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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영 Aug 23. 2022

일본에서 전직하기 #2

두 번째 이야기! 여전히 전직 얘기보다는 그냥 일반적인 회사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다.


일본에서 2번째 직장도 이전과 같은 SI회사였다. 이야기 전에 SI회사가 무엇인가 하면, SI는 System Integrator의 약자로 서비스 개발을 해주는 회사이다. 이 개발을 위해 각 회사에 파견을 보내는 게 SI 회사가 하는 일이다. 소속된 엔지니어는 영업팀이 소개해 주는 파견처에 가서 일을 하고 나머지는 일반 사무직과 다른 게 없다. 본인이 받는 월급이 실제 거래처가 주는 곳에 비해 얼마나 차이가 날까 궁금해할 수 있는데 신입의 경우 2.5~3배 정도 차이가 났던 거로 기억이 난다. 예를 들어 본인의 월급이 25만 엔이라고 하면 파견처에서는 60만 엔 대정도 지불하는 거로 알고 있다. 이것도 몇 년 전 이야기라 지금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물론 파견처에 따라 금액은 상이하고 본인의 실력에 따라서도 상이하다.


 다시 돌아와서, 두 번째 회사는 SI회사로 작지 않은 회사였다. 일본 내에 지점도 여러 개였고, 적어도 작은 회사들이 쓰는 편법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정도의 크기 였다. 연봉은 크게 높지 않았지만 보너스가 월급에 비해 꽤 컸고 미나시잔교라고 하는 월급에 미리 얹어주는 잔업수당이 없지만 분단위로 잔업수당을 지불하는 회사였다. 처음 들어가서는 좁은 사무실에서 대기를 하고 보안 관련 교육을 받았는데, 첫날에 바로 영업팀 사람이 면접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출근 첫날 파견처로 면접을 보러 갔다. 시멘트 블록 같은 작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에 삭막한 오피스였다. 역에서 꽤 걸어야 하는 곳이어서 약간 불만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기를 할 때와 파견처에서 근무할 때의 월급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나저러나 일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3일 뒤에 일을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아서 그 다음 주부터 출근을 했다.

 모 회사의 뉴스 서비스의 개발과 운영을 담당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일반 사용자가 사용하는 서비스에 대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기본적인 인프라는 파견처에서 담당한 상태여서 내가 하는 건 API와 batch를 만드는 것 정도였다. 릴리즈는 난 아예 참가를 안 하다가 8개월 이후에 조금씩 옆에서 지켜봤다. 


 팀 구성은,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기업 클라이언트 2명-> 개발을 담당하는 파견회사 사람 2명 -> 의뢰받은 개발을 직접 만드는 나 외 2명

으로 되어있었다.


 대기업 클라이언트는 내가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전혀 없었어서 잘 모르지만 매일 같이 야근하고 바빠 보였다. 파견회사 사람 2명이 리더로 있었는데 이 두 사람 다 실력이 굉장히 좋았다. 모르면 무조건 물어보라고 몇 번이고 말하고 실제로 귀찮을 정도로 물어봐도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고, 지시가 확실해서 내가 굳이 분위기를 읽어가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실력도 뛰어난 사람들인 데다가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는 사람들이어서 이때 많은 걸 배웠다. 일정도 항상 넉넉해서 데드라인 3일 전에는 릴리스 준비까지 완료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회사 개발하는 사람들도 다 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약간 커뮤니케이션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배려해주는 게 눈에 보였다.


 이때야 비로소 일반적인 일본에서 조금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월급이 적어서 허덕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입 개발자에게는 최적인 환경이었다. 8개월 정도 일했을 때는 릴리스를 어떤 순서로 하는 게 좋을지 내 의견을 물어봐주고, 내가 써온 설명서에 대해서 본인들의 생각대로 해라라고 하는 대신 왜 이렇게 했는지 내 의도를 먼저 물어봐주었다. 나를 신뢰하는 게 눈에 보였기에 정말 뿌듯했다.

 다만 단점이라고 하면,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월급이 적었고, 너무 안정적인 곳이어서 1년 정도 일을 하고 나자 지루해졌다. 발전도 정체가 되었고, 내가 사양도 설계해보고 싶고 좀 더 적극적으로 서비스 운영에 참가를 하고 싶었는데 내 자리는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넓은 오피스에 여성 개발자는 나까지 포함해서 3명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신입인 느낌이었고, 내 옆에 앉은 다른 분은 최소 15년은 일한 사람이었다. 서로 말은 자주 안 했지만 나중에 떠날 때 서로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말을 걸지 못한 게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영업팀에게도 파견처를 옮기고 싶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아직 때가 아니라고 기다리라고만 했다. 답답한 와중에 아는 언니가 모 회사에 소개로 넣어줄까?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곳은 한국에서부터 입사를 하고 싶었던 회사였기에 난 당연히 예스를 외치며 준비를 했다.


 이력서 넣고, 면접을 2번 봤는데 첫 번째는 기술면접을 봤고 두 번째는 인성면접을 봤다. 아, 그 이전에 동영성으로 자기소개 영상을 찍어서 올렸고, 코딩 테스트는 내가 이전에 이 회사의 다른 팀에 지원해서 테스트를 보고 패스를 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다시 보지는 않았다.


 인성면접은 100프로 영어로 진행됐다. 이건 좀 특수한 경우인 것 같았다. 토익점수가 990인걸 알자마자 계속 영어로만 진행했는데 문제는 면접관이 영본어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 들어본 영본어에 정말 정신이 혼미했었다. 뭔가 문장 구조는 영어인데 가끔 단어들이나 마지막 단어가 일본어여서 말을 제대로 이해를 못 했었다. 지금은 많이 적응돼서 그럭저럭 들렸지만 그때는 정말... 아 망했다 싶었다. 하지만 그때 소개해준 사람이 회사에서 나름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어서 그런진 몰라도 합격했다. 


그 이후에 이 회사에 지금 3년 넘게 근속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한 팀에서 쭉 일하고 있는데, 배워도배워도 모르는 건 항상 있는 것 같다. 팀은 같아도 조직 이동은 계속됐어서 각 조직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조직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알 수 있었다.


다음에는 어딜 갈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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