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55)
이담이 가방에서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꺼냈다. 하나를 문승협에게 들으라며 건넸다.
“나는 공부하면서 노래 듣는 거 못하겠던데.”
“나도 첨엔 그랬는디, 계속하다 보믄 괜찮해. 인자는 습관 돼갖고, 없으믄 공부가 안 돼부러.”
“그래?”
“잉, 특히 잡념이 많을 때 좋드라.”
“고마워, 잘 들을게.”
문승협은 이담 같은 친구들이 신기했다. 어쩔 땐 2가지를 동시에 못하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뇌가 멀티태스킹에 맞지 않게 설계되고, 두뇌와 감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하였다. 젊은이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하면 부러워서 뭐든 다 따라 하고픈 나이였다.
카세트테이프에 곡목이 쓰여있었다. A면은 ‘록키시리즈의 Gonna Fly Now, Eye Of The Tiger’와 ‘마이클잭슨의 Thriller, Billie Jean, Beat It’등 활기찬 리듬. B면은 ‘라붐의 Reality’등 발라드풍 센티한 음률. 대부분 영화 OST였다. 작년 수학여행 때 이병규의 카세트테이프에 있던 곡도 있었다.
문승협은 워크맨을 꺼내 카세트테이프를 넣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B면인지 확인했다. 팝송을 들으며 책을 펼쳤다. 역시나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였다. 하는 수 없이 공부를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하였다. 눈감고 턱을 괴거나 엎드려서 감상했다. 리처드샌더슨의 Reality가 나오자, 지난 정난희생일에 선물한 LP판과 소피마르소가 떠올랐다. 제니퍼원스와 조코커의 Up Where We Belong을 들으니, 영화 사관과 신사를 함께 봤던 정난희가 그리웠다.
한 달 전 정난희를 만난 후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독서실로 올까 싶어, 외출시마다 독서실사환에게 행선지와 돌아올 예정시간을 알렸었다. 감감무소식에 찾아가려다 꾹 참기를 여러 번이었다.
불현듯 이대로 있으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정난희를 만나고픈 조급함에 몸이 움직였다.
곧장 달려가 정난희집담벼락구멍에 메모를 남겼다. ‘다음 주 17일 제헌절 10시, 독일제과에서 만나자’.
민한∙국민 양당이 ‘졸업정원제’ 폐지촉구성명을 냈다. 1970년 후반 중등교육이 대중화되면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사교육시장성장과 재수생누적으로 경쟁과잉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대학의 안일한 학문풍토와 부실한 학사관리도 비판받았다. 문교부장관이 문제해결을 위해 1980년 입안하여 1981년 실시했었다. 대학입학 때 학생을 선별하지 않고 졸업 시 학과정원을 정하자는 제도였으나, 대학마다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일본 닌텐도가 아케이드판 ‘마리오브라더스’에 이어, 차세대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컴퓨터’를 출시하였다. 세가도 질세라 ‘SG-1000’을 발매했다.
이산가족상봉생방송을 7월 15일부터 상시 편성하였다. 해외동포방송도 시작한 지 5일째 됐다.
한 주가 순식간에 흘러갔다. 대한민국 5대 국경일 제헌절이 일요일과 겹치는 바람에 다들 아쉬워했다.
문승협은 독일제과에 앉아 정난희를 기다렸다. 올 거라 확신은 없었지만 그리 불안하진 않았다. 뜻밖에도 정난희가 약속시간 5분 전 도착해 왠지 불길하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니 겁이 났다. 인사도 없는 싸늘한 첫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연락한다고 했는데, 왜 또 메모를 남긴 거야?”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화났어?”
“아니, 화날 일이 있어야지.”
“그 근데, 표정과 말투가 왜 그래?”
“왜, 내가 뭐 어때서?”
“아니면, 다행이고.”
“…….”
“난희야, 왜 연락 안 한 거야?”
“오빠, 몰라서 물어?”
“뭘?”
“내가 몇 번 말했잖아, 올해와 내년은 우리 둘 다 대학 입시니까, 만나기 힘들다고.”
“저번 만났을 때, 생각해 본다고 시간 좀 달라했잖아.”
“방금 말한 게 내 생각이야.”
“대학입시 때문에 안 만난다고?”
“아니, 못 만난다고.”
“그 말이 그 말 아니야?”
“아니야, 달라, 달라도 엄청 달라.”
“뭐가 다른데?”
“오빠 대학 가고 나 대학 가서, 그때 만나자는 거잖아.”
“2년을 안 만나고 어떻게 기다려?”
“이제 1년 반이야.”
“싫어, 난 그렇게 못해, 아니 안 해.”
“그래? 그럼 우리 헤어져.”
“뭐라고?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여자들도 남자들 군대 가면 3년을 기다려, 남자가 겨우 1년 반 가지고 그래?”
“나, 이주 뒤 30일에 공사시험 볼 거야.”
“공사?”
“응, 공군사관학교. 난희야, 나 그 시험 합격하면 우리 계속 만나자, 응?”
“시험 보든 말든 오빠 맘대로 해, 오빠 일이니까.”
“우리 둘 일이기도 한데 왜 이렇게 무관심해?”
“그리고, 난 직업군인은 안돼.”
“왜?”
“나는 도시에서 무용을 해야 하는데, 군인들 근무지가 대부분 산간벽지잖아.”
“공군은 육군이나 해군하고 조금 달라.”
“아무튼, 군인은 자주 옮겨 다녀서 힘들어.”
문승협은 순간 멍했다. 사실 정난희말을 듣고 사관학교응시를 결정하였다. 사관과 신사 영화를 본 후 분명 제복 입은 남자에게 로망이 있다고 했었다. 어떻게든 정난희마음에 들어서 헤어지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럼 공사시험 안 볼게.”
“뭐라고? 무슨 남자가 이랬다 저랬다 그래?”
“네가 싫어하는 줄 몰랐단 말이야.”
“싫어한다고는 안 했어, 안 된다고 했지.”
“어쨌든, 네가 여자들 로망이라고 해서 지원한 거야.”
“오빠, 갈수록 왜 이렇게 찌질 해?”
“그만큼 네가 나한테 소중해, 난 너 없으면 안 돼, 내가 찌질 한 건 아무렇지도 않아.”
“오빠, 그건 집착이야.”
“설사 집착이어도 상관없어, 난 너 없으면 죽을 거 같아, 숨이 막힌단 말이야.”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1년 반을 기다리긴 힘들지.”
“무슨 뜻이야?”
“그래 맞아, 그럴 바엔 차라리 헤어지는 게 맞아.”
“안돼, 싫어.”
“나도 나중에 오빠 군대 가면 3년은 못 기다릴 거 같아, 우리 여기서 그만 헤어지자.”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대학 가서 만나자.”
“싫어, 이젠 내가 싫어.”
“난희야 제발.”
“오늘로써 오빠랑은 완전 끝이야.”
“그럴 거면 오늘 왜 만났어, 왜 나왔냐고?”
“오빠랑 정도 들었고,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싶었어.”
“그럼 내가 너에게 시간을 줬듯이, 나에게도 스스로 마음정리 할 시간을 줘.”
“아니야, 오빠, 우리 더 이상 미련 같지 말자.”
“난희야, 왜 나를 버리려고 해, 버릴게 나밖에 없어? 나 대신 다른 걸 버리면 안 돼?”
정난희가 입시핑계로 만남을 거절하다 완전이별을 선언하였다. 문승협은 청천벽력 같은 결별통보에 정신이 혼미했다. 당장 헤어질 상황만은 막아보려고 애절하게 매달렸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었다.
정난희는 한번 결심서면 매몰찼다. 한치 흔들림 없이 냉정하고 아주 단호하였다. 반대로 문승협은 정난희 앞에서 한없이 어린아이였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란 말처럼 상상이상 정난희에게 의존했다.
정난희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문승협을 남겨두고, 찬바람 날리며 제과점을 빠져나갔다.
하루빨리 미련을 떨치고 학업에 충실하길 바라며 충격요법을 썼으나, 무엇보다 문승협과의 사랑을 지킬 용기가 없었다. 누군가 개인주의자 이기주의자라 치부하고, 에고이즘이니 나르시시즘이니 비난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다. 문승협을 걱정하며 흔들리는 어리석은 짓을 다시 반복하기 싫었다. 문승협과 이별이 슬프고 가슴 아프면서도 견뎌낼 자신은 있었다.
문승협은 초점 없는 시선으로 정난희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잠시 나간 넋이 돌아오면서 자책하였다. 왜 만나자고 했는지 후회막급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정난희가 만나자고 연락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었다. 괜히 조바심에 재촉해서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맞았다며 원망하였다. 짧은 시간 정난희와 재회한 대가치고는 치명적이었다.
제과점을 나와 터벅터벅 걸었다. 이상하게 무덤덤했다. 예전엔 골목구석에서 정난희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고 애탔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에 죽고 싶을 터였다. 이별상처가 덧나 더 큰 수렁에 빠질 줄 알았다. 막상 두 번째 결별을 맞닥뜨리니 첫 이별 때와 사뭇 달랐다. 이별경험은 슬픔의 정도와 패턴을 바꿔놓았다. 감정의 기복과 횟수도 줄였다. 나중 어떨지 모르나 현실이 명확해지면서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묘한 감정이 똬리를 틀었다. 정난희와 헤어져야 하는 이유 찾기였다. 왜라는 의심과 분노가 꿈틀댔다. 아프로디테를 반하게 한 꽃미남 아도니스 같은 남자가 정난희에게도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 헤파이토스가 헬리오스에게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바람피운 사실을 들었을 때의 분노.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사랑을 알게 되어 질투한 아레스심정이었다. 급기야 바람피운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사랑을 받은 미소년 아도니스를 저주하였다. 아도니스가 죽어서 핀 아네모네꽃처럼 사랑의 괴로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부정과 긍정사이를 오가며 신화 속 인물에 대입했다. 자신은 에로스의 황금화살을 맞아 다프네를 사랑한 아폴론. 정난희는 에로스의 납화살을 맞아 아폴론을 혐오한 다프네. 사랑을 되찾기 위해 당장 정난희가슴에 박힌 납화살을 제거하고 싶었다. 다프네가 변한 월계수라도 쓰고팠다.
일방적 강제이별을 당한 지 하루가 지났다. 일상을 차지한 정난희를 떨쳐내긴 힘들어도, 집착에 비해 눈물은 줄었다. 첫 이별과 완전결별이 다르다는 걸 알기에 하루면 충분하였다. 통제되고 이성적인 감정들이 하나둘 무너졌다. 불현듯 정난희가 생각날 때는 제어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가슴을 후벼 팠다. 그나마 음악덕택에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슬픈 가사로 절절한 사랑을 통감하고, 신나는 리듬으로 활력을 얻었다. 유행가든 트로트든 중요하지 않았다. 음악마저 없었다면 지옥 그 자체였다.
어디를 가고 어느 곳에 있든 음악에 심취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들으며 스스로를 보듬고 위로하였다. 뼈를 깎는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산울림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와 회상, 강승모의 무정부르스, 김태정의 기도하는 마음, 한마음의 가슴앓이, 송골매의 빗물, 김수희의 멍에’. 사무치게 가슴 아픈 이별노래였다. ‘송골매의 처음 본 순간과 한줄기 빛, 전영록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 우울한 기분을 환기시켜 줬다.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허영란의 날개’는 희망을 담은 곡이었다.
정난희와 결별 후 3일간 문승협세상은 끔찍한 전쟁이자 깨지 않는 악몽이었다. 언제까지 그럴 순 없는지라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분골쇄신이란 사자성어가 딱 맞았다. 정난희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난희야. 네 마음 잘 알았어, 나도 네 생각에 동의해. 절대 아프지 말고 무용 열심히 하길 바래. 나도 공부에 집중할 테니 걱정하지 마. 각자 자리에서 잘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있겠지, 안녕.”
정난희가 집담벼락구멍에 문승협편지를 발견하였다. 방에 들어가 덤덤히 펼쳤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편지지에 번진 눈물자국을 보고서 무너졌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죄책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뒤늦은 김득구관련보도에 안타까워했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가 작년 11월 말 뇌사판정 사흘 만에 숨졌다. 모친도 3개월여 지나 생을 마감하였다. 경기당시심판‘리처드그린’이 죄책감을 못 이겨 최근 자살했다. 김득구를 이기고 WBA라이트급챔피언이 된 ‘레이맨시니’도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하였다. 지금은 영화배우로 전향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김득구의 쓰러진 장면이 생중계됨으로써 많은 충격을 낳았다. 60년대 후 한국최고스포츠로 각광받던 권투가 위험한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회청문회에서는 권투위험성을 지적했다. 결국 스탠딩다운제를 도입하고, 15라운드 복싱경기를 12라운드로 바꿨다. 매 라운드휴식시간도 60초에서 90초로 늘렸다. 84하계올림픽부터 헤드기어착용을 의무화하였다.
남극보스토크기지에서 지구역사상 역대최저기온-89.2℃를 공식 관측했다. 미국 4인조 헤비메탈밴드‘메탈리카’가 첫 정규앨범 ‘Kill Em All’을 발매하였다. 최초 ‘스래시메탈’로 대중적 인기를 끌어 모았다.
문승협은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눈앞에 닥친 공군사관학교시험에 몰두했다. 어떻게든 정난희생각을 떨치려 발악하였다. 노력한 만큼 불쑥 가슴을 헤집는 이별의 고통은 차츰 덮여갔으나, 의지와 다르게 이전에 아팠던 증상들이 다시 심해졌다. 공부가 안 되는 것은 물론 자주 어지러워 휘청거렸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문일고3학년들은 낯엔 학교교실에서 입시를 준비했다. 보통 한 반에 10여 명이 매일 등교하였다. 문승협도 그중 한 명이었다.
방학 나흘째 되는 날, 3학년 1반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3반에 들러 도발했다. 수박내기 농구시합을 제안하였다. 가만히 있을 3반이 아니었다. 운동장 농구코트로 우르르 몰려갔다. 곧바로 열띤 경기가 이어졌다.
햇볕 쨍쨍한 날이라 땀을 뻘뻘 흘렸다. 문승협이 김영후에게 패스받은 공을 잡지 못하고 맥없이 고꾸라졌다. 양 팀 아이들이 깜짝 놀라 문승협주위로 모여들었다. 네 명이 들어서 그늘아래 벤치로 옮겼다.
“아야 승협아, 눈떠봐, 눈떠봐야?”
“먼저 혁띠랑 단추 풀고, 기도부터 확보해.”
“거그 주전자 좀 갖고 와라잉.”
“뭐 할라고?”
“얼굴에다 시원한 물이라도 뿌려 보까 해서.”
“와따 뭔 일이까잉.”
“여그 손에다 쬐끔만 부어봐, 언능아.”
“너희들 무슨 일이야?”
때마침 당직을 서던 김생출선생이 목격했다. 일단 양호실로 옮기라고 하였다. 김용남이 문승협을 둘러업었다. 축 처져서 꽤나 무거웠다. 김영후와 명성윤이 옆에서 거들었다. 다들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문승협은 곧 의식이 돌아왔다. 주위를 살펴보니 양호실이었다. 이마에 차가운 수건이 올려지고, 팬티만 입은 알몸상태였다. 방학이라 양호선생도 없었다. 잠시 후 김생출선생이 얼음 띄운 세숫대야를 들고 왔다.
“깨어났구나?”
“아, 선생님.”
“일어나지 말고 그냥 누워있어.”
“어떻게 된 거예요?”
“그건 내가 물을 말인데?”
“아무 기억이 없어요.”
“일사병 같긴 한데, 얘들 말로는 농구시작한 지 5분밖에 안 됐다고 하니 좀 애매하다.”
“…….”
“혹시 모르니까, 부모님 하고 꼭 병원에 가봐.”
“네.”
“이제 좀 괜찮아?”
“네, 괜찮아요.”
“승협이가 건강해야지, 우리가 나중에라도 또 볼 텐데.”
“네? 선생님 어디 가세요?”
“녀석, 눈치 한번 빠르네.”
“무슨 일인데요, 네?”
“아직 결정하진 않았는데, 다른 일을 좀 알아보려고.”
“학교를 옮기게요? 아니면, 다른 직업?”
“글쎄.”
“무슨 일 때문인데요, 말해주시면 안 돼요?”
“지난겨울에 오송회사건 말한 거 기억나?”
“네, 재판결과 나왔어요?”
김생출선생이 은연중 이직을 암시했다. 작년 수업 때 학생질문에 답해주며 언급한 군산제일고‘오송회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오송회五松會사건은 이전의 ‘부림사건, 무림사건, 학림사건’과 비슷한 5공화국 대표적 용공조작사건 중 하나였다. 5명의 교사가 소나무아래서 모였다고 하여 경찰에 의해 명명됐다. 경찰이 월북시인‘오장환시인의 병든 서울’ 필사본을 입수하였다. 이를 계기로 내사한 끝에 군산제일고 전현직교사 9명을 연행했다. 작년에 4.19와 5.18 기념식을 열어 시국토론을 하고, ‘김지하시인의 오적’ 낭송과 음주 중 북한노래를 불렀다는 이유였다. 교사들은 가족과 변호인 접견을 차단당한 채 여인숙과 대공분실 등지에 불법감금되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40여 일간 온갖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얼굴에 먹다 남은 짬뽕국물을 붓는 고문. 온몸을 묶어 엄지손가락에 전류를 통과시키는 써니텐고문. 몸을 철봉에 매다는 통닭구이고문. 경찰이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폭행하자, 교사들이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나중에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매달렸다. 경찰은 제시한 계보도와 역할분담표대로 자백을 강요하였다. 검찰조사 때도 고문한 경찰들이 바로 뒤에 앉아 시인하라고 협박했다. 조금이라도 진술내용이 어긋나면 지하실로 다시 끌고 갔다. 그렇게 받아낸 허위자백을 증거로 작년 12월 반국가이적단체조직과 간첩행위 등으로 구속하였다. 교사들이 지난 5월 26일 1심법정에서 고문당한 사실을 밝혔지만, 재판을 맡은 전주지방법원이 경찰의 불법감금·가혹행위·자백에 의존한 무리한 기소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3명의 피고인에게 징역 1년에서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나머지 6명은 선고유예로 석방하였다.
이들은 평소 뜻 맞는 교사끼리 독서모임을 가졌고, 막걸리를 사서 학교뒷산에 올라가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 희생자를 추모하며 시낭송과 토론한 것뿐이었다. 석방된 교사들이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고, 바로 어제 항소심이 열렸다. 항소심재판부 광주고법판결이 기막혔다. ‘피고 9명이 우리 사회에 차지하는 위치와 직책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불온서클인 오송회를 조직하여 동료교사와 제자들에게 공산주의를 찬양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으며, 대학교육까지 마치고 교사로 재직하는 이들이 공산주의사회를 동경했으면서도 잘못을 뉘우침 없이 변명만 늘어놓는다’. 판결문에 이어 1심서 실형을 받은 교사들 3명에게 징역 7년 등 형량을 대폭 늘렸다. 석방됐던 6명도 징역 2년 6개월에서 1년씩 선고하고 법정구속하였다.
“항소심결과가 너무 황당하더라.”
“대법원에다 상고하면 되잖아요.”
“허허, 대법원에 가도 별로 바뀔 것 같지 않아.”
“결국 모든 게 사실이고, 선생님이 예상하신 대로네요.”
당시 수업 중에 김생출선생견해를 의심한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김생출선생이 자기 말을 믿지 마라며, 반드시 직접 진실을 확인하라고 강조했었다.
김생출선생은 짐작조차 어려운 2심 결과에 충격받았다. 권력의 편에 선 사법부에 절망하였다. 이미 기울어진 대법원에 상고해도 기대할만한 사법양심이 없다며 통탄했다. 자기와 같은 처지의 교사들마저 정권의 조작과 공작에 희생양이 돼버렸으니, 교사의 양심을 걸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의욕마저 잃었다.
“무력감이 들고,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더라.”
“그러면, 다른 직업을 찾으시는 거예요?”
“천천히 알아보려고. 아직 생각 중이니까, 비밀이다.”
“네, 비밀 지킬 테니 걱정 마세요.”
문승협과 김생출선생사이에 둘만의 비밀이 하나 만들어졌다. 문승협은 김생출선생을 한결 가깝게 느끼며 생각하였다. ‘저런 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승협은 한 시간 조금 넘어 양호실서 나왔다. 반친구들이 교실로 돌아온 문승협을 걱정하며 에워쌌다. 김용남이 얼음물에 담가 논 수박을 쟁반에 가져왔다.
“으째, 인자 괜찮하냐?”
“응, 이제 괜찮아.”
“염병, 우리는 오늘 니 초상 치른 줄 알았다야.”
“승협어, 이거 니 몫이여, 언능 묵어.”
“농구경기는 끝까지 한 거야?”
“니도 빠져불고 덥기도 해서, 단세트로 쇼부 봤어.”
“수박은 허벌라게 달어, 빨랑 잡솨봐.”
“물론 우리 반이 이겼겠지?”
“당연한 소린 하덜덜마러, 우리 반이 언제 진적 있냐?”
“그나저나, 니 무자게 걱정되겄다? 곧 있으믄 대입체력장도 있고, 사관학교체력검정도 있는디.”
“어떻게 되겠지 뭐, 아까는 너무 더워서 그런 거 같아.”
인구시계기준 하오 10시 51분 28초, 한국인구가 4천만 명을 돌파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