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56)
문승협은 나름대로 준비한 사관학교 1차 시험을 보려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학생과장 조우조선생이 공군사관학교응시생들을 인솔하였다. 1박 2일 동안 숙식비와 교통비는 학교에서 지원해 주었다.
금요일밤 영등포역은 서울역과 많이 달랐다. 택시 두대에 나눠 타고 동작구로 갔다. 공군사관학교‘성무대’ 인근 허름한 여인숙을 잡고 여장을 풀었다. 조우조선생은 혼자 방을 썼고, 학생 다섯 명은 경비절감차원에서 조금 큰방에 몰아넣었다. 문과생은 문승협을 포함한 장홍기와 이민상, 이과생은 김정희와 강호영이었다. 학생회활동으로 모두 아는 사이였으나, 문∙이과 교실 층이 달라 그리 친하진 않았다. 반면 문과생 세 명은 2학년 때 학교그룹사운드 윙스멤버라 친숙했다.
숙소 근처 식당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각자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다들 내일 시험을 위해 책을 폈다. 공부하겠다기보단 시험불안감을 떨치려는 방편이었다.
“느그들 공부는 많이 했냐?”
“한다고는 했는디, 으짤란가 모르겄다.”
“홍기 니는?”
“기본실력으로 볼라고, 어차피 갈 것도 아닌디 뭐.”
“진짜 합격해도 안 갈 거여?”
“잉, 나는 군바리체질이 아니어.”
“그라믄 경쟁률 높이지 말고, 그냥 백지로 내고 나와.”
“허허, 그라까?”
“음마, 니 그러다가 학교에 알려지믄 초상난다잉.”
“조운대랑 장기원은 허벌나게 열심히 공부했다드라?”
“우리랑 상관없잖애, 그 아그들은 해사고 육사인께.”
“느그는 뭐 한디 목숨 걸고 사관학교에 갈라고 하냐?”
“학비도 무료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보장해주잖애.”
“거그다가 학교 마칠 때까정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뭔 말이 더 필요하까?”
“그것도 그런디, 항공점퍼에 빨간 마후라 두르고 라이방 쓰믄, 아조 죽여 부러.”
“민상이 너는 겉멋 들어서 큰일이다.”
이민상처럼 멋있어서 지원한 학생들은 소수였다. 공부를 잘하면서도 가정형편상 대학 가기 어려운 학생들이 꽤 됐다. 물론 국가가 원하는 명예로운 군인이 되려고, 일찌감치 장래를 결정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공군사관학교는 일정기간 복무하면 민간항공사의 조종사로 취직이 가능한 장점이 있었다. 사관학교 외에도 철도대학, 세무대학, 경찰대학 등이 인기였다.
“해마다 다르던디, 이번엔 경쟁률이 얼마나 되까?”
“공사랑 해사는 비슷하고, 육사는 쪼까 더 쌜 것이다.”
“그라믄, 이전멩키로 공사랑 해사는 10대 1 이짝저짝이고, 육사는 훌쩍 넘겄네잉?”
“대략 그쯤 될 것이어.”
“그란디, 으째 가시나들은 안 뽑으까?”
“니 같은 늑대들 땜시 그런 거 아니까 싶다, 호시탐탐 두 눈 부릅뜨고 있은께.”
“염병, 걱정도 팔자다.”
“언젠가는 여자도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있겠지, 남녀가 평등한 시대말이야.”
“그런 날이 오까?”
“와야지, 그날이 언제일지는 몰라도.”
“그래, 그때까지만 살자.”
공군사관학교가 전국각지서 온 남학생들로 북적댔다. 선배사관생도들이 정문입구부터 시험장까지 길목과 건물곳곳에 배치되어 안내하였다. 최대한 친절히 다가가 각종 불편사항들을 도와주려 힘썼다. 오히려 수험생들이 군인같이 바짝 긴장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탈없이 치러졌다. 보통 시험 후면 뭐가 맞고 틀리다며 떠들썩하였으나, 유난히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학교월말고사와는 달랐다. 성인의 길목에서 미래가 정해질 시험이라 조심스러웠다. 다들 시험결과를 마주하길 두려워했다. 조우조선생도 지나가는 말로 시험 잘 봤냐고 물을 뿐이었다. 공군사관학교를 빠져나가는 발걸음만 가벼웠다.
조우조선생이 성무대입구에서 목포행 기차표를 나눠주었다. 서울에 가정사가 있어 따로 내려가겠다며, 개인용무가 있는 사람은 개별 귀향해도 좋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바삐 가는 조우조선생에게 인사하고, 모두 문승협을 바라보았다. 유일하게 서울에 살아본 사람이니 빨리 갈피를 잡아달란 뜻이었다.
“지금부터 나랑 떨어지면 미아 된다, 잘 따라와.”
“응.”
“응이라니? 아직 현실파악이 안 됐구만? 너희들의 존경심을 담아서 공손히 다시 대답해 봐, 알았나?”
“예, 네.”
“아니, 얼마후면 군인될 사람들이 대답도 통일 못해? 너희들 서울에서 미아 되고 싶어?”
“아닙니다.”
“하하하, 짜식들 귀여운 데가 있네?”
“니 군인 해도 쓰겄다, 아따 박력 넘친다잉.”
문승협이 졸지에 인솔자가 됐다. 친구들은 돌변한 문승협태도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이내 순응하였다.
기차시간에 쫓겨 어디 구경할 틈도 없이 영등포역으로 갔다. 친구들이 도착하자마자 문승협을 구박했다.
“어이 문승협씨, 당신 아까 웃깁디다잉?”
“사대 한번 맞춰줬드만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나는 배알이 꼴려서 디질 뻔했어.”
“긍께 말이어, 진짜 군인인 줄 깜짝놀랐단께.”
“서울 쪼까 안다고, 친구들을 그러코롬 괄세해?”
“오호라, 너희들 박력 넘친다고 아부까지 하더니, 이제는 내가 필요 없다 이거지?”
“당연하제, 인자는 우리도 아쉬운 거 없은께.”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네.”
“뭣을아?”
“너희들에게 서울 핫도그 맛 좀 보여주려고 했는데, 에이 나 혼자서 먹어야겠다.”
“뭐야, 서울 핫도그?”
“아따 으째 그라요, 우리 친구잖애, 허물 덮어준 친구.”
“맞어, 친구끼리 장난도 못하믄, 그것이 어디 친구여?”
“언능 앞장서야, 어딨대?”
“와, 태세전환이 이렇게 빠르다니, 정말 놀랍다.”
문승협이 친구들 반응에 재미있어하며 핫도그매장을 찾아갔다. 다들 손에 하나씩 들고 먹었다.
“겉이 쫀득쫀득하니, 밀가루가 아닌 거 같은디?”
“일단 기름냄새가 안 난다야.”
“서울 핫도그는 얍상한디, 안에 쏘시지가 맛있다잉.”
“아따 참말로, 촌티 그만 내고 그냥 처묵기나 해라, 아조 남사스러워 죽겄네.”
“근디, 승협이 니 그거 아냐?”
“뭘?”
“아까 쩌그 공군사관학교 앞에서 말이여, 우리가 니한테 약자멩키로 일부러 그런 거다잉.”
“우리 넷이 모른 체끼 속아줄라고 애쓰느라 혼났어.”
“니가 항시 진지해갖고 우리가 쪼깐 당황하긴 했는디, 니하는 뽄새가 무자게 웃기드라.”
“나는 웃음 참느라 디져분 줄 알았단께.”
“그러면, 여기 도착해서도 너희들끼리 짠 거였어?”
“당연하제, 귀여운 구석은 니가 있드라잉.”
“하하하.”
알고 보니 친구들끼리 눈치로 작당한 행동이었다. 문승협장난에 속아주어서 또 속은 반전이었다. 웃고 떠들며 기차플랫폼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역을 출발한 목포행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섰다. 다들 기차에 타자 곧 졸았다. 사관학교시험에 잔뜩 긴장한 탓이었다. 중간에 한 번씩 깼지만 시험결과걱정에서 벗어나려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목포역에 도착해 각자 헤어졌다. 다들 집으로 향했으나, 문승협은 늦은 시간임에도 독서실에 들렸다.
천영기와 이담이 엎드려 자고 있었다. 문승협이 무슨 일 없었는지 궁금하여 둘을 깨워 밖으로 나갔다.
“너희들 이 형님 없다고 잠만 자냐?”
“하루 죙일 공부하다가 잠깐 졸은 거여.”
“그건 그렇고, 시험은 잘 봤냐?”
“대충.”
“시험은 으짜디?”
“그냥 그렇지 뭐.”
“으째, 붙을 거 같어?”
“모르겠어,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
“피곤할 텐디 집으로 가지 그랬냐.”
“나 찾는 사람 없었지?”
“잉, 파리새끼 한 마리도 니 안부를 안 묻드라.”
문승협은 서울 가기 전 친구들에게 신신당부하였다. 사관학교시험을 절대 비밀로 하라며, 부모가 찾거나 정난희에게 연락 오면 적당히 둘러대라고 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혹시 몰라서 단속해 놨었다.
8월 첫째 날은 국세청이 세상을 놀래 켰다. 신흥기업 명성그룹전반을 세무조사한 지 한 달여 만에 결과를 발표하였다. 수기통장을 이용한 1,000억 상당의 변칙적 대규모사채조달이 발각됐다. 1979년 4월부터 1983년 7월까지 벌어진 행위였다. 세금포탈과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뇌물 수수와 공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명성그룹회장이 기업관련직을 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명성그룹부정행위를 지탄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눈밖에 난 기업들을 부실기업명목으로 해체시키려는 신군부의 관치경제 신호탄일 줄은 전혀 몰랐다.
연일 우울한 뉴스가 나온 와중 기쁜 소식이 있었다. 삼성반도체통신이 국내최초 64KB D램개발에 들어갔다. 국민들에게 위로될듯하였으나, 생소한 반도체가 무언지 아무도 관심 없었다. 전문가들만이 국가경제와 국민일상을 바꿀 대한민국희망으로 인식했다.
문승협이 독서실서 공부하다 몸에 이상을 느꼈다. 저녁 11시가 넘어갈 즈음 점차 심해져 집으로 갔다.
각방마다 불이 꺼지고 집안이 조용하였다. 송곳으로 찌른듯한 두통과 현기증이 계속됐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 순간 방문이 빼꼼히 열렸다. 엄마 이항리가 엉거주춤 불 꺼진 방안을 살폈다. 문승협이 잠든척하려다 마지못해 일어났다. 이항리가 불을 켰다.
“아직 안 잤냐?”
“막 잠들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에요?”
“아니, 윤아방에 누워있는데, 인기척이 들리기에.”
“눈 눈은 또 왜 그래요?”
“아 아니어. 오늘은 일찍 왔네, 공부하느라 힘들지?”
“눈이 왜 멍들었냐고, 이번엔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은, 별일 아니어, 욕실문에 살짝 부딪혔어.”
“거짓말, 아빠랑 또 싸웠네, 맞지?”
역시 부부싸움이 원인이었다. 문승협은 가뜩이나 몸도 좋지 않은데 엄마한탄을 들어야 했다.
이번에는 돈 때문이었다. 이항리가 최근 또다시 곗돈을 날린 데다, 주변사람들에게 매달 2부씩 받던 돈놀이를 하다 원금마저 떼이게 됐다. 더구나 갈수록 헤퍼진 남편씀씀이에 살림살이가 어려워져 조용할 날이 없었다. 멀어진 시부모에게 손내밀수도 없는 처지였다. 허울 좋은 재벌일가에 달랑 집 한 채뿐이었다. 그것도 시아버지명의집이었다.
문승협은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한 엄마에게 몹시 실망하였다. 중3 때 비슷한 일을 겪은 기억이 있었다. 당시 엄마가 웬만한 집 한 채 값 5백만 원을 빌려줬다가 못 받았고, 곗돈사기까지 당하여 전전긍긍했었다.
이항리가 죄 없는 아들을 붙들고 장시간 넋두리하였다. 돈문제로 남편과 옥신각신 다투다 눈에 멍들었다며 이혼하네 마네 토로했다.
문승협은 차라리 이혼이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예전 처음에는 진짜 이혼할까 봐 두려움에 벌벌 떨었지만, 부부싸움 후 매번 언급하여 무감각해졌다.
이항리가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처럼 한바탕 쏟아붓고 방을 나갔다. 문승협은 한숨을 길게 몰아 쉬며 누웠다. 파르르 떨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물이 귓불을 타고 흘렀다. 머리가 지끈거려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문득 지난 설일이 떠올랐다. ‘음마, 니가 그렇게 공부 잘하냐? 서울대는 뭐 아무나 간다우? 서울대는 무슨, 여그 목포대만 가도 되제. 등록금이랑 학비가 이만저만 아닌디, 돈은 있고? 대학 안 가도 산께 대충 해.’ 큰 고모부가 격려차원에서 한 말에 친척들이 한 마디씩 껴들었었다. 자신만 모르는 일을 모두가 아는 느낌이었다. ‘만약 엄마아빠가 이혼하면, 학비와 용돈은 누구에게 받아야 하지?’. 부모이혼을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러운데, 불쑥 이기심까지 고개 들어 자책했다. 꼬리를 무는 잡념에 뒤척이다 잠들었다.
다음날 10시 넘어서 겨우 일어났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학교에 갔다.
반친구들과 3학년 1반 아이들 여럿이 운동장구석에 모여있었다. 지난주 패배한 1반 아이들이 재도전하여 농구시합을 앞뒀다. 문승협이 가방을 벤치에 던져놓고 농구코트에 들어서자마자 게임을 시작하였다.
38.6도를 오르내리는 햇볕아래 3반이 7점 앞서며 전반전을 마쳤다. 다들 땀에 젖어 그늘을 찾았다. 각자방식으로 호들갑스럽게 더위를 식혔다. 허겁지겁 시원한 물로 갈증을 해소하는 친구, 주전자물을 머리에 부어 열기를 쫒는 친구, 웃통을 벗고 벌렁 누워 체온을 식히는 친구, 수건에 얼음물을 적셔 닦는 친구.
문승협은 나무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항상 나무들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어와 시원했는데, 오늘따라 숨이 턱 막혔다. 복사열과 후덥지근한 공기에 습도까지 높아 호흡이 힘들고 어지러웠다. 1942년 8월 1일 대구에서 40도 이후, 71년 만의 역대최고기온을 기록한 날이 엊그제였다.
김용남이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는 문승협을 보았다. 시원한 얼음물을 마시라며 건넸으나 반응이 없었다. 재차 권하며 어깨를 툭치니, 문승협이 스르르 옆으로 쓰러졌다. 축 처진 문승협을 얼른 부축하였다. 다급히 이름을 부르며 의식을 확인했다. 머리를 흔들고 뺨을 때려도 움직이지 않았다.
“와따 이 시끼, 저번멩키로 또 이러네.”
“아야, 거그 수건에 얼음물 좀 적셔갖고 와라잉.”
“그냥 언능 업어, 양호실로 데려가게.”
“아까 본께 간디도 출근했드라, 빨랑 가서 말씀드려.”
지난 목요일 농구시합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다들 두 번째라 지난번보다 걱정하였다. 다행히 양호실에 눕히자마자 문승협이 곧 깨어났다.
“너희들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승협이가 괜찮다고 해서 그랬어라우.”
“그래도 그렇지, 매일 같이 역대급 폭염이 연속되는데, 무슨 농구는 농구야?”
“선생님, 얘들 나무라지 마세요, 제 잘못이에요.”
“넌 조용히 해, 뭘 잘했다고.”
“죄송합니다.”
“체감온도가 이렇게 높은데, 농구를 하다니 말이 돼?”
“더운 줄은 알았는디, 또 이럴 줄은 몰랐어라우.”
“앞으로 오늘처럼 더운 날은 농구금지다, 알았어?”
“네.”
“승협이 너, 병원은 가봤어?”
“아 아뇨.”
“내가 저번에 가보라고 했잖아.”
“사관학교 시험 보느라 시간이 없었어요.”
“부모님께는 말씀드렸어?”
“…….”
“안 되겠다, 지금 나랑 가보자.”
“아 아닙니다, 제가 내일 엄마랑 가볼게요.”
“얘들아, 지금 학교 앞에 가서 택시 한 대 잡아와.”
김생출선생이 보호자를 자청하며 병원에 데려갔다. 문승협을 검사실로 들여보내고 공중전화를 찾았다. 당장 문승협부모에게 알려야 하는데 집전화번호를 몰랐다. 서울 사는 문승협의 작은 고모 문희경과 친구사이라 다이얼을 돌렸다. 한 달 전쯤 결혼식서 만난 이후 오랜만통화였다. 안부를 묻고 상황을 전했다.
문승협이 검사를 마치고 응급실에 누워 결과를 기다렸다. 이항리가 허둥지둥 들어섰다.
“오매 오매 아가, 뭔 일이다냐?”
“어 엄마.”
“생전 아프도 안 한 애기인디 뭔 일이까잉.”
“안녕하세요, 저는 승협이 학교선생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작은 시누이한테 말씀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해요.”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희경이 하고 친구예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항리가 경황이 없어서 사투리를 질펀하게 쓰더니, 김생출선생에게는 금세 서울말씨로 바꾸어 인사하였다. 뒤이어 간호사가 찾아왔다.
“선상님, 친 보호자는 오셨소?”
“제가 보호자예요, 얘 엄마입니다.”
“아 그라요, 저 아그 혈액하고 이것저것 검사했는디, 결과는 다음 주에 나와라우.”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일단 퇴원하시고요, 다음 주에 검사결과 보러 오쑈.”
“네, 오늘 병원비는 얼마 나왔어요?”
“저그 원무과보이지라, 거그 가서 물어보쑈. 근디, 계산을 마쳤은께 검사했을 텐디요?”
“어머님, 제가 이미 냈어요.”
“얼마예요, 얼마 드리면 될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도리가 아니죠, 얼마인지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
김생출선생이 한사코 받기를 거절했다. 이항리는 어쩔 수 없이 감사인사로 대신하였다.
이항리와 문승협은 병원을 나와 김생출선생과 헤어졌다. 이항리가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다음 주 검진결과병원비를 계속 푸념했다. 문승협은 자식 건강보다 돈먼저 걱정한 엄마를 야속하게 쳐다봤다.
집에 들어서자, 여동생들이 동시에 괜찮은지 물었다. 문현아가 방에 따라가며, 앞으로 오빠병시중을 도맡겠다고 하였다. 반면 막내 문윤아는 뭔가 구시렁댔다.
“윤아야, 너는 언니보고 뭐 느낀 거 없어?”
“뭘?”
“언니는 오빠 아프다고 심부름이랑 다 해주겠다잖아.”
“그래서?”
“너는 오빠 아픈 거 걱정 안 돼?”
“참나, 누가 오빠 보고 아프랬어? 아픈 사람만 서럽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야.”
“에휴 관두자, 너한테 뭘 바라겠니.”
“오빠, 나한테 바라는 거 있어?”
“없다, 없어.”
“난 오빠한테 바라는 거 있는데, 아니 물어볼 게 있어.”
“하하, 뭔데?”
“도대체 일기검사를 왜 하는 거야?”
“누가?”
“학교에서 담임선생이.”
“우리 땐 일기 쓰는 습관을 들인다며 검사하긴 했는데, 요즘도 일기검사를 해?”
“응, 이거 사생활침해에 인권침해 아냐?”
문승협이 펼쳐진 이부자리에 앉아 몸을 기댔다. 동생들도 따라 마주 앉았다. 문윤아가 어서 답을 내놓으라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문승협이 국민학교시절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국민학교 때 일기를 강요했다. 매일 주어진 숙제와 다름없었다. 일기를 안 쓴 학생들에게 엎드려 벋쳐와 화장실청소는 예사였다. 무서운 선생은 몽둥이로 엉덩이나 손바닥을 때렸다. 보통 반장이 등교해서 일기장을 걷어 담임책상에 갖다 놓았고, 검사를 마치면 하교 전에 돌려줬다. 담임에게 검사를 마친 일기장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혀있었다. 확인도장 말고도 빨강색연필로 맞춤법을 교정하거나, 때론 담임생각이 써졌다. 처음엔 멋모르고 있는 그대로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밀을 들킨 기분이었다. 나중엔 담임이 볼 거라 예상하고 가식을 덧붙였다. 선생들이 생각 쓰기라며 좋은 명목을 들이댔지만, 학생들 생각은 많이 달랐다.
“에휴, 그니까, 오빠도 인정하는 거지?”
“맞아, 사생활침해고 인권침해지.”
“그래도 오빠한테 동의받으니 속은 좀 편해지네.”
“너는 앞으로 어떡할 건데?”
“음, 나라고 별수 있나, 현실과 타협해야지 뭐.”
“어떻게?”
“이중장부, 진짜와 가짜 일기장, 개인용과 학교검사용.”
“하하하, 맞네, 이중장부.”
여동생들이 쉬라며 방을 나갔다. 문승협은 이부자리에 누우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깨어 몇 숟가락 뜨고 다시 잠들었다. 잠결에 인기척을 느꼈다. 아빠 문경준이 밤늦게 들어와 방문을 살짝 열며 괜찮은지 물었다.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닫았다. 문승협은 병원비를 걱정하는 엄마와 무관심한 아빠에게 서운하였다.
서울여의도 KBS근처에 ‘만남의 광장’이 개설되면서, 이산가족 찾기가 더욱 불붙었다.
일요일 한때 수도권일대에 공습경보가 내려졌다. 중공군이 MIG-21기를 몰고 한국공군기지에 비상착륙 후 귀순했다. 올해만도 2월 25일 북한이웅평귀순, 5월 5일 중공민항기납치사건에 이어 벌써 세 번째였다. 휴전이래 최초 중공기의 한국영해침범이었다.
문승협은 이틀을 쉬고 많이 나아졌다. 공부를 해야 해서 책을 폈으나, 졸음과 사투를 벌이다 잠만 자는 마법에 걸렸다. 눕기 편한 집 때문이란 생각에 독서실로 갔다. 쪼들린 생활에 독서실비지원이 없어, 일일권이나 반일권으로 사설독서실 빈자리를 찾아다녔다. 천영기와 이담이 함께 발품 팔아 분주히 공조하였다. 셋은 이전 정해진 자리서 공부할 때와 달리 열중하지 못했다. 공부환경이 자주 바뀐 탓이었다.
문승협은 검사결과가 나온 날 엄마와 병원에 들렀다. 부정맥에 저혈압과 재생불량성빈혈로 진단받았다. 특별히 치료방법이 없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였다. 앉았다 일어서거나, 누워 있다 일어날 때 조심하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낮아지고 뇌혈류가 떨어지면서 어지러운 기립성저혈압이었다. 골수조직검사에서 재생불량성빈혈로 판단하였다. 잦은 피로감·코피·두통·현기증·호흡곤란이 증상이었다. 그동안 코피를 흘리고 두통에 시달리며, 농구하다 호흡곤란과 현기증으로 쓰러진 이유였다. 의사선생이 소견설명을 마치면서 머뭇머뭇했다. 조심스레 정신과상담을 한번 받아보라고 권유하였다. 이항리가 무슨 청천벽력 같은 정신과상담이냐며 발끈했다. 주변에 알려지면 정신과병원진료만으로 정신병자취급받는 시절이었다. 의사가 자칫 불상사로 아들을 잃을 수도 있다며 병원을 소개해주었다.
이항리는 반신반의하며 병원을 나섰다. 별수 없이 곧장 의사가 알려준 정신과병원을 찾아갔다.
문승협은 정신과의사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으며 의사표현을 하였다. 핵심질문은 상담 내내 묵묵부답이었다. 반복 질문엔 설명하기 어렵다며 넘겼다. 정신과의사가 심각한 고3병으로 진단했다. 부모와 친인척 등 지나친 관심도 무관심도 문제지만, 대답하지 않은 심리적 고통이 원인이라고 하였다. 문승협은 정난희와 이별을 숨긴 것이 뜨끔했으나, 부모싸움의 충격이 누적된 사실을 본인조차 몰랐다.
이항리는 병원을 나오면서 심란하였다. 한편으론 아들 병치료에 딱히 할 일이 없어 홀가분했다. 무심코 병원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며 불평하였다. 문승협은 괜찮을 거라 위로한마디 없이 병원비만 걱정하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엄마가 두 번씩이나 곗돈과 돈놀이사기를 안 당했어도 지금 병원비를 걱정할까?’. 욱해서 되물으려다 눈을 질끈 감고 참았다.
“엄마는 내 병원비가 그렇게 아까워?”
“아니, 네가 안 아팠으면 안 써도 될 돈이잖아.”
“맞네, 내가 안 아팠어야 했네, 그랬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계속 조심하라잖아.”
“그래, 내가 조심하면 되니까, 이제 병원비가 안 들어가서 천만다행이다. 그치?”
“그건 그래, 아프면 돈이 좀 많이 들어가냐?”
조심하라는 것도 아들건강염려가 아니라 돈 때문 같았다. 병원비가 안 든다며 안도하는 엄마모습에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정신과진료받던 중 의사선생말이 떠올랐다. 자살충동도 있으니 환자본인은 관리를 잘하고, 환자가족은 꾸준히 살피며 신경 쓰라고 했었다. 자살이란 단어가 뇌리 깊숙이 파고들며, 의사지침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 정신과라고 했을까, 왜 심리상담과나 심리치료과라고 하지 않았을까’.
드디어 대입학력고사가 100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날짜를 세가며 300일∙200일 작전에 실패한 학생들은 더욱 쫓겼다. 국영수를 포기한 학생들이 속출하였다. 다급함에 시간관계상이라고 그럴듯하게 합리화했다. 남은 100일 동안 암기과목을 중점적으로 파겠단 의지였다. 반드시 독파하겠다며 서너 가지 문제집을 구비하였다. 과연 성공할지 초미관심사였다.
문승협도 복습개념에 매일 한 시간씩 국영수를 배정하고 암기과목중심으로 공부했다. 문제집 이름이 ‘완전정복’인데 쉽게 정복되지 않았다. 독서실을 옮겨 다녀서 몰두하기 어려웠다. 매번 공부환경이 바뀌니 산만하였다. 가는 곳마다 아는 친구들을 만나 잡담으로 시간 뺏기기 일쑤였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았다.
문승협이 남국민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담이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왔다.
“승협아, 큰일 났어.”
“왜, 무슨 일인데?”
“영기네 엄니가 돌아가셨단다야.”
“진짜?”
“잉, 아까 옴시로 전화했드만, 영기가 그러드라.”
“그럼 빨리 가보자.”
황급히 천영기집으로 가니 벌써 빈소가 마련되었다. 인쇄소 앞 도로에 천막과 널따란 멍석이 깔렸다. 상갓집근조등 설치작업이 마무리돼가고 있었다. 안쪽에서 천영기형제가 일찍 조문 온 손님들을 맞이했다. 천영기는 노란색삼베상복차림을 하고 두건과 새끼줄처럼 꼰 수질을 머리에 둘렀다. 천영기형은 상주라서 굴건까지 갖춘 굴건제복을 입었다.
“승협아, 언제 왔어?”
“방금. 철종이 넌 어떻게 소식 들었냐?”
“나는 여그 같은 동넨께 금방알제, 니는?”
“난 담이가 알려줬어.”
“동창들한테 연락했은께, 다들 곧 올 것이다.”
“용남이랑 일한이에게도 연락한 거지?”
“당연하제, 학생회회장단인께 제일 먼저 알렸다야.”
“잘했다, 우리가 뭘 도와야 할까?”
“이따가 아그들 오믄 같이 조문하고, 일단 여그 오시는 손님들 안내하든가 해야제.”
“그래, 뭐든 돕자.”
방학이고 일요일이라 국민학교동창들이 금세 달려왔다. 김용남이 앞장서 함께 조문하였다. 남녀동창들이 상갓집 일손 돕기에 팔을 걷었다. 여자동창들이 음식장만에 여념 없는 아주머니들을 도왔다. 현기정과 제갈민주가 음식을 그릇에 담아주면, 가병수와 김일한이 날랐다. 박진숙과 이정주는 손님이 자리했다 떠난 상 치우기를 맡았다. 문승협과 차여선은 조문객을 안내하였다. 김주동과 홍동길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심부름했다. 나중에 온 백미정과 한현진도 손을 보탰다.
첫날인데도 각계각층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천영기네 인쇄소영향력과 얼마나 인품 있는 집안인지 가늠되었다. 천영기는 부모가 40대 중반에 나은 늦둥이라, 스무 살 많은 천영기형이 문상객을 대면하였다. 천영기누나는 상복을 입고 천진난만얼굴로 빈소를 지켰다. 지적장애가 있어 엄마를 잃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누워 자기도 했다. 천영기는 4년 전 아버지를 잃은 데 이어,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아나 마찬가지였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화투 치는 서너 팀 정도 남았다. 조를 나누어 내일 일할 동창생일부가 집에 갔다. 방명록과 조의금을 받는 안내대도 한산하였다.
“승협아, 옛날 기억나지 않냐?”
“옛날?”
“응, 최선경아빠가 돌아가시고, 병원장례식장에 다들 이렇게 모여서 도왔잖애.”
“맞아, 그랬었지.”
“그때 그 국민학생꼬맹이들이 뭘 안다고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믄 무자게 웃긴다야.”
“그러게, 몸은 어렸을지 모르지만, 마음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거야.”
“그러고 보믄, 세월이 참 빠르다잉?”
“그래, 세월 빠르다 진짜.”
“혹시, 최선경엄니소식은 아냐?”
“몰라, 여선이 너는 알아?”
“아니, 나도 궁금해서 물어본 거여.”
“난 또 네가 아는 줄 알았다야.”
“선경이 생각은 안 나?”
“한동안 생각했고 또 가끔 생각났고, 뜬금없이 나타났다 또 금세 사라지더라.”
“그래, 그렇게 잊고 잊혀 가는 게 인생인가 벼.”
“너 실연당했냐? 네가 그런 말 하니까 이상하다?”
“실연은 니가 당했다던디?”
“뭔 소리야?”
“니랑 정난희랑 헤어졌다는 소문 들었어, 아니여?”
“…….”
“맞아?”
“야 철종아, 너 그 신발이 뭐냐?”
차여선이 소문진위를 물었지만, 문승협은 시인도 부인도 안한채 김철종에게 시선을 돌렸다. 차여선은 다분히 의도적인 줄 알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문승협이 손으로 신발을 가리키자, 김철종과 동창들이 안내대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아, 요번에 새로 나온 프로스펙스여. 으째, 멋지냐?”
“국제그룹이냐 국제상사냐, 거그서 고무신 프로스펙스 나왔다는 소리는 첨 듣는다야.”
“아야, 이거 고무신에다 매직으로 그린 거잖애. 와따메 참말로, 정교하게도 그렸다잉.”
“염병, 진짜 프로스펙스란께. 자, 봐라 봐.”
“뭐여, 고무신 바닥에 왕자표라고 써졌그만 그라네.”
“이그,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시끼야, 프로스펙스 만든 회사가 왕자표 고무신부터 시작했어.”
“허허허, 알았다 알았어.”
“이눔들아, 부모 등골 빼묵지 말고 싼 거 신고 싼 거 입어, 메이커들 좋아하지 말고.”
“하기사, 요즘 아그들이 메이커를 너무 밝혀서 큰일이어, 그냥 사치여 사치.”
“지랄, 그런 말 하는 시끼가 아식스를 신냐?”
“니는 씨, 나이키 신었잖애?”
“긍께 나는 암말도 안 하잖애.”
“두발자율화는 몰라도, 교복자율화는 말았어야 했어.”
“인자 2년 돼간디, 빡빡머리랑 교복이 그립다야.”
“그렇게 그리우믄, 지금 당장이라도 머리 빡빡 깎고 교복 입어, 그것도 자율인께.”
다음날 점심께 천영기의 중고등학교친구들이 왔다. 조문한 뒤 도울거리를 찾았으나 어물쩍대다 물러갔다. 국민학교동창들이 워낙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
“영기야, 느그 아부지어무니는 독립운동 안 하셨냐?”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대?”
“아니 아까 들었는디, 오늘 충남천안 근처 목천면서 독립기념관기공식을 한다 길래.”
“연설하네, 거그는 그냥 박물관 같은 것이어.”
“아 그라냐, 나는 현충원으로 착각했다잉.”
“대전현충원도 한창 공사 중인디, 뭔 소린지 모르겄다.”
“아니어, 내가 작년 이맘땐가, 현충원에 안장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어디서 봤어.”
“기공식 하고 준공식이랑 헷갈린 거 아니어? 기공식은 인자 지을랍니다고, 준공식은 다 지었소여.”
“그래, 니 똑똑다, 허벌나게 잘났단께.”
“승협아.”
“아 아빠.”
친구들이 잡담하는데, 문경준이 불쑥 나타났다. 태선화학본사의 시내출장소가 근처에 있었다. 점심 먹고 사무실로 가면서 인쇄소상갓집에 문승협을 발견했다.
“여기서 뭐 하냐?”
“친한 친구엄마가 돌아가셔서 도와주고 있어요. 얘들아 인사해, 우리 아빠야.”
“안녕하세요.”
“그래, 승협이 친구들이냐?”
“네.”
“얘가 천영기예요, 어제 아침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마음이 많이 안 좋겠구나, 힘들겠지만 힘내라.”
“예.”
“그럼, 수고들 해.”
문경준은 아들친구들을 고3이 돼서야 처음 알았다. 문승협은 당황한 기색을 숨겼다. 아빠와 친구들 소개가 처음이었다. 서로 어찌 생각할지 궁금하였다. 문경준이 가고 나자, 동창들이 문승협을 쳐다봤다.
“아야, 사내시끼가 사삭스럽게 아빠가 뭐여 아빠가?”
“그것이 뭐 으째서, 귀엽기만 하그만 별 걸 트집이여.”
“아니, 느그 같은 가시나들은 괜찮한디, 우리 머시마들이 쓰기에는 간지럽잖애?”
“아빠믄 다 아빠제, 여자가 부르는 아빠가 있고, 남자가 부르는 아빠가 따로 있다냐?”
“너는 그 남녀차별적 발언 좀 삼가 해.”
“근디, 승협이네 아부지 잘 생기셨다잉?”
“뭔 소리여, 승협이가 훨씬 더 잘생겼제, 느그 집안의 훌륭한 유전자가 부럽다야.”
“아니어, 승협이는 잘생겼다기보단 이쁘게 생겼어, 기생오라비멩키로. 안 그냐?”
“호호호.”
다음날 발인이었다. 만장을 앞세운 상여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발인제를 마치고 장지로 이동했다. 가족묘지에 하관식까지 국민학교동창들이 동행하였다. 문승협은 상갓집에서 며칠을 보낸 탓에 피곤했다. 장지에서 돌아와 곧장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서니 모든 창문이 닫힌 채 아무도 없었다. 환기를 시키려고 토방유리창을 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장기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들었냐? 들었어? 들었지?”
“숨 넘어가겠다, 뭔데 그래?”
“축하한다 축하해.”
“뭐를?”
“아직 모르냐, 니 공사 1차 합격했다드라.”
“그래? 너는?”
“나도 붙었어.”
“그러면, 진짜 육군사관생도 장기원이 되는 건가?”
“아직이제, 2차가 남았은께.”
“축하한다, 진심으로.”
장기원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담임선생이었다.
“승협이냐, 축하한다 축하해.”
“감사합니다.”
“어머님이나 어른들 계시냐?”
“지금 외출하시고 아무도 안 계시는데요?”
“어쩐지, 아까부터 계속 전화 돌렸는디 안 받드라.”
“저도 방금 들어왔어요.”
“축하드린다고, 학교서 전화 왔다고 말씀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문승협은 사관학교 1차 시험발표날을 깜박하였다. 학교에서까지 집으로 전화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합격기쁨보다 공군사관학교응시를 집에 숨긴지라 심장이 쫄깃했다. 전화를 엄마가 받았으면 어쨌을까 상상하니 식은땀이 났다.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통화하여 천만다행이었다. 한편으론 부정맥에 재생불량성빈혈과 저혈압진단으로 2차 시험을 어떡할지 고민됐다.
문일고는 사관학교 1차 시험에 9명이 합격하였다. 공군사관학교는 응시자 5명 전원, 해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는 조운대와 장기원 등 각각 2명씩이었다. 예년에 비해 많은 인원이 합격하여 흡족했다. 방학중이어도 학교정문과 본관에 축하현수막을 내걸었다. 합격자들을 불러 모아 2주 뒤 시험을 대비하였다. 2차 시험은 신체검사 및 체력검정과 면접이지만, 간혹 떨어지는 사례가 있어 안심할 수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