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양을 품은 별 Oct 07. 2024

단테의 별 - 1권 2부 14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존경도 사랑? - (6)

처음 시행한 야간자율학습으로 빚어진 야간학교학생들과 싸움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사춘기남학생들이 모여있는 학교라 끊임없이 다사다난했다.

덕일중2학년교실은 교실확장공사로 덕일고등학교 본관건물에 붙어있는 별관을 사용하였다.

중학교본관에 있는 교무실과 2학년교실이 꽤 떨어져 있어 감시와 통제가 느슨했다. 중학생들과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려고 덕일고학생들의 별관접근을 금지하였으나, 층을 오르내리는 출입통로가 겹쳐 완전한 분리는 불가했다.

서수연선생이 조회와 종례, 수업 등으로 2학년교실에 오갈 때마다 불쾌해하였다. 고등학생들이 휘파람을 불며 저속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서수연선생이 불러서 야단도 쳐봤지만 멈추지 않았다. 문승협이 보다 못해 반장의 책임감으로 교무실과 교실을 오가는 서수연선생에게 갖가지 핑계를 대고 따라다니며 에스코트했다.

점차 고등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중학생들을 해코지하였다. 수업전후에 지나가는 중학교여선생에게 성희롱을 하여 울리는 일도 늘어났다. 고등학교학생주임선생이 그런 학생들을 붙잡아 체벌하고 엄포를 놨으나 그때뿐이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중고등학교학생주임선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지키는 수고를 했지만, 매일 매시간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학교는 해결방법으로 쉬는 시간에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중고교 간 수업시작시간을 10분 차를 두었다. 그렇게 해소되는 듯하였으나, 고등학교수업시작 후 10분과 중학교수업종료 전 10분 사이의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떠들어 수업에 방해된다는 불평이 쌍방에서 이어졌다. 특히 쉬는 시간이 길게 겹치는 점심과 저녁시간이 골치였다. 학교는 학교별 출입제한구역을 두어 통제하고, 중학생들을 괴롭히는 고등학생은 엄벌에 처한다는 경고문으로 문제발생을 최소화하는데 급급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매점도 점심과 저녁시간에 이용시간을 30분으로 제한해 격주씩 중고교 간 선후교대로 이용하게 했다.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준비 못한 학생들은 이용가능시간까지 배고픔을 참고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따랐다.

원치 않은 불편한 동거를 감수하며 공동생활을 이어가던 중, 덕일중학교로 새로 부임한 고순영사회선생에게 치욕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다.

고순영선생이 별생각 없이 덕일고등학생들 이용시간에 매점에 갔다. 불량한 고등학생이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고순영선생의 치마를 들어 올렸다. 수많은 고등학생들 앞에서 속옷을 노출당한 성폭력이었다.

그 고등학생은 출동한 덕일중학생주임과 체육선생에게 붙잡혀갔고, 곧 덕일고학생주임에게 인계되었다. 분노에 찬 매를 맞고 반성문을 썼지만, 처음 본 여자라 선생인지 몰랐다는 어이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처음 본 여자한테는 그래도 되느냐는 벌로 퇴학을 맞았다.

여자선생들이 남중고매점 이용을 꺼리고, 여중고매점을 이용하는 이유도 그런 불상사 때문이었다.

고순영선생은 정상근무가 어려울 정도로 충격받았으나,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데다 사회과목을 대신할 선생이 없어 어려운 상황에서 근무를 이어갔다. 다행히 서수연선생이 동무가 되어주고 퇴근시간에도  동행했다.


야자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반아이들이 공부에 찌든 하루를 날려버리려 환호하였다. 먼저 책가방을 싼 순서대로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안광호와 이정훈이 가방을 챙기는 문승협을 기다렸다.

“아야, 오늘도 교무실로 갈 거여?”

“응, 좀 피곤하지만 당분간이라도 그렇게 하자.”

문승협주도로 퇴근길 서수연선생과 고순영선생을 경호하듯 버스정류소까지 같이 움직인 지 며칠 되었다. 야간학교학생폭행사건 때 야간학교학생들이 서수연선생에게 가해할까 봐, 문승협 혼자 호위하다 사건이 종결되고 중단했었으나, 최근 고순영선생사건으로 못난이형제들과 재개하였다.

문승협은 트라우마로 힘겨워하는 고순영선생도 걱정되었지만, 요즘 들어 고등학생들이 서수연선생을 거론하며 숙덕이는 말들이 신경 쓰였다.

셋이 교실을 나와 교무실로 가려고 계단을 내려갔다. 한 무리의 고등학교3학년들이 계단모퉁이에 모여 수군거렸다. 문승협은 무리를 지나쳐가다 서수연선생이름과 오늘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저만치 앞서 하교하는 황민과 송귀남을 불러 세웠다.

“민아, 귀남아, 오늘은 너희도 좀 같이 가자.”

“우리는 내일이잖애, 오늘 뭔 일 있냐?”

“야, 송사리 하고 황눈이, 느그들 딴 반됐다고 자꾸 쌩깔라하드라잉.”

“수다라, 염병 마라잉, 우리가 언제 서울놈 말 안 들은 적 있냐?”

“시끄럽다, 얼른 가잔께.”

문승협은 같은 반 안광호와 이정훈을 한 조, 다른 반이 된 황민과 송귀남을 한 조로 해서 하루씩 교대로 움직였었다. 오늘은 못난이5형제가 함께 하였다.

못난이5형제가 교무실 근처에 다다르자, 퇴근하는 선생들이 한 마디씩 하며 지나갔다.

“못난이들, 오늘은 다 모였다잉.”

“느그는 으째 집으로 퇴근 안 하고, 맨날 교무실로 출근하냐.”

“못난이5형제, 낼 보세.”

“네, 안녕히 가세요.”

“못난이들 왔네.”

서수연선생과 고순영선생이 교무실에서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인혜여중운동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야자가 끝난 밤늦은 하교시간이라 운동장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덕일학원재단 4개 학교는 산등성이 넓은 대지에 세워져 학교 간 담이 없었다. 다만 남중고와 여중고의 교문은 따로 있었다. 등하굣길도 방향이 달랐다. 여선생들은 주로 인혜여중고교문을 이용하고 가급적 덕일중고교문을 피했다.

못난이5형제가 서수연선생과 고순영선생을 에워싸고 걸었다. 인혜여중고학생들이 벌써 다 하교했는지 드문드문하였다. 교문 밖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어 어두웠다. 문승협은 다른 때보다 긴장했다. 서수연선생이 당면이든 튀김만두가 당긴다며 잠깐 들러 먹고 가자고 하였다. 고순영선생이 반색하며 동조했다. 분식집에 들어갈 때까지 이상징후는 없었다.

“못난이5형제가 우리를 보호한답시고, 이렇게 매일 고생하는데,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지.”

“입은 삐뜰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던디, 선상님은 입도 이쁘믄서 말 좀 바로 하쑈.”

“내가 뭘?”

“우리같이 쬐깐한 땅꼬마들이 뭔 힘 있다고 선상님을 보호한다요, 성깔 무서운 선상님이 우릴 보호하믄 했제. 안 그냐 아그들아?”

“아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라고, 지금은 배고파갖고 보호할 힘도 없다야.”

“호호호, 뭐라고?”

“얘들아 조심해, 그러다 선생님한테 맞는다.”

“야 너희들, 내 성격 건드린 거지 지금?”

“오메, 내가 실수해 부렀어야. 무담씨 사자코털을 건드려갖고, 인자 으짜까잉.”

“오호, 내가 여우도 아니고 사자라고? 좋아, 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마. 아주머니, 여기 당면튀김만두랑 고기찐만두 70개씩 하고요, 떡볶이 7인분 주세요. 너희들, 오늘 이거 다 안 먹으면 집에 못 가.”

“서선생님, 너무 많지 않아요?”

“호호, 괜찮아요 고선생님. 얘네들 이거 다 먹고, 아마 더 먹을 거예요. 애들이 보기와는 달리 식성이 어마어마해요, 한창 먹을 때잖아요.”

말수가 적어 사람들과 대면대면한 고순영선생은 제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서수연선생이 부러웠다. 저런 귀여운 제자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면서, 사이좋은 스승과 제자의 모습에 덩달아 즐거웠다.

주문한 음식을 반쯤 먹어갈 즈음, 서수연선생이 추가 주문해서 먹으면 시간이 늦어진다며, 당면튀김만두와 고기만두 5개씩 7인분을 포장주문하였다.

분식집에서 나올 때는 모두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 가까워지고 맛있게 먹은 즐거움에 잠시 방심한 사이, 어두운 골목에서 건장한 사내 10여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서수연선생일행을 가로막았다. 문승협과 황민이 반사적으로 앞을 막아섰다.

“어이, 백설공주와 다섯 난장이, 어딜 그리 바쁘게 가시까?”

“아야, 뭔 백설공주냐, 성질이 까실까실한 까실공주믄 모르까.”

“당신들 뭐예요?”

“우리? 우리는 선량한 동네사람인디? 으째, 우리랑 연애 한번 하까?”

앞에선 불량배가 시비를 걸자, 서수연선생이 문승협 뒤에서 긴장한 목소리로 정체를 물었다. 사내가 이죽거리며 희롱하는 틈에, 문승협이 불량배들을 살펴봤다.

불량배들 중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교실에서 교무실에 가려고 내려오다 보았던 덕일고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다시 찬찬히 보니 그때 계단모퉁이에 모여서 수군대던 무리였다.

“덕일고3학년. 아까 학교에서 봤는데, 맞죠? 이분들은 덕일중선생님이세요, 아시잖아요.”

“그것이 뭐 으쨌다고. 우린 담뱃값이 쪼께 필요하고, 연애나 찐하게 한번 하까 한디?”

“말조심해야, 고3이믄 다여?”

“이 째깐한 새끼가 디질라고.”

“허억.”

문승협이 서로의 신분을 아니 물러서라고 했음에도, 불량학생이 서수연선생에게 모욕적인 성희롱을 했다. 황민이 격분하여 불량학생의 멱살을 잡았으나, 오히려 덩치와 키차이에 밀려 멱살을 잡히고 숨 막혀하였다.

문승협이 재빨리 멱살 잡은 불량학생의 팔을 꺾어 자빠트렸다. 1년 동안 배운 합기도기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불량학생들과 못난이5형제가 서로 덤비려는 순간, 서수연선생이 막아서며 소리쳤다.

“너희 3학년 몇 반이야, 이 자식들 얼른 길 안 비켜?”

“서 서선생님, 담뱃값이나 주고 그냥 갑시다, 네?”

서수연선생은 폭력에 겁 없이 맞섰지만, 고순영선생은 무서워 사시나무 떨듯했다. 주섬주섬 핸드백을 열고 지갑을 찾았으며, 타협을 해서라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문승협은 팔을 꽉 움켜잡는 서수연선생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다. 불량학생들에게 공격받으면 꼼짝없이 당할 처지였으나 불안감보다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불량학생 중 한 명이 흠칫 놀라 한마디 하자 일제히 도망갔다.

“야, 내빼. 느그들 담에 또 보자잉.”

“야 이노무 시끼들아, 거그 서.”

서수연선생 뒤쪽에서 덕일중 양명기체육선생이 소리치며 뛰어왔다. 양명기선생이 가까이 와서 숨을 고르더니, 뛰어오던 길을 돌아보며 들어가라고 손짓하였다. 지켜보던 분식집아주머니가 손을 흔들었다.

“선상님들, 어디 다친 데 없소? 느그들은 괜찮냐?”

“네, 저희들은 괜찮은데 선생님들이 많이 놀랐어요.”

“양선생님,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저그 분식집 옆집에서 하숙 한디, 분식집아줌씨가 알려줍디다.”

“고마워요, 이렇게 와주셔서.”

“아니어라, 일이 있으믄 마땅히 와야지라. 안 다쳤은께 천만다행이요.”

“쉬시는데 미안하네요.”

“아따 그런 말 마쑈. 오늘은 늦었은께 언능 집에 가시고요, 자초지종은 낼 학교서 야그 합시다. 갑시다, 버스 타는데 까지 모시 께라. 고선생님은 완전히 얼어부렀네요잉, 저 썩을 노무 시끼들을 으째야 쓰까.”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선생님, 지난번 일도 있어서 많이 놀랐죠? 저런 녀석들은 적당한 대가를 주는 타협으로는 안 멈춰요, 약한 모습을 보이면 계속 공격하는 습성이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서선생님.”

양명기선생의 배웅으로 버스를 탄 시간은 밤 11시가 다되었다. 통행금지 전 막차에 가까웠다. 야간자율학습으로 학교에서 버스회사에 요청하여 버스운행시간을 늘렸기에 가능했다.

서수연선생이 불안정한 고순영선생을 집에 데려가 같이 자기로 하였다. 서수연선생과 비슷한 버스노선인 황민과 송귀남, 안광호가 먼저 탔다. 문승협은 이정훈과 같은 노선이어서 뒤이어온 버스를 탔다.

“아야 승협아, 나는 이 와중에도 이 비닐봉다리를 꽉 쥐고 있었어야. 환장하겄다 참말로, 허허.”

“너도 많이 긴장했구나.”

“아야, 간 떨어진 줄 알았단께. 근디 으짜까, 그 놈들이 복수한다고 또 찾아오믄?”

“피하려 하면 두렵고, 이겨내려 하면 방법이 있을 거야, 너무 걱정 마.”

문승협은 버스에서 내리는 이정훈을 안심시키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이정훈을 내려준 대신 불안과 두려움을 태워 출발했다. 문승협은 불량학생들 중 뒤쪽에 서있던 덕일고3학년학생얼굴이 기억났다. 일전에 성희롱적 발언으로 서수연선생에게 불려 왔었다. 그때 우리 반아이들 앞에서 호되게 야단맞았다. 어떤 형태로든 또 복수할 거라는 예감이 들어 더욱 심란하였다.

문승협은 집에 도착해 아직 잠들지 않은 동생들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어서 먹으라며 종이봉투를 꺼내 펼쳤다. 불량학생과 몸싸움에 고기찐만두는 옆구리가 터졌고, 당면튀김만두는 괜찮아서 먹을 게 있었다.


다음날 아침, 먹다 남은 만두찌꺼기를 본 할머니 박옥춘이 빈정댔다. 자기들끼리 몰래 맛있는 거 사다 먹는다며 비꼬았다. 문승협은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하면서도 섭섭해서 하는 말로 이해했다. 엄마 이항리는 생트집 잡는 시집살이라며 못마땅해했다. 문승협은 이일로 또 엄마와 할머니가 싸울까 봐 노심초사하며 등교하였다.

아침 조회가 끝난 뒤, 서수연선생이 문승협을 불러 다치진 않았는지 근심스레 살펴보았다.

“어제일 말이야,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절대 불의에 타협하지 말라는 선생님말씀이 저의 신념이에요.”

“너는 보복이 두렵지 않니?”

“제게 선생님이 있어서 두려울 게 없어요.”

서수연선생이 웃으며 문승협손을 잡아주었다.

양명기선생이 점심시간에 체육실로 오라고 못난이5형제를 호출했다. 야자시간이 시작되면 덕일고학생주임인솔로 덕일고3학년교실을 돌 거라며, 어제 불량학생들을 색출하라고 하였다. 함께 갈 테니 너무 두려워마라며 안심시켰다. 문승협은 친구들이 노출되어 보복당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제가 불량학생들 얼굴을 정확히 아니까, 대표로 저 혼자 갈게요.”

“객관성 있이 확인할라믄, 두 명은 가야쓴디?”

“지가 같이 가께라우.”

황민이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다른 못난이형제들도 가겠다고 했지만, 문승협이 만류하였다. 못난이5형제가 다 같이 가면 금방 눈치채고 나중에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이윽고 야자시간이 되었다. 양명기선생이 문승협과 황민을 데리고 덕일고3학년교실로 올라갔다. 복도에서 기다린 덕일고학생주임이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먼저 본인이 교실에 들어갈 테니 안 보이는 곳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학생들을 눈감게 하겠다며,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내면 그때 들어오라고 했다. 잘 살펴본 뒤 불량학생이 있으면 손으로 지적하라며 대화와 말은 금지시켰다. 신원노출을 완전히 막을 순 없으나 최소한의 방법이니 명심하라고 하였다. 이윽고 덕일고3학년 1반 교실로 들어갔다.

“다들 공부하느라 고생 많제. 선상님이 확인할 것이 있어서 왔은께, 쪼까 협조하자잉?”

“예.”

“그라믄 전부 똑바로 앉아서 눈을 감는다, 실시.”

“실시.”

“실눈 뜨지 마라잉. 실눈 뜨다 걸리믄, 오해받아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은께.”

덕일고학생주임이 눈을 감았는지 확인한 뒤, 교실 밖으로 나와 문승협과 황민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지휘봉으로 학생들 쪽을 가리키며 확인하라고 하였다.

문승협과 황민은 같은 절차로 1반에 이어 2반도 확인했지만, 그때 보았던 불량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5반과 6반에서 한 명씩 지목하였고, 그 두 명이 앞에 나섰던 주동자였다.

덕일고학생주임과 양명기선생이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주동자를 찾았으니 나머지 불량학생들은 곧 색출될 거라며 여기까지만 확인하자고 했다. 문승협은 교실로 돌아와 서수연선생에게 보고하였다.

문승협은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평소보다 긴장하여 서수연선생을 에스코트했다. 서수연선생과 안광호가 버스에 오르고서야 안심하고 이정훈과 다음 버스를 탔다.


이틀 뒤 주동자 2명과 가담자 7명이 확인되었다. 그중 가담자 4명은 큰 도로 건너 홍인고학생들이었다. 주동자 2명은 정학 3개월을 받고, 나머지는 근신 1개월에 처하였다. 선생을 위협한 사건이라 특별한 관심 속에 속전속결이었다. 문승협은 덕일고 운동장에서 작업하는 근신처분받은 가담자들을 보았다.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동선을 피했다.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생각에 매일 긴장된 하굣길이었다. 서수연선생은 금세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으나 불안해하는 문승협을 걱정하였다.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앞으로 하굣길동행이 아닌 에스코트의미라면 사양하겠다고 했다. 문승협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어 동의하였다.

어제는 안광호와 이정훈이 동행했고, 오늘은 황민과 송귀남이 서수연선생과 먼저 버스에 올랐다. 문승협이 출발하는 버스를 확인하고 분식집으로 갔다. 서운해하던 할머니마음을 풀어줄 생각에 고기찐만두와 당면튀김만두를 포장하였다. 흐뭇하게 분식집을 나와 큰길 버스정류소로 향했다. 갑자기 길가 만화가계에서 두 명이 튀어나와 문승협의 양팔을 잡아끌고 옆골목으로 갔다. 기다리고 있던 일행이 무방비상태의 문승협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문승협은 맞으면서도 머리와 얼굴을 가리며 버텼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 나타나 문승협을 폭행하는 아이들과 싸웠다. 문승협도 일어나 반격하였다.

문승협을 때린 아이들은 3개월 정학당한 덕일고3학년 주동자 2명과 일당 3명이었다. 문승협을 도와 싸우는 아이들은 덕일중3학년 남강과 홍인중3학년 박현이었다.

몇 차례 주먹과 발이 오가고, 덕일고3학년 불량학생들이 싸움에 밀리자 도망쳤다. 주위에는 뒤늦게 달려온 홍인중 박현의 후배들과 싸움구경하는 학생들이 꽤 모여있었다.

“괜찮냐, 안 다쳤어?”

“네, 형들은 괜찮아요?”

“잉, 우리는 괜찮해. 근디 저 아그들은 누구여?”

“덕일고3학년들이에요.”

“얼마 전에 서수연선생님하고 느그들 협박한 놈들?”

“네.”

“그 썩을 시끼들이 복수하러 왔그만.”

“어떻게 아세요?”

“아야, 여그 바닥 소문은 천리마여, 오늘 일도 내일 아침이믄 쫙 퍼질 것이다.”

“남강형은 학교에서 자주 뵈는데, 박현선배님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뭐시어, 오강은 형이고, 나는 선배여? 이것이 한 따까리 해야 쓰겄네?”

“빡힌아, 니가 맨날 고리타분한 선배행세한께 그런 것이어.”

“하하, 오강은 남강형 별명인지 아는데, 박현형의 빡힌은 무슨 뜻이에요?”

“이 눔 시끼, 하늘 같은 성들 별명을 함부로 입에 올려? 진짜 너 한 따까리 해야겄다.”

“박현눈에 한번 박히믄 끝장 본다는 뜻인디, 아무 맹탕 없어야.”

“하하, 왠지 어울려요 형.”

“어허 이 눔 시끼, 일루와 한 따까리 하자, 허허허.”

“형들 아니었으면 많이 다쳤을 텐데,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성들이 그런 상황이믄, 니는 모른체끼할 거여? 똑같은 마음이여, 고마워할 거 없어.”

“근데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버스 탈라고 기다리다, 니가 나타나길래 반갑게 아는체끼할란디, 그런 상황이었제.”

셋이 모두 같은 집방향이라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문승협이 먼저 내렸다.

문승협은 버스에서 내리고서야 긴장이 풀렸다. 군데군데 몸이 욱신거렸다. 집에서 알게 될까 봐 가로등 밑에서 모자를 벗어 교복에 뭍은 흙을 털어 냈다. 차 한 대가 멈추더니 뜻밖에 홍지아를 내려놓고 출발하였다.

“어? 홍지아.”

“괜찮냐, 어디 안 다쳤어?”

“…….”

“내가 다 봤어야. 그냥 도망치제 뭐 한다고 싸우냐, 다치믄 으짤라고.”

“어쩔 수 없었어, 갑자기 덤비는 바람에.”

“잉, 받어, 내가 떨어진 거 챙겨 왔어. 내가 하나 묵었다잉, 맛나드라.”

홍지아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문승협은 그제야 만두봉투를 잊은 걸 알았다.

문승협이 비닐봉지를 받아 들자, 홍지아가 뒤로 돌아보라고 했다. 뻘쭘히 돌아선 문승협 등에 뭍은 흙을 털어주었다. 다시 문승협 앞으로 와서 교복어깨를 털었다. 문승협이 홍지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어, 심장 뽀개지믄 책임질래?”

“…….”

“어허, 쳐다보지 마란께는. 나 갈란다, 담주에 보자.”

홍지아가 다급히 털어주고 집으로 뛰어갔다. 문승협은 다음 주에 보자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였다.

문승협은 집에 도착해 만두봉투를 할머니에게 드렸다. 박옥춘이 시큰둥히 받아 들었지만, 다음날 등교하는 문승협에게 지나가는 말로 잘 먹었다고 했다.


남강이 등교해서 어제 보복당한 문승협이야기를 서수연선생에게 말하였다.

깜짝 놀란 서수연선생이 문승협을 불러 다친 곳은 없냐며 여기저기 살폈다. 문승협의 떨림을 모르는지, 미안하다면서 문승협얼굴을 어루만졌다. 앞으로 문승협말에 귀 기울이고 조심하겠다며 빤히 바라보았다.

문승협은 서수연선생시선을 보고서야 어제 홍지아가 말한 ‘심장 뽀개진다’는 의미를 이해했다.

문승협심장이 빠르게 요동치는 만큼, 중2가 고3 여러 명을 때려눕혔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문승협은 자신을 바라보던 서수연선생의 눈빛과 얼굴을 어루만진 손길이 자꾸 떠올랐다. 무슨 감정인지 도덕적으로 가져도 되는 감정인지 혼란스러웠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참 민감한 사춘기의 중학교2학년이어서 생각이 많았다. 정신적으로는 자아의식이 높아지고, 신체적으로는 2차 성징이 나타나는 때였다. 심신양면으로 변화되는 인간발달단계의 중요한 시기였다.

서수연선생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못난이5형제를 교무실로 불렀다.

“너희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어, 솔직하게 대답해 주길 바란다.”

“뭔디라, 뭔디 요로코롬 진지하시까잉.”

“우리가 또 솔직 빼믄 시체인지 우째 아셨으까?”

“최근에 말이야, 성과 관련해 발생한 사건 있니? 보거나 듣거나 또 고민되거나, 뭐든지 있으면 말해봐.”

“뭐 뭔 성을 말하요?”

“남성, 여성, 그런 성?”

뜬금없는 질문에 못난이5형제가 당황해 입을 열지 못하였다. 서수연선생은 수줍어하며 모른척하는 제자들이 귀여웠다.

“호호, 왜, 성에 관한 질문이라 부끄럽니?”

“…….”

“어휴, 바보들. 그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야, 인간이면 누구나 겪어 가는 거라고.”

“아따 선상님은, 부끄러운디 으째 부끄러워하지 마라 하요. 부끄러운께 부끄러운 건디.”

“호호호, 너희들이 솔직히 말해줘야, 선생님이 파악하고 교육을 시키든 말든 할거 아냐.”

“근디, 그것을 으째 우리한테 물으시까잉. 우리는 암것도 몰라라우. 아따 불편시럽네.”

“그렇게 모르는 게 문제고, 어설프게 알아서 문제가 되고, 잘못 이해해서 문제가 커지는 거야.”

“선상님, 뭐시 알고 싶은디요? 구체적으로 말씀하쑈, 뜬구름 잡게 하지 마시고라.”

“좋아, 그럼 구체적으로 질문할게. 지난번 3반에서 여선생님 치마 밑으로 거울을 댔다가 걸려서 혼났지? 왜 그런 거야, 그러고 싶은 심리가 뭐야?”

“고것은 그놈이 못할 짓을 했지라, 어디 선생님한테 그런다요.”

“그럼, 선생님이 아니면 괜찮아?”

“…….”

“너희들 이상한 만화도 많이 본다며, 왜 보는 거야?”

“…….”

“너희들 수염도 나지? 자위가 뭔지 아니? 자위를 왜 하는 걸까?”

“…….”

“성관계, 임신, 피임, 성행위에 대해서는 들어봤어?”

“…….”

“사랑이 뭔지 알아? 사랑은 어떤 감정일까?”

“…….”

“얘들아,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지 않으면 나비가 되지 못해, 다 성인이 되는 과정이야. 정신을 지배하는 게 육체고, 정신이 건강해지려거든 육체를 잘 보살펴야 해.”

서수연선생이 학교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토대로, 마치 설문조사하듯 폭풍질문을 이어갔다. 역시나 못난이5형제는 얼굴만 빨개질 뿐 어떤 대답도 못했다.

서수연선생은 성지식이 백지상태인 아이들이 우려됨과 동시에, 적절한 방식의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확신하였다. 어찌해야 할지 다방면으로 고민했다.

먼저 교무회의에서 무지한 학생들의 성지식이 오히려 성문제를 유발한다며, 외부전문가를 초청한 성교육필요성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선생들뿐 아니라 교장선생과 교감선생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교안을 만들어 전체 학생들에게 교육해 보겠다고 했음에도 학교는 외면하였다. 더욱이 선생들도 그래 왔던 것처럼, 성문제는 자연스럽게 알아가면 될 일이라는 교장선생발언에 실망했다.

하는 수 없이 담임으로서 맡은 반아이들만이라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야자시간에 남녀신체사진을 비롯한 성징을 반아이들에게 설명하였다. 바람직한 성관리, 해서는 안될 행위 등을 교육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며 반응도 시큰둥했으나, 마무리될 즈음 반아이들의 밝아진 모습과 계속 이어진 열성적 질문은 왜 성교육이 필요한지 확인시켜 줬다.

남자선생이 남학생들에게 성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만 해도 야릇한 시선을 보내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여자선생이 성교육을 하였다는 파격적인 소식은 전교생에게 단번에 퍼져나갔다. 급기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성교육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학생들 요구를 받아들인 성교육시간 내내 학교의 우려와 달리 무척 진지했다. 물론 교육 중에 얄궂은 질문에 지나친 성적표현도 있었지만, 서수연선생만이 갖은 특유한 유머와 재치로 유쾌하게 극복하였다. 선생들과 교장선생, 재단에서도 참관했다. 곧이어 덕일학원재단 4개 학교 순회강연을 하였다.

서수연선생은 단아하면서 왜소한 외모임에도 단호한 말투에 호감 가는 목소리를 가졌고, 학생들 편에서는 특유한 친화력에 재치와 유머를 겸비했다. 기본적으로 남녀학생들에게 인기 있었으나, 이를 계기로 인기가 더욱 많아졌다.

문승협은 서수연선생인기가 높아진 것은 좋았지만, 열성적으로 환호하는 덕일중고학생들과 이에 호응하는 서수연선생사이에서 묘한 질투를 느꼈다. 인혜여중고여학생들을 상대로는 느껴지지 않는 이 질투심이 존경과는 또 다른 감정임을 인정하면서도,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바 없었다. 혼자 끙끙거리며 ‘존경도 사랑일까?’라는 자문으로 애써 덮어버렸다. (계속)


이전 13화 단테의 별 - 1권 2부 1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