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7)
문승협은 아침에 일어나니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공부를 하려고 시립도서관에 갔다. 명성윤이 친구들과 휴게실에 모여 있었다. 입장하여 들어오는 문승협을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빨리 오라며 손짓하였다.
“아그들아, 여름방학인디 우리 캠핑 한번 가자.”
“좋제, 어디로 가끄나?”
“가는 건 좋은디 언제 캠핑을 가봤어야제, 텐트랑 장비도 없고.”
“승협이 있잖애, 보이스카우튼께 잘 알 거 아니어.”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이미 보이스카우트에서 가기로 했어.”
“어디로 간디야?”
“다음 주에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갈 거야.”
“우리도 거그로 가믄 되제. 느그는 며칠 간대?”
“2박 3일.”
“우리도 2박 3일로 해갖고, 보이스카우트캠핑 끝나는 날 명사십리서 만나믄 안 되까?”
“그렇게 되믄, 승협이가 명사십리서 4박 5일을 보내야 된디? 으째, 괜찮하겄냐?”
“음, 학교보이스카우트하고 집이랑 허락받아볼게.”
“오케바리. 그라고 우리가 잘 모른께야, 니가 준비물이랑 좀 쫙 적어주라.”
명성윤이 주도하여 친구들과 함께 캠핑 가자고 제안했다. 문승협은 먼저 계획된 보이스카우트하계캠핑 때문에 어렵다고 하였지만, 조운대가 장소와 일정을 연계하자고 제안해 성사되었다. 다들 캠핑경험이 없어 문승협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피서철이 왔다. 문승협은 보이스카우트에서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캠핑을 떠났다.
3일째 되는 날 문일고보이스카우트는 오전에 철수해 돌아갔고, 친구들이 오후에 합류하였다.
“승협아, 혼자서 우리 기둘리느라 심심했겄다잉?”
“얼마나 기달렸냐?”
“두어 시간 됐을 거야.”
“친구들 잘 둬서 니가 고생이다야, 쪼까 미안한디?”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참, 인사해라. 여그는 내 사촌 김달우여.”
문승협은 대부분 친구들과 학교생활하면서 가까워졌다. 키 크고 잘생긴 홍인고등학교 김달우는 처음 만났으나, 김영후와 옆집 사는 친척이면서 다른 친구들과 친했다. 김영후만 가족과 한번 캠핑 간 경험이 있고, 다들 첫 캠핑인 데다 친구들끼리라 엄청 들떠있었다.
문승협의 지휘아래 캠프를 설치하였다. 무더위를 식히려고 한바탕 해수욕을 하면서 비치볼로 배구를 했다. 김달우가 큰 튜브를 빌려와 깊은 물 경계선까지 갔다 왔다 하였다. 너나없이 달라붙어 튜브를 뒤집고 물에 빠트렸다. 편갈라 물 싸움하다 물 먹이는 장난을 쳤다. 다들 백사장에 누워 모래찜질을 했다. 모래밭에 줄을 그어 저녁당번내기로 3대3 족구시합을 하였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자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준비에 들어갔다.
족구에서 진 문승협이 같은 편 명성윤과 조운대를 이끌고 쌀과 야채를 씻어왔다. 석유버너에 불 붙이는 시범을 보여주려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알코올을 부어 충분히 예열한 뒤, 펌프질 하여 압축시킨 공기로 분사되는 석유에 불을 붙였다. 보기에는 쉬워 보였으나 막상 해보면 실패하기 일쑤였다.
족구에서 진 팀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이긴 팀 김영후와 김달우는 장기원을 따라 방파제 쪽으로 갔다. 저녁준비가 다 됐을 즈음 돌아왔다. 이따 손님이 올 거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명성윤이 밥을 뜸 들이고, 조운대가 찌개에 간을 했다. 김영후가 삼겹살을 구워 먹자고 주문하였다. 문승협이 근처에서 양철통을 가져왔다. 그 위에 넓적한 얇은 돌을 물로 씻어 올리고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조운대가 김치찌개와 반찬들을 먹기 좋게 펼쳐놓았다. 명성윤이 밥을 퍼 나눠줬다. 문승협은 예열한 돌판 위에 삼겹살과 잘 읽은 김치를 올려 구웠다. 삼겹살이 어느 정도 읽어갈 즈음, 김영후가 소주 3병을 가져왔다. 장기원이 종이소주잔을 돌리자, 김달우가 한잔씩 따르고 건배를 제의했다.
“아그들아, 잔 들어, 한잔 하게.”
“고1이 뭔 술이대? 여그도 학생지도선상이랑 경찰도 있는디, 걸리믄 으짤라고 그라냐?”
“어허이 성윤아, 꼰대 같이 으째 그냐? 이런 데서나 한잔 해보는 거제 어서 묵겄어?”
“그래, 괜찮해, 우리끼린디 뭐 으짠대?”
“취하믄 으짤라고야?”
“운대야, 취하믄 텐트에 들어가서 자, 그라믄 돼.”
“얘들아, 그래도 술은 좀 그렇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 보호자도 없는데.”
“아따 연설하네, 이럴 때나 해방감 느끼믄서 한잔 하는 거여, 뭔 겁이 그리 많냐?”
“그래, 씨잘데없는 말 그만하고, 다 같이 한잔하자.”
“아따 팔 떨어지겄다, 언능 잔 들어야?”
명성윤반대에 이은 조운대걱정에 문승협도 우려하였으나, 김영후와 장기원이 쫑크주며 음주를 독려했다. 음주반대파는 김달우독촉에 못 이겨 잔을 주섬주섬 들었다. 소주잔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더니 알코올향에 미간을 찡그렸다.
“청춘을 위하여, 건배.”
“건배.”
음주찬성파가 소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크’ 소리를 내고 인상 쓰며 아무렇지 않게 삼겹살에 김치를 얹어 안주로 삼았다. 음주반대파 문승협과 명성윤은 술잔을 들고 친구들을 관찰했다. 조운대가 호기심에 반잔을 마시고 잔뜩 찡그리더니 얼른 삼겹살을 집어 입에 넣었다. 문승협과 명성윤에게 괜찮다고 표정 지었다. 명성윤이 용기를 얻어 소주잔을 쳐다보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한 번에 털어 넣고 허겁지겁 삼겹살을 집어 먹었다. 문승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친구들까지 마셔보라고 문승협에게 권유하였다. 문승협은 망설이다 몇 번에 걸쳐 반 잔을 마셨다. 겨우 소주반잔에 술기운이 점점 올라왔다.
“난 집에서 할머니가 담근 포도주나 모과주는 몇 번 먹어봤는데, 이런 소주는 처음이야.”
“나도 막걸리 데워갖고 설탕 탄 거는 묵어봤는디, 소주는 맛이 허벌나게 쓰다야.”
“난 아부지가 집서 반주로 마실 때 몇 번 묵어봤어.”
“와따, 느그 아부지 멋지다잉.”
“옆에 앉아 뭔 맛인지 물은께, 묵어보라고 주드라.”
“아야, 막걸리나 포도주나, 마시고 알딸딸한 거는 이 소주랑 다 똑같어.”
“1인당 반 병씩 해서 3병 사 왔은께, 자기 할당량은 책임져라잉, 알았제?”
“야, 나는 더 못 마시겠다. 벌써 취한 거 같아, 어지럽고 심장 뛰는 소리가 막 들려.”
“하하하. 승협아, 겨우 반잔 묵고 그라냐, 예끼 시끼.”
얼굴이 하얘지면서 취기 오른 문승협과 다르게 조운대와 명성윤은 조금 빨개졌다. 김달우와 장기원은 홍당무처럼 시뻘게지고 약간 취했다. 김영후만 할당량 소주 반 병을 마셨음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식사와 술자리가 마무리될 즈음, 여자 3명이 김달우와 장기원을 찾아왔다. 밥 먹기 전에 언질 하였던 손님이었다. 족구승리팀이 방파제에서 만나 알게 된 여학생들이었다.
족구패배팀은 예상치 못한 여자손님이라 당황했다. 승리팀은 여학생들을 기다리던 중이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김영후가 조운대를 데리고 상점으로 갔다. 남은 친구들은 서둘러 식사자리를 정리하였다. 김달우가 돌판을 치운 양철통에 나뭇가지를 더 넣어 모닥불을 키우고 둘러앉으라며 권했다.
김영후와 조운대가 박스를 안고 돌아왔다. 조운대가 먹거리를 세 군데에 나눠놓고 새우깡과 포테토칩 봉지옆구리를 뜯었다. 김영후가 크라운캔맥주와 OB캔맥주를 하나씩 나눠줬다. 조선맥주와 동양맥주에서 새로 출시한 거라고 하였다. 장기원이 나서 소개를 주도했다.
“우리 남자들 소개했은께, 인자 그짝들 소개하쑈.”
“우린 나주영산여상1학년이고요, 친구끼리 왔어라.”
“아따 이름을 밝혀야제라.”
“아, 김은혜여라.”
“지는 이정선이어라, 만나서 반갑소.”
“나는 박선영이고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디, 서로 말 놓고 재밌게 놉시다.”
“와따 화끈하그만잉.”
김영후가 캔맥주를 따서 들어 보였다. 다들 캔뚜껑을 땄다. 김영후의 건배선창에 따라 호응하며 캔맥주를 들이켰다. 문승협은 취기가 있어 입만 댔다. 대신 조운대가 건네준 야채크래커를 꺼내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술이 떨어져서 김영후와 조운대가 다시 사러 갔다. 장기원이 게임을 할 거라는 핑계로 여학생들에게 남자사이사이에 앉으라고 하였다.
이정선이 문승협과 김달우 사이에 앉았다. 김달우 왼쪽에 앉은 김은혜 옆으로 장기원이 갔고, 박선영이 그 옆에 자리했다. 캔맥주를 사 온 김영후가 박선영 옆을 차지하자, 조운대는 김영후와 명성윤 사이에 앉았다.
문승협은 왼쪽에 앉은 여학생을 어색해하며 오른쪽에 앉은 명성윤에게 귀엣말로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명성윤이 자기도 쑥스럽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영후가 사 온 캔맥주를 하나씩 또 돌렸다. 문승협만 아직 마시지 못한 캔맥주를 더해 두 개였다. 첫 번째 캔맥주는 반도 마시지 못했다.
끝말잇기와 앞사람동작을 따라 하는 사치기게임이 몇 차례 돌았다. 김달우가 가져온 카세트에 여름캠프노래 테이프를 넣고 틀었다. 다 같이 ‘연가, 조개껍질 묶어’등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옆사람 손바닥을 치는 게임을 이어갔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가고 잠은 오질 않네, 랄랄 랄랄랄라 랄라랄 라랄랄라~’
문승협이 옆자리 이정선의 손을 의식하다 박자를 놓쳤다. 당황해서 명성윤의 손바닥을 두 번 연속 쳤다. 친구들이 반도 더 남은 맥주를 다 마시라는 처벌을 내렸다. 실수한 대가치고 술을 못하는 문승협에게 중벌이었다.
장기원이 수건 돌리기 게임을 하자고 하여 자연스레 자리이동이 생겼다. 김달우가 네 번째에서 술래에게 잡혔다. 벌칙으로 기타 치며 ‘꿈의 대화’를 불렀다. 여학생들이 키 크고 잘생기긴 김달우에게 열렬히 환호하였다. 장기원이 시계방향순서로 노래자랑을 하자며 일어나 노래했다. 문승협은 게임벌칙으로 마신 맥주에 취해 졸았다. 조운대가 노래 부를 즈음 누군가 모래 속에 묻힌 문승협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문승협은 손크기나 감촉으로 여자임을 직감하였지만, 비밀스러운 떨림에 취기까지 더해 눈을 뜰 수 없었다. 명성윤노래에 이어 문승협 차례가 되어 여자손이 쑥 빠져나갔다. 친구들이 술 취해서 조는 문승협순서를 건너뛰라고 했다. 옆에 앉은 여학생이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문승협은 자기 손을 잡았던 손주인이 지금 노래하는 여학생으로 짐작했다. 게슴츠레 눈을 떠 보았으나, 술 취해 어지러운 정신이라 여학생옆모습이 흐릿하였다. 금세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다시 졸았다.
문승협이 취한 정신에 중간중간 얼핏 보니, 신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친구들과 여학생들이 고고춤을 췄다. 쾌쾌한 냄새에 눈을 떴을 때는 언뜻 담뱃불이 보였다. 친구들에 의해 어딘가로 들려가는 느낌이 마지막이었다.
다음날 잠에서 깼을 땐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널브러져 있었다. 간밤에 친구들 장난의 희생양이 되었다. 친구들은 새벽 늦게까지 놀아서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문승협은 어젯밤 놀았던 자리를 정리하고 쌓인 설거지를 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친구들을 깨웠다.
“야, 다들 일어나, 빨리 일어나서 라면 먹어. 라면 불어, 빨리 일어나라니까.”
“몇 시냐?”
“12시 다돼간다, 빨리 일어나 라면 먹어.”
“잉, 알았다 알았어, 알았은께 그만 보채야.”
“다들 아주 꼴좋다, 도대체 몇 시까지 논거야?”
“동틀 녘에 파장했은께, 새벽 다섯 시는 됐겄다.”
“여학생들은?”
“즈그 텐트로 갔어.”
“별일 없었지?”
“잉, 뭔 일이 있겄냐.”
“다행이네. 근데, 누가 나 백사장에 뉘어 놨냐?”
“아따 술 먹어서 그런가 머리가 띵하다잉.”
“긍께 말이어, 어른들은 뭘라고 이런 술을 먹는지 모르겄다야.”
“야, 누가 나 백사장에 팽개쳐놨냐고?”
“승협아, 라면 잘 묵으께.”
친구들은 문승협 물음에 모른 척 딴소리했다. 엉기적엉기적 텐트에서 나와 라면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어제 먹다 남은 찬밥을 말아 김치반찬에 배를 채웠다. 배가 부르자 하나 둘 어제 이야기를 꺼냈다.
“아야, 우리 어제 술 얼마나 묵었냐?”
“각기 소주 1병에 캔맥주 5개씩은 묵었을 것이다.”
“1인당 그렇게나 많이 마셨다고?”
“잉, 생전 처음이다야, 허허허.”
“너희들 아주 미쳤구나. 너희들 담배도 피웠지?”
“술 취해서 잔 놈이 별 걸 다 봤다잉.”
“시끄러, 빨리 대답해 봐.”
“잉, 한번 피워봤는디, 담배는 아니드라. 안 그냐?”
“맞어, 술도 좀 그러긴 한디, 담배는 영 아니드라. 코도 싸하고, 목도 쬐깐 따끔하고.”
“담배는 어디서 났는데, 샀어?”
“아니, 어제 그 가시나들이 피우더라고. 그래서 호기심에 한 까치 얻어 피워봤제.”
“너희들 완전히 비행청소년이네. 그 여학생들도 술담배까지 하는 불량학생 아니야?”
“아야, 우리가 술담배해서 비행청소년에 불량학생이믄, 술담배 하는 어른들은 뭐대?”
“어른은 성인 이잖아,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지?”
“아따 꼰대 납셨네.”
“승협아, 걱정 말어, 우리 술담배는 여그서 끝인께.”
“그래, 목포 가믄 하도 안 해, 걱정 붙들어 매라잉.”
문승협은 전교 10등 안에 드는 모범생들 탈선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행여 습관 되거나 문제 될까 봐 걱정했다. 한편으로는 때와 장소를 가려 호기심을 해소해 버리는 친구들 용기가 가상하였다. 끊고 맺는 결단력이 부럽기도 했다.
“오후에 태풍 온다더라, 내 생각엔 텐트철거하고 민박 잡는 게 좋을 거 같아.”
“알겄습니다요 대장님, 대장님 말씀 들어야지라우.”
“쫄따구들, 텐트철거 후 주변정리 한 다음에 민박 잡는다. 그 뒤 뭐 할지는 상황 봐서 결정하고, 알겠나?”
“근디 주변정리를 꼭 해야 쓰까, 무자게 피곤한디?”
“야, 주변정리 원상복구가 캠핑의 끝이야.”
“아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잖애?”
“어허, 올림픽개최를 희망하는 대한국민이, 어디서 이런 후진국스런 발언을 할까?”
“오메 안기부서 나왔소, 선상님 무자게 겁나부요야.”
“하하하, 허허허.”
점점 비바람이 거세졌다. 해변에 텐트를 쳤던 해수욕객들이 민박집으로 몰렸다. 몇 집을 방문한 뒤에야 겨우 민박을 잡았다. 방안구석에 짐을 풀었어도 10여 명은 넉넉히 잘 수 있는 큰방이었다.
명성윤과 조운대는 숙취로 괴로워하며 방에 벌렁 드러누웠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비가 멈추고 바람이 조금 잔잔해졌다. 다른 친구들은 해변가를 거닐면서 바다를 향해 돌을 던지며 지루함을 달랬다. 김달우가 갑자기 문승협과 어깨동무하고 무릎쯤 차는 바닷물 속으로 데려갔다. 강제로 문승협의 양손을 자기 허리에 감아 포즈 잡으며 사진 찍어달라고 소리쳤다. 김영후가 거목나무에 매미 붙었다고 놀리며 앵글을 맞춰 셔터를 눌렀다. 문승협이 부쩍 커서 172Cm가 넘어섰지만, 김달우는 187Cm로 머리 하나만큼 차이 났다.
문승협은 김부일소개로 친구가 된 유도무제한급 국가대표유망주 광주체고 이정국이 떠올랐다. 이정국은 김달우와 키는 비슷하나 120Kg 정도 펑퍼짐하게 살 찌운 체형이고, 김달우는 80Kg 정도 나가는 헬스로 단련된 늘씬한 몸매였다.
김달우가 문승협을 양팔로 번쩍 안아 들었다. 문승협이 굴욕스럽다며 발버둥 치니 한달음에 나와 모래사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아래서 올려다본 김달우가 새삼 거대하였다. 잘생긴 얼굴에다 균형 잡힌 체격에 공부도 잘하니 남자가 봐도 멋있어 보였다.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기까지 했다.
김영후가 문승협에게 같이 사진 찍자며 카메라를 김달우에게 건넸다. 이를 지켜보던 장기원이 모래사장 너머 길 쪽을 보더니 뛰었다. 어디 가냐고 물어도 대답 없이 손만 흔들었다.
문승협과 친구들은 사진을 마저 찍고 길 쪽으로 걸었다. 어젯밤에 같이 놀았던 여학생들과 장기원이 함께 있었다. 여학생들이 내일까지 일정이 남았는데 아직 민박집을 찾지 못해 난감하다고 하였다.
“기원아, 일단 우리 숙소에 여학생들 짐을 놓고, 같이 가서 민박집 좀 찾아봐.”
“그라믄 쓰겄다, 나도 같이 가께.”
“그라까 그라믄?”
문승협은 선의로 여학생들을 도와주자고 했으나, 김달우가 같이 가겠다며 나서고, 장기원이 선뜻 그러겠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낯선 이성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상한 점은 장기원이 신경 쓰는 김은혜는 김달우에게 시선을 자주 보냈고, 김달우가 눈길을 주는 이정선은 문승협을 의식하였다. 박선영은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장기원과 김달우는 여학생들 이름을 정확히 아는 반면, 문승협은 어렴풋했다.
명성윤과 조운대가 여전히 숙취에 힘겨워하며 방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장기원과 김달우가 여학생들 짐을 들여놓고 바로 민박집을 찾으러 나갔다.
장기원과 김달우가 한참있다 돌아왔다. 여학생들 민박집을 구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을 어찌할지 물었다. 명성윤이 날라리여학생들 같다며 어울리는 걸 반대하였다. 장기원은 적극 나서 여학생들을 변호했다. 문승협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성윤아, 날라리든 아니든, 이 날씨 이 상황에서 여자애들을 모른 체하면 그게 남자냐?”
“그라믄 으짜자고야?”
“기원아, 여학생들은 어디 있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제.”
“안 그래도, 여그 민박집주인이 혼숙은 절대 안 된단디, 방법이 없잖애.”
“만약에 내가 승낙받아오면, 너희들 동의할 거냐?”
장기원과 김달우가 기다렸다는 듯 동의하였다. 김영후와 조운대는 어떡하든 상관없다고 했다. 명성윤이 법적으로 혼숙은 금지됐다며, 욕먹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다수결에는 따랐다.
문승협이 친구들 동의를 얻어 민박집주인을 찾아갔다. 설득 끝에 어렵사리 승낙받다. 장기원과 김달우가 재빨리 여학생들을 방으로 데려왔다.
“뭐라디?”
“혼숙하다 걸리면 곤란하다고, 절대 안 된데.”
“그래서 뭐라 했냐?”
“평상시가 아닌 태풍 때문에 발생한 일인데, 천재지변이면 법도 이해한다면서, 따님이 친구들과 여행 갔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쩌시겠냐고 말씀드렸어.”
“민박집주인에게 딸 있는 거는 어뜨크롬 알았냐?”
“입구에 걸려있는 가족사진 보니까, 딸이 둘이더라.”
“그란께 허락해 주디?”
“응, 비용 더 낸다는 조건으로, 별일 없게 하겠다는 각서 써주고 왔다.”
“오메, 승협씨 고마워서 으짜깨라.”
“그란께, 정말 다행이다야. 감사 하요 승협씨.”
“아니에요, 우리 상황을 이해해 준 민박집주인에게 감사하세요.”
“어젯밤에는 주구장창 반말 까놓고, 갑자기 뭔 존댓말이까잉.”
“성윤아, 고마운께 그러제, 별 걸 다 트집이냐.”
문승협은 민박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추가비용지불과 남녀 간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거라는 각서를 써줬다. 무엇보다 친구들의 착한 심성을 믿었다.
고민거리가 해결된 여학생들이 가져온 짐들을 방안에 정리했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놀면서 먹을 주전부리를 사 오겠다며 밝은 표정으로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장기원이 이상하다며 밖으로 나갔다.
얼마 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무슨 일인지 우르르 나가보았다.
장기원이 여학생들을 뒤에 세우고 모르는 남학생 세 명과 대치하였다. 서로 금방이라도 싸울 태세였다.
모르는 남학생들이 상점에서 나오는 여학생들을 따라와 같이 놀자며 희롱했다. 때마침 혼자 마중 나간 장기원과 맞닥뜨렸고 힘으로 어찌해 볼 심산이었다.
“기원아, 뭐더냐 안 들어오고?”
“아야, 이 호로시끼들이 디저불라고 까분다야.”
“뭔 일인디?”
“이 째깐한 시끼들이 우리 여자친구들한테 히야까시 걸고 있드란께.”
남자 다섯 명이 잇따라 나오자, 모르는 남학생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겁먹고 줄행랑쳤다. 장기원이 도망가는 남학생들 뒤통수에 대고 의기양양하게 한바탕 욕을 해댔다. 그만하라고 말리는 김은혜에게 마지못해 참는척하면서 마치 여자친구 대하듯 다친 데 없냐고 물었다. 김은혜는 괜찮다면서도 김달우를 쳐다봤다. 김달우시선이 이정선에게 가있었다. 밖에 나갈 때는 여자들끼리 다니지 마라며 손에 든 물건을 건네받았다. 같이 가줄 테니 어디 갈 때 말하라고 재차 강조하였다. 이정선은 알았다면서도 문승협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문승협은 순간 어젯밤 술 취한 정신에 봤던 흐릿한 인상을 보았다. 모래 속에서 손을 잡은 여학생이 김달우가 관심 가진 이정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