이가 막 쓰레기통으로 달려갔다. PUSH라고 써진 걸 보고 " 엄마, 내 S야."라고.
자기 이름의 첫 글자인 S를 보고 달려가서 저렇게 기쁘게 내 S라고 말한다. 엄마 S is for 누구누구누구.
"엄마. O는 올리비아의 O." 아 이렇게 배우는구나 알파벳을.
A is for Apple로 배우던 알파벳을 여기서는 같은 반 친구들 이름으로 배우고 있다. 독일에 오기 전 한국 어린이집에서 한주에 알파벳 하나씩 배워서 T까지 배우고 오긴 했는데 여기서 다시 이름으로 배우니 이제 알파벳을 볼 때마다 Apple이나 Book 같은 영어단어를 얘기하기보다는 친구들 이름을 얘기한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다른 이곳 생활과 교육에 잘 적응하고 있고, 이런 아이를 보고 있으니 나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그래, 한국에서처럼 빨리 안 해도 결국엔 다 하게 될 테니 그냥 천천히 재미있게 배워보자고, 실컷 놀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