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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별 – 2권 1부 23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23)

by 태양을 품은 별

안 좋은 일은 겹쳐온다는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말처럼 문승협도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중 하나는 4월 월말고사성적표였다. 비록 시험기간 동안 벼락치기공부였지만, 밤잠을 설치며 열심히 했음에도 전교 52등으로 추락하여 충격받았다. 만사노력이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짜증 났다. 학생에게 성적은 성공의 지표이자 상징이며 삶의 전부였다. 특히 내년 대학입학학력고사를 앞둔 문승협에게는 무척 중요한 시기였다.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심정을 이해할 만큼 괴로웠다.

설상가상 지금 안방에서 부모싸움이 벌어졌다. 엊그제 끝난 줄 알았는데 어버이날선물을 이유로 재발하였다. 문경준과 이항리는 부부싸움에서 금기해야 할 불문율을 지키지 않았다. 시댁과 처가를 포함한 상대부모를 비교하고 모욕하며 언쟁했다. 서로 격분하여 폭력이 오가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갈수록 과격해지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자식들은 패닉상태에 빠지기 마련이었다. 문현아와 문윤아가 겁에 질려 오빠방으로 피신하였다. 문승협은 눈치 보며 들어오는 동생들을 침묵으로 수용했다. 불안해하는 동생들을 달래 보려고 책꽂이에서 볼거리를 찾아 건넸다. 문현아와 문윤아는 방바닥에 앉아 잡지책을 펼쳤으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놓은 문승협 또한 마찬가지였다. 계속되는 부모싸움으로 세 남매는 공포에 숨죽이며 바들바들 떨었다. 문승협은 더 이상 아버지가 화내지 않도록 엄마가 그냥 가만히 있어주기를 빌었다. 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안방에서 왜 싸움을 말리지 않느냐는 엄마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외면하였다. 문현아가 억눌린 울음을 참지 못하고 가늘게 떨리는 숨소리를 내며 흐느꼈다. 문승협은 어릴 적 문현아가 부모싸움에 놀라 바지에 오줌 쌌던 일이 떠올랐다. 문득 싸움이 커지지 않게 엄마의 말대꾸가 멈추길 바라며 폭력을 방관하는 자신이 비굴해 보였다. 나중에 자신을 붙잡고 원망할 엄마의 한탄이 상상되었다.

문승협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귀신에 홀린 듯 안방으로 건너가 문을 벌컥 열었다. 대뜸 아버지 문경준에게 그만하라며 소리쳤다. 문경준은 아들 문승협이 대들자 황당했다. 아무리 부부싸움을 해도 자식들만큼은 손대지 않았으나, 순간 분에 겨워 욕을 하고 세차게 때렸다. 문승협을 뒤따르던 문현아와 문윤아까지 다들 놀랐다. 일시 정적에 휩싸였다. 문승협은 아버지의 욕설과 따귀에 아픔보다 죽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문경준은 흥분을 감추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세 남매에게 방으로 가라고 버럭 하였다.

이항리가 허겁지겁 자식들을 앞세우고 나와 문승협방으로 갔다. 이항리의 입술이 터지고 눈이 벌겋게 멍들었다. 세 남매는 처참한 엄마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문현아가 상비약통을 가져와 치료했다. 문윤아는 엄마손을 꼭 붙들고 위로하였다. 이항리가 서럽게 울었다.

자식들은 부모가 싸우는 원인을 알 때도 있고 모를 때도 있다. 때론 누구의 잘못인지 생각해 본다. 정작 이유보다는 부모의 싸움자체가 두려움이며 충격이다. 혹여 자기 문제로 싸움이 일어나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 든다. 세 남매도 마찬가지였다.

문승협은 아버지에게 대항한 일이 처음이라 온몸이 떨렸다. 자신의 행동이 장남이라는 책임감과 상처받았을 여동생들 때문이었기에 용기인지 반항인지 헷갈렸다. 아버지와 사이에 더 높아진 벽을 느꼈다. 동생들을 보니 언제부터인지 자신과 비슷하게 변해있었다. 집을 나설 때와 들어올 때의 표정이 정반대였다. 밖에서는 말도 잘하고 표정도 밝았지만, 집에서는 무표정하고 꼭 필요한 말 외엔 하지 않았다. 애석한 마음에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부모가 싸웠을 때를 돌이켜봤다. 부모와 같이 살면서도 버려진 기분이었다. 어느 때는 나를 주어왔나 의심하던 적도 있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 상처받으면 애정결핍에 시달리거나 인정욕구가 많다.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일이 안 풀리면 자책하고 관계에 집착한다. 소유욕에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혼자 있으면 우울해져 높은 타인 의존도를 보이며 회의적이다. 인정욕구가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 피해 줄까 봐 걱정하고 존재를 인정받으려 애쓴다.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을 터뜨린다. 자책, 집착, 질투, 불평이 계속되면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서 주변사람이 떨어져 나간다. 인간관계가 파탄 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필요 없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현실과 감정을 분리하여 직시하고, 자신의 감정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문승협도 애정결핍에 시달리고 인정욕구가 많으나 다행히 비관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관찰과 생각이 깊어 통찰력이 뛰어났다. 눈치가 빨라 늘 주위를 배려하고 희생과 헌신에 자연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참아내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아버지 문경준은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아들 문승협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별일 아닌 것처럼 무시했다. 아들에게 사과함으로써 체면과 권위를 잃을지는 모르나, 부자간 사랑회복과 존경을 얻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악몽 같은 토요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일요일아침 거실에 걸린 괘종시계가 10시를 알릴 때 전화벨이 덩달아 울렸다. 도서관에 가려고 준비하던 문승협이 쭈삣하여 얼른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승협이 오빠네집이죠?”

“어, 나야.”

“잘 있었어?’

“응, 너는?”

“승협아, 누구 전화냐?”

“내 전화예요 고모.”

코롬방제과점에서 마주친 이후 10일 만에 온 정난희전화였다. 다소 가라앉은 서먹한 목소리였다.

“이제 괜찮아, 말해.”

“저 저기, 오빠집에 초대했잖아, 가도 될까?”

“응, 언제 올래?”

정난희가 집초대에 응하는 것은 사귄다는 의미인지라, 문승협은 기쁜 마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하였다.

“음, 월말고사 끝나는 다다음주 토요일에 갈까?”

“그래, 몇 시에 올 거야?”

“다섯 시에 석빙고에서 만나자, 만나서 같이 가, 나 혼자 오빠네집에 가기 좀 그래.”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하자.”

“그럼 그때 봐, 나 지금 무용 연습하러 가야 해.”

정난희는 자기 용건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문승협은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잠시 바라보았다. 코롬방제과점에서 만난 남자선배에 대해 설명해 줄줄 알았는데 언급이 없었다. 아쉬움을 접고 방으로 가 책가방을 챙겨 들었다. 부모싸움으로 착잡한 데다 집안분위기가 좋지 않아 기분이 뒤숭숭했다.

그런데 집을 나서자마자 우울감이 사라졌다. 도서관에 가면서 무의식 중에 콧노래가 나왔다. 공부를 하면서도 허파에 바람 든 사람처럼 실실 댔다. 다른 사람이 보면 실성한 사람이었다. 부모싸움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아 가족들이 힘겨워하는 와중에 이래도 되는지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래도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표정을 감추지 못해 천영기와 이담에게 무슨 일인지 심문당하였다. 끈질긴 추궁에 못 이겨 다다음주 토요일 정난희의 집방문약속을 이실직고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각별히 표정관리에 조심하였다. 언제쯤 엄마에게 정난희의 방문소식을 전할지 고민했다.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늦어도 다음 주말쯤에는 염치불고하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월요일 학교에서도 드러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해 김부일에게 들켰다.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며 어쩔 수 없이 말하였다. 김부일도 천영기와 이담처럼 말로는 축하한다면서 달가워하지 않았다. 정난희를 탐탁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짐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이 내 선택을 존중해 줄 거라며 스스로 다독였다.

삶에 희망이 생기면 시간도 빨리 가는지 일과수업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저녁도시락을 먹은 후 교실청소시간에 담임선생이 교무실로 호출하였다. 담임선생책상에 생활기록부와 성적표가 놓여있었다. 짐작대로 성적하락 때문에 면담이었다. 밀어준 의자에 최대한 공손하게 앉아 죄인처럼 고개 숙였다. 앞으로의 목표와 진로, 꿈을 묻길래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담임선생이 놀라면서 실망스럽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문승협은 속으로 도대체 꿈이 뭐길래 벌레 보듯 하냐며 따졌다.

세상 어디에도 언제 꿈을 가져야 한다는 법은 없다. 목표와 진로를 정하고 꿈을 가지면 그대로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더구나 관심 가져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남의 꿈에 왜 이리 관심이 많은지 짜증 났다. 그래도 아무 관심 없이 방관하는 다른 선생에 비하면 복에 겨운 일이었다.

조현동선생은 늘 엄숙하고 근엄하며 진지하였다. 엇나간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존경스러운 선생이었다. 학교생활에서 소소한 일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살펴준 감사한 스승이었다. 문승협이 심리적 동요가 심한 사춘기를 잘 겪어내고 학창생활을 탈선 없이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도 어찌 보면 담임을 잘 만난 덕이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문승협인생에 훌륭한 담임선생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조현동선생은 담임으로서 갖는 당연한 간섭을 넘어 제자 문승협의 진로와 꿈에 기대가 있었다. 문승협은 담임선생표정에서 진심을 보았다. 담임선생의 애정 어린 관심에 삐뚤어진 생각을 금세 고쳐먹었다.

담임선생이 성적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암기과목은 좋으나 떨어진 국영수성적이 문제라고 했다. 국영수는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기본이 흔들려 나중엔 따라가기 힘들다며, 공부하는 교제와 방법에서부터 할애시간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지나가는 선생들이 면담 중인 문승협을 향해 한 마디씩 던졌다.

“문승협, 너 성적 떨어져서 왔구나?”

“이느무 시끼, 공부는 안 하고 딴다라 하드만 꼴좋다.”

“윙스멤버자격이 전교 50등까지 아니오?”

“우리 반에 장홍기랑 이민상도 성적이 뚝 떨어졌는디, 큰일이요 큰일.”

“우리 반 강동우하고 우상호도 마찬가지여라우.”

“아야, 평생 야간업소에서 노래나 부를래? 퍼뜩 정신 차려라잉.”

일부 친하지 않은 선생들까지 비아냥댔다. 담임선생이 문승협의 가슴에 비수를 날리는 선생들을 제지하였다.

“그만하쑈, 시방 야그 중이그만 그라네.”

“염려돼서 그러지라, 전교 10등 안에서 놀던 놈이 52등까지 떨어졌으니 말이오.”

“어허, 그만 하란께는 참말로. 애기 기죽게 무담시 그런 말을 해쌌소.”

“나도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 반 윙스 아그들 불러다가 면담해야쓰겄다.”

“승협아, 고개 들어, 어깨 좀 피고. 이깐 일로 주눅 들믄, 뭔 큰일을 하겄냐?”

문승협과 친하게 지내는 선생들말은 걱정에서 나온 꾸지람이었지만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선생들은 성적하락이유를 그룹사운드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선생들이 학생들 취미나 하고 싶어 하는 일보다 오로지 공부만 중시하였다. 공부만 잘하면 만사형통이었다. 인성과 감성은 혼낼 때만 언급할 뿐 그다지 관심 갖지 않았다. 교정에 세워진 큼지막한 비석바위에 지智∙덕德∙체體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교장선생훈화말씀에도 전인교육이라는 말로 빼놓지 않고 강조해 왔다. 덕德과 체體는 어디 쓰레기통에 버렸는지, 선생들은 항상 지智를 제일중시 했다. 덕德과 체體보다는 국영수가 현실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인정한 꼴이었다.

담임선생이 혹시 고충거리가 있는지 물었다. 이성교제나 친구들 간 갈등과 가정문제까지, 비밀로 할 테니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고 하였다. 문승협은 잠깐 고심하다 없다고 답했다.

“딴 문제가 없으믄 그룹사운드가 문젠디, 그만둘 의향은 있냐?”

“저도 지금 어찌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그래, 취미도 중요하제. 근디, 공부도 한때고 청춘도 한때여야.”

“네.”

“취미활동을 병행하믄서 성적도 유지하믄 금상첨환디, 그것이 어디 쉽간디?”

“네.”

“올2학년은 딴따라, 아니 그룹사운드를 하고, 3학년 때 빡시게 공부하믄 될 수도 있는디, 세상이 또 노력만큼 따라오는 것이 공평한 결과란 말이시. 시방부터 다시 공부에 열중하믄 서울대 갈 것인디, 안 그라믄 지방대로 갈 수도 있다잉. 그라고, 학교서는 명문대나 사관학교에 합격해 갖고 학교를 빛내주길 바라제, 안 그냐?”

“네.”

“똑똑한께 뭔 말인지 다 알아들었을 것이고, 니 인생인께 니가 선택해.”

“네.”

“으짜든지 니가 잘 됐으믄 하는 바램이다, 선생님맘은 알지야?”

담임선생이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충고하였다.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 애썼다. 문승협은 대부분 공감했으나 학교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만큼은 부담되었다.

야자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면담이 끝났다. 문승협은 교무실을 나서면서 이성교제와 가정문제를 말할까 망설이다 안 한 건 다행이라고 여겼다. 대학목표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 숙고해 보기로 하였다.

교실에 돌아와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지 생각했다. 암기과목은 벼락치기공부로도 좋은 성적을 받았기에 국영수위주로 공부방향을 잡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심호흡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공부에 집중한 것도 잠시였다. 느닷없이 정난희얼굴이 생각나고 잔뜩 화난 아버지얼굴이 떠올랐다. 그룹사운드를 계속해야 할지, 대학목표는 어디로 정할지, 많은 잡생각이 괴롭혔다.

하교해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번민이 이어졌다. 고심 끝에 대학목표와 미래에 대한 꿈은 잠시 접어두고, 직면한 그룹사운드탈퇴여부를 먼저 결정하기로 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정난희가 문승협의 유명세를 싫어한 점. 학교에서 우열반을 다시 시작한다는 소문 등이었다. 집에 도착할 즈음 윙스그룹사운드탈퇴를 결심했다. 무엇보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 아버지반응이 무서웠다.

그러나 문승협생각과 달리 아버지 문경준은 아들성적에 관심과 기대가 없었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정도였다. 오히려 순종적인 문승협의 온순한 성격을 못마땅해하였다. 남자다운 박력 없이 여성스럽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문승협에게 성적이 떨어지면 그만두라고 한 것도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다. 기타 치고 노래하느라 공부를 등한시한다는 아내 이항리말에 무심코 보인 반응이었지만, 문승협에게는 아버지의 헛기침마저도 공포였기에 엄중한 무게로 다가왔다. 이는 성장하면서 은연중에 쌓인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심리였다.


이튿날 광주기독교단체들이 5.18 당시 주요 항쟁지인 광주 YWCA에 모여 ‘제2주기 5.18 추모예배’를 하였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묻기 위해 일으켰던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여파가 가시지기 전이었다. 광주기독교단체들은 2시간 정도 걸린 예배 후에 추모의 뜻으로 5.18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분수대까지 평화행진을 하고 해산하려 했다. 그러나 정문을 나서자마자 기동대에게 저지당하였다. 1시간가량 대치하다 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목사들과 청년들까지 18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한편 남동천주교회도 저녁 7시 30분부터 ‘제2주기 5.18 추모미사’를 진행했다. 미사 후 1,000명가량 학생들이 연좌시위를 벌였다. 5.18 추모종교행사로 광주지역 종교단체와 당국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다음날 YWCA에서 ‘5.18 사건 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5.18 사건 대책위는 관제단체‘새 광주건설 도민단합대회’가 광주기독교단체를 불순종교집단으로 규정한 것에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는 긴급노회를 열어 5.18 추모예배사건에 대한 경위서를 전국교회에 발송하고, 관제단체의 망언에 해명을 촉구하였다. 또한 기독교장로회 비상총회소집을 청원했다. 5.18 추모예배사건과 광주 5.18 사건의 구속자석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구속자전원이 석방될 때까지 기도회를 결의하였다. 하지만 언론들이 관제단체에 우호적인 기사만 보도했다. 한 신문은 ‘새로운 광주를 건설하자는 전남도민들의 의욕에 의한 것’이라고 소개한 뒤, 제2주기 5.18 추모예배를 개최한 광주기독교단체를 향해 ‘광주사태를 교묘히 이용해 사회불안을 조성하려는 일부 불순 종교세력’이라며 비난하였다. 더불어 추모예배가 희생자들 추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선동에 치우친 정치적 발언이라고 헐뜯었다. 이러한 보도내용은 중요한 시국사건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계속 활용되었다.


방과 후에 윙스멤버들이 다음공연준비모임을 가졌다. 문승협은 심사숙고해 내린 탈퇴결심을 어렵사리 말했다. 당황한 멤버들이 청천벽력이라며 험악한 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문승협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불가피한 결정을 이해해 주길 부탁하였다. 멤버들은 탈퇴를 배신이라고 성토했다.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두고 보자며 씩씩거렸다. 괘씸하다는 이유로 추가 인화한 공연사진도 주지 않았다. 문승협이 다른 싱어를 찾을 때까지 공백 없게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하며 거듭 사과하였다. 그럼에도 멤버들이 계속 쌀쌀맞게 화내며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별렀다. 문승협은 피해를 끼쳤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웠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터라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윙스멤버들이 불가피하게 다른 메인보컬을 찾는 와중에도 막말을 하며 함부로 대했다. 문승협은 미안함과 죄책감에 참아 넘겼으나, 다음 주에 있을 5월 월말고사준비에는 집중하지 못하였다.


5월 초 대검찰청중앙수사부가 외국환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했던 장영자∙이철희부부사건의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국민들은 ‘정의사회구현 좋아하네’라며 비판했다. 전두환신군부정권은 보도통제로 언론탄압에 급급하였다. 사채시장큰손으로 불리던 장영자와 이철희의 대규모 어음사기사건수법은 기상천외했다. 장영자는 중앙정보부차장과 유신정우회국회의원을 지낸 남편 이철희와 함께 움직였다. 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권력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며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에 접근하였다. 조건이 좋은 자금조달을 제시하고 담보로 대여금액의 2∼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냈다.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7,100억여 원에 달했다. 약속어음과 견질어음을 사채시장에 할인해 또 다른 회사에 빌려주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등 다시 굴리는 수법을 썼다. 6,400억여 원의 어음을 유통시켜 1,400억여 원을 사기로 편취하였다. 어음총액이 GDP의 1.4%에 해당하고 정부예산 10% 상당의 거액이었다. 개포동주공아파트 18평짜리 분양가가 600만 원 정도였으니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권력을 배경으로 한 건국 이후 최대규모 금융사기사건이었다.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 규모로 드러난 이 사건은 사회 각 분야에 소위‘장영자 후폭풍’이라는 엄청난 풍파가 몰아쳤다. 특히 경제계에 큰 파문이 일었다. 어음이 한 바퀴 돌았을 때 어음을 발행한 기업들이 부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영자는 ‘경제는 유통이다’라는 말로 항변하였지만, 검찰수사결과 이철희·장영자 뒤에는 장영자의 형부이자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광이 버티고 있었다. 구속된 사람은 은행장, 기업체 간부들을 포함해 30여 명에 이르렀다. 철강업계 2위 일신제강과 도급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이 부도났다. 청와대배후 설이 나도는 가운데, 집권 초기부터 정통성과 도덕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전두환정권에 큰 오점을 남겼다.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처음 금융실명제가 거론되었다.


문승협은 어수선한 시국과 별개로 시련을 맞아 시무룩하였다. 일상이 지리멸렬했다. 기계적으로 등굣길버스를 탔다. 사람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급출발한 버스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가까운 손걸이를 재빨리 움켜쥐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자 주위를 살폈다. 초점 없는 시선에 멍해 보이는 승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였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불쾌함이 가득 담긴 탄식이 쏟아졌다. 등굣길 만원 버스에서도 이철희·장영자뉴스가 계속되었다.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탄 탓에 학교 앞 정류소에서 내리는데 애먹었다. 조운대가 사람들을 겨우 헤집고 뒤이어 내렸다.

“아야 문승협, 같이 가자.”

“야, 다른 반 되니까 얼굴 보기 힘들다?”

“교실도 떨어지고, 밤낮으로 공부 땜시 그라제.”

“겨우 두 칸 떨어졌는데도 이러니, 삶이 고달프다.”

“긍께 말이어, 공부에 파묻히다 본께 내 청춘도 같이 묻혀 부렀다.”

“그래도 명성윤은 가끔 보는데. 서로 잘 지내지?”

“잉, 성윤이는 같은 반인께 맨날 보제.”

“그래, 둘이 단짝이니까 잘 지내야지.”

“참, 엊그제 나온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우표 샀냐?”

“아 맞다, 요즘 정신없어서 깜빡했다.”

“에끼 시끼, 그걸 놓치믄 쓰냐.”

“그러게, 네가 사라고 해서 돈도 준비했는데.”

“혹시 몰라서 내가 명판이랑 시트 사놨어, 내가 주께.”

“진짜? 하하, 땡잡았네.”

“근디, 니 뭔 일 있냐, 성적도 많이 떨어졌드라?”

조운대가 질문하는 사이 교문 앞에 당도했다. 교문 양쪽에 선도부가 도열한 가운데, 체육선생이 복장과 두발검사를 하였다. 선도부장 박현선배가 불러 세웠다.

“어이 문승협, 이쪽으로 온나.”

“네?”

“머리 좀 잘라야 쓰겄다?”

“네.”

조운대는 교실로 가지 않고 옆에서 지켜봤다. 같은 2학년 친구들이 무슨 일인지 쳐다보며 지나갔다. 박현선배가 문승협의 두발을 검사하는척하면서 물었다.

“니 요즘 뭔 일 있제?”

“아 아닙니다.”

“뭐가 아니어, 성적도 떨어지고, 윙스싱어도 그만둔다고 그러드만.”

“네.”

“니 시내에서도 이런저런 소문이 많드라?”

“네?”

“코롬방제과점에서 뭔 일 있었다메?”

“아 네, 별일 아닙니다.”

“뭣이 별일 아니어, 내가 모를 줄 알고?”

“…….”

“심사가 복잡할 때는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공부에만 집중해.”

“네.”

“뭔 고민 있으믄 찾아오고. 가봐.”

문승협과 조운대가 꾸벅 인사하고 교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조운대는 좀 전에 궁금했던 답을 들었는지 별말 없이 걸었다. 문승협은 박현선배말에 혼란스럽고 우울하였다.

정난희와의 이성문제, 부모불화로 인한 가정문제, 윙스탈퇴로 친구문제와 성적하락문제까지,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알았다. 고민이 점점 깊어갔다. 천영기와 이담이나 김부일 같은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고 마음에 부담이라도 덜어볼까 했으나, 비밀스럽고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라 할 수 없었다.

2학년 교실이 가까워지자, 조운대가 일요일에 시립도서관에 올 거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떡이는 문승협에게 그때 우표를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기 교실로 들어갔다.


인천전역에서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 기공식’등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였다. 기념우표로 자유여신상과 남대문을 도안하여 액면가 60원에 4백만 장을 발행했다. 너무 남발한 전두환기념우표와는 다르게 수집가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문승협은 예정대로 일요일에 시립도서관을 찾았다. 조운대를 만나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우표를 받았다. 비닐포장된 네 장씩 있는 명판과 두 장짜리 시트였다. 조운대가 통째로 가져온 우표수집책을 펼쳤다. 20장짜리 전지와 한 장씩 있는 명판, 두 장짜리 시트에 네 장짜리 블록세트까지 우표수집에 있어 풀 세트를 보여줬다. 총 구입비용이 2,000원가량 들었다고 하였다. 문승협이 우표값을 주려 했지만, 조운대가 선물이라며 거듭 거절하였다. 하는 수없이 과자와 음료를 사서 고마운 마음을 대신 표했다. 조운대에게 영향받아 우표수집을 하였으나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조운대에게 정보를 받고 사라는 권유가 있을 때 발품 팔아 사는 정도였다. 조운대는 우표수집에 취미를 넘어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우취’ 수준이었다.

문승협은 갖고 싶었던 기념우표를 선물로 받았지만, 눈앞에 닥친 월말고사와 마음에 짐이 있어 기쁨이 덜했다. 시험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적 압박만 쌓여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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