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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Aug 19. 2024

단테의 별 - 1권 1부 7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무슨 감정일까? - (5)

4월이 가고 5월이 오는 길목에서 ‘스티브잡스와 스티브워즈니악’이 개인용컴퓨터제조업체‘애플’을 설립했다. ‘용인자연농원’이 개장되었다는 소식과 매월 말일에 ‘반상회’를 실시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푸른 푸른 푸른 산은 아름답구나, 푸른 산 허리에는~.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푸르다’, ‘오월은 푸르구나’등 5월을 알리는 동요가 몇 날 며칠 교정에 울려 퍼졌다. 지나가는 아이들마다 입에 배일정도로 읊조리고 흥얼거렸다. 남녀아이들이 오월의 따스한 날씨를 만끽하며 분주한 개미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노느라 정신없었다. 운동장에서는 ‘축구, 농구, 다방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오징어놀이, 팔방, 땅따먹기, 고무줄’ 놀이를 하였다. 학교 앞 문방구와 만화방도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로 북적이었다. 학교 주변 골목에서도 ‘뱀주사위놀이, 종이축구놀이, 종이야구놀이, 딱지치기’하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려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기다렸다. 이도 부족하여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학수고대했다. 말 그대로 오월은 어린이의 날이었다.

문승협도 방과 후 운동장에서 동네친구들과 ‘찜뿌’를 하였다. 승리의 기쁨을 즐기며 더러워진 손을 수돗가에서 씻었다.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태권도장을 가는 것이 귀찮았으나 피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접고 교문을 나섰다. 교문 주변과 문방구 앞에서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옆골목에서 ‘악, 악’하는 소리가 연속 들려왔다. 흠칫 놀라 무슨 일인지 가보았다. 세 아이가 땅바닥에 넘어진 아이에게 발길질했다. 한 아이가 얼굴을 가리고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또 다른 아이는 울면서 지켜보았다. 문승협이 재빨리 뛰어가 발길질하는 아이들을 밀쳐냈다. 아이를 일으켜 앉혀 얼굴을 보니 코피가 흘렀다. 발길질했던 아이들이 문승협에게 덤벼들었다. 문승협은 차마 때리지 못하고 피하면서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제압한 아이들을 벽 쪽에 줄줄이 세웠다.

“너희들 몇 학년이야.”

“4학년이다 으짤래.”

“난 5학년이다. 이 녀석들이 선배한테 반말이네, 내가 키가 좀 작다고 우습게 보는구나?”

“겉만 보고 선밴지 후밴지 어뜨크롬 안다요?”

“이 명찰 안 보여?”

“5학년이믄 용남이성 알지라.”

“김용남? 나랑 같은 반인데 왜?”

“우리가 용남이성 동상들이어라.”

“그래? 용남이 동생이면, 이렇게 애를 때려도 되는 거야? 아, 지금 너희들 김용남이 빽 쓰는 거구나?”

“알았으믄 우리는 갈게라.”

“그래, 가야지. 가는 건 좋은데, 이 아이에게 사과는 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사과라우, 우리는 먹는 사과밖에 모른디, 큭큭큭.”

“이 녀석들 봐라, 한번 혼나 볼래?”

“우리가 으째서 사과를 해야 되는디라?”

“진짜 몰라서 묻는 거니? 이 아이 얼굴을 봐도 모르겠어?”

“…….”

“빨리 사과해라, 안 그러면, 너희들 오늘 그냥 가기 힘들 거야. 용남이든 용남이 할아버지든, 누가 와도 절대 그냥은 못 간다.”

“이름이 뭐시요? 나중에 뒷감당은 으짤란가 모르겄네잉.”

“문승협이다. 뒷감당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어서 최대한 진심을 담아 이 아이에게 사과해.”

“악, 악”

“아따 시끄러워 죽겄네, 저시끼 또 지랄한다 또.”

“이 자식들이 진짜, 빨리 사과하고 가.”

문승협이 아이들에게 야단치는 사이에도 맞았던 아이가 악쓰는 소리를 몇 번 질렀다.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많이 다친 것 같아 빨리 집에 데려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버티던 껄렁한 아이들이 사과하라는 문승협의 완강한 태도에 결국 사과하였다. 골목을 빠져나가면서 문승협에게 두고 보자며 으름장을 놓았다.

“너도 얼른 사과하고 빨리 가라.”

“저는 3학년이고요, 이 아그 친구여라. 이 아그랑 같이 놀고 있는디, 아까 그 성들이 와갖고 맥없이 때렸어라.”

“아무 이유도 없이 때렸다고? 진짜 나쁜 놈들이네.”

“실은 이 아그가 시도 때도 없이 악하고 소리 지르는 병이 있어라우. 그래서 아까 그 성들이 놀랐다고 때리고, 시끄럽다고 때리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라.”

문승협이 다친 아이의 코피를 멈추게 하려고 손가락으로 코를 집었다. 어떤 아이가 아주머니를 데려왔다. 아주머니가 문승협을 거칠게 밀쳐내고 치마로 다친 아이의 얼굴을 닦아냈다.

“오매오매 내 새끼, 으짜까잉. 한두 번도 아니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네 참말로. 아야 니가 때렸냐?”

“아니어라우 아줌마, 저 성이 안 도와줬으믄 큰일 날 뻔했어라.”

“그라믄 때린 놈들은 어딨대? 썩을 놈들, 으째 죄 없는 아그를 무담시 때리까잉.”

“저 성이 혼내주고 사과하란께는, 사과하고 냅다 도망갔어라.”

“오메오메 그랬냐,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아가 미안하다잉, 니는 안 다쳤냐?”

“네, 저는 괜찮아요. 빨리 집에 데려가서 씻기고, 치료해야 될 거 같아요.”

“그래, 참말로 고맙다. 그래도 혼내주고 사과까지 받아준 거는 니가 첨이다야.”

아주머니가 틱장애를 이해해주진 못할망정 이렇게 아들을 때려서 가슴 아프다며 한탄하였다. 문승협은 아주머니의 사과와 감사보다도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주머니가 다친 아들을 업자, 친구들이 신발과 소지품을 챙겼다. 아주머니가 고마움을 표시하겠다며 집에 같이 가자고 하였다. 문승협은 태권도장을 가야 한다며 사양했다. 태권도장방향으로 같이 걸어가다 2층집 앞에서 인사하고,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아주머니가 집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와 문승협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학생. 학생! 학생!”

문승협은 태권도시간에 늦어 급히 뛰어가느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주머니가 별수 없이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아들을 닦아주고 치료하면서 아들친구들에게 도와준 학생의 이름을 물었다. 아들친구들이 자초지종 설명하면서도 이름을 헷갈려했다.

“이름이 문승엽인가 문성엽인가 그랬는디, 확실히는 모르겄소 아줌마.”

“용남이성네 반이라고 한 건 생각나요. 그라믄 병수성네 반인께, 병수성한테 물어보믄 알겄네요.”


문승협은 태권도장에 도착하여 사범에게 문의했다. 당분간 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게 됐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태권도사범이 ‘정권 지르기, 발차기’등 기본동작과 ‘태극 1,2,3장’만 순서대로 가르쳐도 될 거라고 하였다. 문승협은 사범의 조언에 따라 순서대로 태권도지도를 연습했다.


아주머니가 저녁에 들어온 아들 가병수를 불러 앉혔다. 오늘 동생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며 같은 반에 서울말씨 쓰는 문승엽이나 문성엽이 있는지 물었다. 가병수는 그런 아이는 없다고 하였다. 서울말씨라는 말에 혹시 문승협인가 했으나,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그런 용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화장실에서 강덕구와 있었던 일도 있는 데다, 극도로 싫어하는 문승협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아니라고 확신하였다.


문승협이 태권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숙제를 했다. 문현아숙제를 봐주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할머니가 외출 중이라 거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무척 반가운 목소리임에도 눈물이 먼저 흘렀다.

“여보세요, 유선동입니다.”

“승협이구나. 엄마야, 잘 있었어?”

“어 엄마? 엄마야? 엄마!”

문승협은 그동안 한 번도 전화하지 않은 엄마를 원망했었다. 만약에 전화 오면 단단히 비틀어지겠다고 작심했지만, 막상 예기치 못한 엄마전화를 받으니 말도 안 나오고 목이 메었다.

문현아가 방에서 엄마라는 단말마소리를 듣고 뛰어나왔다. 오빠 앞에 앉아 자기도 바꿔달라는 시늉을 계속하였다. 문승협은 재촉하는 동생에게 알았다고 진정시키며 엄마의 일상질문에 잠자코 대답만 했다. 문현아가 재차 빨리 전화를 바꿔달라며 울상 지었다. 문승협은 하는 수없이 엄마에게 말하고 바꿔줬다. 문현아는 전화를 귀에 대자마자 엄마를 외쳤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무작정 울기부터 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엉엉엉. 언제 와? 언제 데리러 오는 거냐고. 알았어, 빨리 와야 해 알았지?”

문현아도 대답만 하다 수화기를 오빠에게 건넸다.

“승협아, 그래 다른 일은 없고?”

“현아가 밤에 자다가 꿈꾸는 것처럼 자꾸 밖에 나가요, 그거 외에 다른 건 괜찮아요.”

“뭐라고? 언제부터?”

“아마, 엄마가 가고 나서부터 그런 것 같아요.”

“아, 몽유병 같은 건가? 그래, 그래서 어떻게 했어?”

“처음엔 나도 몰랐는데, 새벽에 화장실 가다 알았어요. 현아가 밖에 나와있는 걸 몇 번 본 후로는, 둘이 줄 같은 것으로 묶고 자요.”

“그랬구나, 잘했다 우리 아들. 또 다른 건 없고?”

“네, 없어요.”

문승협은 엄마에게 할 말이 많았으나 어차피 말해도 소용없음을 알기에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어린 남매가 다정다감하고 인자한 할머니집에 맡겨져도, 구박이 아니어도 구박으로 느끼며 눈치 보는 것인데, 하물며 공치사 많고 아들부부에게 불만이 많은 할머니에게 맡겨졌으니, 문승협남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린 남매가 받고 있는 정서적 충격과 불안감을 고려하면 정상생활을 하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부모 없이 맡겨진 생활에 이미 몇 번 경험이 있는 열두 살 문승협은 그렇게 단련돼가고 있었다.


“승협아, 전화번호 알려줄게 받아 적어라, 무슨 일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해. 엄마가 최대한 빨리 갈게, 동생 잘 돌보고 있어, 알았지?”

문승협은 엄마의 다른 말들은 귀에 담아지지 않았지만 불러준 전화번호는 받아 적고 몇 번을 확인했다. 드디어 엄마와 연락할 끈이 생겼다는 안도감에서였다. 기쁨도 잠시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전화다이얼에 채워진 열쇠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할머니가 전화를 걸지 못하도록 채워둔 열쇠였다. 전화를 하려면 할머니에게 열쇠를 달라고 해야 했다. 할머니는 매번 어디에 거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엄마가 할머니에게 전화번호를 절대 말하지 마라고 하였다. 문승협은 엄마당부대로 전화번호를 문현아와 둘만 아는 비밀로 했다. 전화하고 싶을 때 오빠가 꼭 같이 하겠다고 약속하며 달랬다.

문승협남매는 엄마와 오랜만의 통화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저녁을 먹고 집 앞 계단에 앉아 한동안 별을 보며 울적한 마음을 달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문승협은 학교 앞 문방구에 들러 요술공주 종이인형을 샀다. 문현아가 갖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라 엄마대신 동생을 챙기려고 하였다. 그제야 어제 엄마가 전화한 이유를 알았다. 어린이날을 언급하지 않은 엄마에게 조금 서운했다.

문승협의 국민학교5학년 어린이날은 특별한 일없이 평범한 일상으로 지나갔다.


어버이날에는 문현아와 함께 학교 앞에서 파는 카네이션을 네 개 샀다. 각자 한 개씩 할머니가슴에 달아드렸다. 나머지 두 개는 부모를 생각하며 책꽂이에 걸어놓았다. 손주들이 카네이션을 달아줬음에도 시큰둥한 할머니반응에 속상했으나, 할머니에게는 두 고모가 준비한 선물과 작은아버지들의 용돈송금전화가 더 반갑고 기쁠 것이어서 이해했다. 문승협이 진짜 마음 상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용기 내어 할머니에게 어버이날이니 엄마아빠한테 전화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시외전화비가 많이 나온다며 쓸데없는 짓마라고 할머니가 호통쳤다. 문승협은 할머니의 냉정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전화하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전화열쇠를 갖고 다녀서 하지 못했다. 하루빨리 시외겸용공중전화가 상용화되기만 바랐다.


월요일 전교생이 모인 애국조회에서 문승협네 반이 표창받았다. 담임선생이 학교환경미화심사에 전교일등을 수상하여 학교의 모범이 되었다며 기뻐했다. 조회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김용남을 일으켜 세워 치하하였다.

김용남이 반장선거 때 공약했던 대로 학기 초에 실시하였던 학급환경미화를 이끌었었다. 사실 김용남이라기보다는 김용남엄마가 주도하여 학부모를 총동원해 만든 환경미화였다. 학부모의 학급환경미화참여가 관행이라 특별히 문제 되지 않았다. 반에서 환경미화를 위해 학급비도 걷었지만 최소 명목 수준이었고, 초과되는 금액은 김용남엄마가 부담하였다. 김용남모자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칠판상단에는 액자에 넣은 태극기와 교훈을, 교실벽면에는 명화를 모사한 그림을 걸었다. 유리창문에 커튼을 달고, 구석구석에 생태와 건강을 고려한 화분을 놓았다. 반아이들의 특기를 살려 꾸민 시간표와 게시판, 깔 맞춘 주전자와 컵에 청소도구, 하물며 쓰레기통도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잘 꾸며진 교실환경미화였다.


스승의 날에는 학급비를 걷어 카네이션과 선물을 준비하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담임선생에게 전달했다. 학부모들은 따로 식사모임을 갖고 담임선생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그 자리에서 환경미화결과에 대해서도 공치사하였다. 담임선생과 학부모들이 김용남엄마에게 공로패를 주는 것으로 보답했다. 다른 학부모와 아이들의 부채의식은 고맙다는 말로 퉁 쳤고, 김용남모자는 우쭐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문승협이 점심시간에 예쁘게 잘 정리된 교실뒤쪽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최근 한 군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에 없었던 급식명단이 붙어있었다.

급식명단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점심을 싸 오지 못하는 무상급식자와 가정형편과 관계없이 먹고 싶거나 필요에 따라 자유의사로 신청한 유상급식자가 표기되어 있었다. 문승협은 빵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유상급식을 신청했기에 별 문제없었으나, 문제는 무상급식자였다.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에게는 게시판에 붙어있는 급식명단이 가난의 상징처럼 자존심과 자존감이 상처받기에 충분했다.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는 빌미였다. 급식명단이 붙어있지 않았을 때는 누가 유무상급식을 받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차별과 따돌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물론 무상급식을 받는다고 오해받아 억울한 경우도 있었다. 김철종이 대표적이었다. 문승협처럼 유상급식임에도 무상급식이라는 아이들 수군거림에 마음 상했다. 김용남지시로 급식부장 강모세가 헛소문을 퍼트렸다는 사실을 알고서 아이들에게 밝히려 했지만, 문승협이 말렸었다. 그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에게는 상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김철종은 문승협의 만류에도 불구 유상급식이라고 해명하였으나, 이미 씌워진 가난이라는 주홍글씨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문승협도 김철종처럼 오해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록 가정방문 이후 좋은 집에서 잘 산다는 소문으로 희석됐지만, 김철종은 환경미화가 끝나고 유무상급식자가 표기된 명단이 붙고서야 벗어났다. 그러나 급식명단이 붙은 이후에는 무상급식자에 대한 아이들의 차별과 따돌림이 노골적이고 강도도 높아졌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유상과 무상으로 양분하여 집단화되어 가는 양상이었다.


문승협은 고심 끝에 교무실로 담임선생을 찾아가 급식명단에 대해 물어봤다.

“선생님, 급식명단에 궁금한 게 있어서 왔습니다.”

“잉? 급식명단이라니?”

“학급게시판에 붙어있는 급식명단 말입니다.”

“잉, 그것이 으째서야? 학교에서 붙이라는 방침인디, 뭔 문제 있냐?”

“붙였다는 문제보다, 명단에 유상급식과 무상급식이 표기돼 있더라고요.”

“아 그건, 돈 내는 사람하고 안 내는 사람을 구분해서 확인할라고.”

“선생님, 확인은 별도로 하고 그 구분을 없애면 어떨까 해서요. 아이들이 그것 때문에 구분당하는 것 같아요.”

“구분당하다니, 뭔 말이대?”

“명단에 무상급식이라 표기된 아이들이 따돌림당하고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것 같아서요.”

“뭔 소리까? 유상급식받는 아이들이 오해받는다고 해서, 학교방침으로다가 구분해서 표기한 건인디?”

“그 아이들 말이 맞아요, 명단자체에 차별이 숨어있으니까요. 처음엔 무상급식받는 아이들이 당하는 차별을 보고, 자기는 무상급식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무상급식받는 아이들과 공식적으로 구분되고 싶었던 거죠.”

지나가던 교감선생이 멈춰 서서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학생주임과 교무주임을 비롯한 몇몇 선생들이 문승협과 고삼랑선생 주변을 에워싸듯 모여들었다. 교감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들을 쳐다보자, 선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교감이지만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러면, 승협이가 문제를 발견했으니 혹시 방법도 생각해 봤니?”

“네, 생각은 해봤지만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급식명단을 관리하고 없애면 제일 좋을 텐데.”

“정부의 급식장려홍보정책으로 게시판에 부착하라는 지침이 있으니, 급식명단을 때기는 곤란하다.”

“그럼, 유무상구분표기를 없애야 하는데, 유상급식받는 아이들이 불만일태고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유상급식받는 아이들이 특별의식을 갖고 무상급식받는 아이들을 차별하고 따돌리는 것입니다.”

“…….”

“이건 저의 의견인데요, 보편성확장효과라는 심리를 이용하면, 비율구조조정만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보편성확장효과는 뭐고, 비율구조조정은 뭐다냐?”

“인간심리에 관한 어떤 책에서 본 걸 참고한 건데요. 인간집단에서 자신이 누리느냐 못 누리냐는 심리적 경계가 50대 50이랍니다. 누리는 사람 비율이 51%가 넘어가면 자신만 누린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누구나 받는 것으로 느끼면서, 특별함의 의미가 사라지고 특권이나 차별이라는 의식이 없어진다는 논리입니다.”

“하하, 그래서, 어디 한번 들어 나 보자.”

“지금 우리 반을 표본으로 보면, 무상급식 20% 유상급식 30% 정도여서, 학생절반이 급식명단에 있어요. 따라서 유상급식을 받는 30%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특권과 차별 의식이 있다고 예상됩니다, 물론 착한 아이들도 있으니 30% 전부는 아니겠지만요. 유상급식은 신청하지 않는 이상 어찌할 수 없으니, 만약에 무상급식을 10% 정도 늘여 30%가 되면 반 아이들 60% 이상이 급식을 받게 되고, 아이들 관심은 유무상급식에서 그냥 친구들과 함께 먹는 급식으로 바뀔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급식명단에 없는 아이들 입장도 급식 먹는 자체를 부러워하고 차별에는 그다지 관심 없을 것이며, 일부는 오히려 무상급식이라도 받고 싶을 겁니다. 이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유무상급식표기만이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급식명단이 아이들의 주홍글씨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러면, 일단 교무회의를 열어 유무상표기는 없애는 방향으로 하고 전반적으로 한번 검토해 봅시다.”

“네. 아이들이 유무상급식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문제가 적을 것 같습니다.”

교감선생의견에 학생주임이 답했다. 선생들이 각자 자리로 가면서 문승협에 대해 한 마디씩 하였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라 그런지, 뭔가 좀 다른데?”

“생각이 깊은 아이군.”

“나는 선생이 돼갖고 그걸 몰랐으까, 제자 보기 좀 쪽스럽네, 하하.”

최선경의 담임 오성희선생이 미소 지으며 문승협머리를 한번 쓰다듬었었다. 자리로 가다 돌아보며 생각했다.

‘저 아이는 가슴에 슬픔이 있지만, 마음은 참 따듯한 아이구나’

문승협은 담임선생과 둘만 남게 되자 부탁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뭔디, 말해봐.”

“저기, 박진숙 있잖아요.”

“아따 뜸 들이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해보란께, 박진숙이 으째서.”

“네, 박진숙을 무상급식을 받게 해 주면 안 될까 해서요.”

“박진숙이를?”

“네, 가능하시다면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이유가 뭔디?”

고삼랑선생도 가정방문으로 박진숙의 가정환경을 알고 있었으나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문승협은 박진숙이 점심시간마다 없어지는 것과 가정형편에 대해서도 아는 만큼만 설명하였다. 절대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도 빠트리지 않았다.

얼마 후 교무회의를 거쳐 급식명단이 바뀌고 유무상급식표기도 없어졌다. 급식자가 박진숙을 포함해 21명이 늘어난 53명으로 80%가 넘었다. 특별했던 급식이 누구나 먹는 급식이 되어 급식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급식으로 인한 차별도 수그러들었다. 추가신청한 유상급식자도 많이 늘었지만, 교감선생이 학교육성회지원으로 무상급식비율을 높였다. 앞으로 계속 높여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문승협을 따로 불러 설명해 주며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말하라고 격려했다. 앞으로 있을 학생들 태권도지도도 당부하였다.


학교에서 매주수요일 5교시를 태권도시간으로 정했다. 오전반오후반수업으로 나눠지는 저학년과 중학교입시를 앞둔 6학년을 제외하고 4∙5학년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문승협은 체육담당선생의 지휘감독아래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가르쳤다. 많은 아이들 앞에 선 첫날은 엄청 떨렸으나, 두 번째 수업부터는 여유도 부리며 점차 안정을 찾았다. 선후배와 동급생들이 많이 알아봐서 쑥스럽고 불편했다. 세 번째 수업부터는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늘어갔다. 태권도장에 다니는 빨간 띠 이상 아이들을 앞에 세워 시범을 보여주게 하였다. 태권도지도가 끝난 이후 수업은 졸음과의 전쟁이었다.

문승협이 졸음과 일전을 불사한 나른한 몸을 이끌고 방과 후 교문을 나섰다. 교문 앞 건너편 길모퉁이에 낯익은 할머니가 오른쪽 신발을 손에 들고 멍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단박에 박진숙의 할머니임을 알아보았다. 혹시 주위에 박진숙이 있는지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다가가 인사하였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잉? 누구까?”

“저 모르시겠어요? 저번에 할머니집에서 물도 얻어 마셨는데.”

“글쎄, 도통 모르겄는디.”

“저 사실은 박진숙짝꿍이에요, 일전에 리어카도 끌어드렸잖아요.”

“음마, 박진숙은 또 누구까?”

“할머니손녀잖아요, 아니에요?”

“박진숙이 누군지 모르겄고, 학상, 우리 집 좀 찾아줄란가?”

문승협은 할머니의 초점 없는 눈빛과 두려움이 상존하는 무표정에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녀 이름조차 모른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나고 당황스러웠다.

“할머니, 집이 어딘지 모르세요?”

“아따, 내가 집을 알믄 혼자가제, 뭐더러 학상한테 물어보겄는가?”

문승협은 예전에 정신이 깜박깜박한다는 할머니말이 떠올랐다. 침착하게 할머니손에 들린 신발을 땅에 내려놓으려 하였다. 할머니가 신발을 안 뺏기려 꽉 쥐고 가슴에 품으며 소리쳤다.

“으째 그란가? 으째 내 신발을 뱄을라고 한가? 도둑이어?”

“그게 아니고 신발을 신겨드리려고요, 집에 가려면 신발을 제대로 신어야죠 할머니.”

“신발은 됐고, 얼른 집이나 갈차줘.”

문승협은 할머니가 신발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해 하는 수 없이 그냥 놔뒀다. 혹시 주변에 할머니의 리어카가 있는지 살폈다. 문방구 옆 골목길입구에 있었다. 할머니손을 잡고 리어카 쪽으로 갔다. 폐박스 몇 장과 공병 몇 개가 담겨있는 리어카를 끌고 할머니집으로 향했다.

그때 문방구에 있던 최선경이 지나가는 문승협을 보았다. 출입구 쪽으로 나가 고개를 내밀고 주시하였다. 문승협을 보면서 참 이상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앗간, 분식집, 만화방, 문방구, 하물며 학교동산에 앉아있을 때도 자꾸 눈에 띄어 이상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행동도 잘 이해되지 않아 이상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슴에 무언가 와서 꽂히는 것이 이상했다. 소문들도 이상하고 오늘도 이상했다.

최선경은 미술수업에 쓸 왕자크레파스를 고르는 걸 망각하고 귀신에 홀린 듯 문승협을 뒤따라갔다.

문승협은 끌고 가던 리어카에 실린 물건들을 정리하여 공간을 만들었다. 걷기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태웠다. 더운 날씨에 할머니를 태우고 언덕을 올라가느라 땀이 났다. 할머니집에 도착해서는 속옷까지 젖었다. 세워놓은 리어카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는데 언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 전에 연필 준 오빠다. 어? 할무니.”

“안녕, 잘 있었니?”

박진숙의 동생이 문승협을 알아봤다. 리어카에 앉은 할머니를 보고 약간 놀랐다. 문승협이 할머니를 부축해 토방에 앉혔다. 박진숙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네 이름이 뭐야?”

“무담시 남의 이름을 물으까잉. 박선숙인디 으째.”

“하하, 뭘 어쩌긴. 선숙이가 할머니께 물 좀 떠다 드리자.”

박선숙은 언니 박진숙처럼 툴툴대면서도 물을 떠다 줬다. 문승협은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옷소매로 닦아냈다. 수건이 있으면 해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익숙한 흔적과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짐작이 맞아 다행이었다.


방안에는 가정방문 때 문승협집에서 챙겨갔던 과자봉지들, 학교급식 빵봉지와 우유병종이뚜껑, 그동안 책상에 그어놓은 선을 넘어가 박진숙소유물이 된 문승협의 필통과 연습장도 있었다. 문승협이 의도적으로 넘어가게 하면서 박진숙의 동생들에게 가져다주길 바랐었던 학용품들이었다. 모두에게 까칠하고 쌀쌀맞은 박진숙이지만 마음은 따뜻하리라고 생각했었다. 자신보다 동생들을 더 챙길 거라는 문승협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박진숙의 할머니가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할머니, 좀 괜찮으세요?”

“잉, 인자 괜찬해. 내가 깜박 정신 놔 불었는가? 참말로 으짜믄조으까잉.”

“아뇨 별일 없었어요, 걱정 마시고 좀 쉬세요.”

박진숙의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박진숙의 동생들이 연습장과 연필을 들고 토방으로 나왔다.

“오빠, 나 산수 좀 가르쳐주라.”

“네가 막내 구나, 이름이 뭐니?”

“나는 미숙인디, 박미숙.”

“귀엽게 생겼네, 몇 살이야?”

“일곱 살인디.”

“그럼, 선숙이는?”

“아홉 살.”

“내 동생들하고 나이가 똑같네.”

“동생 있어?”

“응, 여동생만 둘, 너희랑 같은 나이야.”

문승협은 두 아이에게 산수를 가르쳐줬다. 동생들의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해주면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조금 측은했다. 박선숙에게 가르쳐 주려고 연습장에 구구단을 쓰다 기절할뻔하였다. 깜박 잊고 있었던 박진숙이 들어왔다.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박진숙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문승협을 보고 목석처럼 굳었다. 멍하게 서있다가 문승협에게 상상이상의 욕설을 쏟아부었다. 저주에 가까운 욕을 퍼붓더니 급기야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문승협은 박진숙이 오기 전에 갔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광경을 담너머에서 쭈욱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문방구에서부터 문승협을 쫓아온 최선경이었다. 집에 들어가는 박진숙도 못 봤다. 박진숙집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엿보고 있는 자신의 상황도 황당했다.


문승협은 사면초과에 빠져 박진숙을 달랠 엄두가 안 났다. 어찌할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일단 무조건 박진숙의 집인 줄 몰랐다고 부인해야 했다. 긴장되는 마음을 다잡으며 변명을 시도하였다.

“바 박진숙, 여 여기가 너희 집이야? 나는 네가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야, 와 이런 우연이 있나.”

“뭐시라고, 우연? 시방 우연이라고 했냐? 나한테 우연이 맞아서 한번 디저볼래?”

“야 박진숙, 진정해라. 왜 그렇게 욕하고 험악하게 말하는 거야, 좋은 말로 해도 되잖아. 나는 네가 왜 화내고 욕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뺀질이 서울놈이 뭘 알겄냐? 아야, 잘 들어라잉. 오늘 본 것은 똥밭에 묻어 불고, 싹 다 잊어. 그라고, 그런 값싼 동정 섞인 동태눈깔로 나를 쳐다보지 말어. 확 뽑아 불라니까, 알았어? 이 개쌍노무시끼야, 꺼져. 빨리 꺼져 이 시끼야, 죽여 불기 전에.”

“그 그래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그만 화 풀어, 나 지금 갈게.”

“아가, 진숙아, 그 아그한테 그라믄 못써.”

"네 할무니, 알았어라."

“할머니, 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문승협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박진숙을 위해서도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자 재빨리 빠져나갔다.


최선경은 얼른 담벼락 옆으로 몸을 숨겼다. 박진숙집에서 나와 걸어가는 문승협뒷모습을 지켜보다, 다시 대문 옆에 기대어 귀 기울였다. 신기하게도 박진숙이 할머니 앞에서는 금세 고분고분하였다. 박진숙이 할머니의 자초지종에 이어 동생들 말을 듣더니, 동정받는 건 죽는 것보다 싫다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처한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그제야 최선경은 왜 문승협이 우연을 핑계로 댔는지 이해되었다.

최선경은 의도치 않게 몰래 숨어 다 지켜보고 다 들었다. 무엇보다도 문승협이 박진숙가족을 도와왔다는 이야기가 뜻밖이었다. 문승협을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묘한 호감이 일었다. 집에 도착할 즈음 크레파스를 못 산 것이 생각났다.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문승협이름을 그려보았다.


문승협은 다음날 등교해서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박진숙눈치를 살폈다. 박진숙태도는 이전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승협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안도하였다. 하지만 어제 그렇게 미친 듯이 행동하다 할머니말 한마디에 순한 양으로 둔갑한 박진숙의 정신세계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문승협이 서둘러 점심을 먹고 급식 빵과 우유를 챙겨 들었다. 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2학년교실로 향했다. 3학년교실이 있는 2층 계단 입구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려 멈칫했다. 때마침 문현아가 1층 입구로 나왔다.

“오빠.”

“교실에서 기다리지, 왜 나와있어.”

“교실에 있다가 창문으로 오빠가 오는 걸 보고 나온 거야.”

“자, 여기. 길거리에서 먹지 말고, 집에 가서 먹어.”

“알았어, 맨날 잔소리는. 오빠, 저거 봤어? 저기 3학년이 급식빵을 훔쳤대.”

2층 계단에서 소란 피우던 무리들이 한 아이를 데리고 1층으로 내려왔다. 빵을 훔쳤다는 아이가 심하게 저항했다. 문승협이 이상한 점이 눈에 띄어 아이들을 멈춰 세웠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태권도를 지도하는 문승협을 알아보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네가 빵 훔치는 걸 봤다고? 넌 4학년이고, 훔쳤다는 쟤는 3학년인데?”

“내 동상이 저 아그랑 같은 반인디, 나한테 울믄서 오드만 빵을 잃어버렸다고 했어라우.”

“그러니까 말이야. 네가 빵을 잃어버린 장소에 같이 있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쟤가 훔쳐갔는지 알았냐고. 더군다나 3학년은 빵급식이 안되잖아.”

“내가 빵을 타자마자 뛰어가서 동상책상에 놓고 왔는디, 동상이 첨에 나한테 와갖고 빵을 달라 길래, 책상에 놓고 왔은께 가보라고 했지라. 근디, 동상이 가본께 없었다고 합디다.”

“어찌 됐든, 쟤가 훔쳐간걸 못 본건 맞네.”

“그건 맞는디, 꼭 봐야 안다요, 딱 보믄 알제. 그라고, 우리는 용남이성 동상이어라.”

“뭐? 용남이 동생이 왜 이렇게 많니. 친동생이야?”

“친동상은 아니고라, 친한 학교동상이어라우.”

“용남이 이름이 이 대목에서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만, 네가 못 봤는데 뭘 딱 보면 안다는 거야?”

“저 아그는 고아원서 산디, 급식은 언감생심이지라.”

“무슨 말이야, 고아원에 살면 급식을 못 먹는다는 거야? 너 참 웃긴 아이구나?”

“아, 무상급식. 무상급식이라고 쳐도, 빵을 두 개나 갖고 있었은께 답은 나오지라.”

“두 개 갖고 있으면 훔친 거야? 쟤한테 물어봤어?”

“물어보지는 않았는디, 꼭 물어봐야 안다요?”

“그럼, 짐작만으로 이렇게 많은 아이들 앞에서 이러는 거야? 만약 쟤가 훔친 게 아니면 어쩌려고 그래?”

“뭘 어쩌긴 어째라, 백 프로 맞은디.”

“너 훔친 거 맞니?”

“아니라우, 훔친 거 아니란 말이요.”

“그럼, 어떻게 빵은 두 개가 된 거야?”

“우리 성아가 줬어라우, 고아원 가서 동상들하고 나눠먹으라고.”

“봐. 얘는 훔친 게 아니고 형이 줬다잖아?”

“워메워메, 이 시끼가 사기 치네. 아야, 고아시끼가 성이 어딨어?”

“야, 너 말 조심해? 말을 함부로 하고 있어. 너 그러다 나한테 혼난다, 응.”

“저 아그가 거짓말하잖애요.”

“정말 맞단께라우, 진짜 우리 성이 준거여라우.”

“그라믄, 니 성이 누군디? 말해 보란께? 느그 성한테 물어보믄 될 거 아니어.”

“그래, 형이름을 말해줄 수 있겠어?”

“조동구여라우, 5학년 9반.”

문승협은 조동구에게 동생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 어떻게 할래, 조동구한테 가서 물어볼래?”

“못 물어볼 것도 없지라, 우리한테는 용남이 성이 있은께.”

“하하, 그래, 일단 이렇게 하자. 조동구한테는 내가 물어볼 테니까, 너는 이 빵을 네 동생에게 줘. 그리고, 쟤가 훔쳐간 게 아니면 반드시 사과하고, 알았니?”

문승협이 문현아에게 빵을 달라고 해서 건넸다. 4학년 아이가 빵을 거칠게 낚아채며 째려보았다. 문승협이 꿀밤을 한방 먹이려다 참았다. 조동구의 동생에게 다가가 다친 곳이 없나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갑자기 울면서 문승협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모았다.

“흑흑, 성, 죄송해요.”

“응? 넌 왜 그래?”

“장난할라고 책상 위에 있는 빵을 교탁에 숨겼는디, 이러코롬 될 줄은 몰랐어라우.”

“뭐? 그럼 아까라도 말했어야지.”

“친구 성까지 올 줄은 몰랐어라우, 흑흑.”

“그래, 지금이라도 말해서 다행이다. 그것만도 큰 용기야, 괜찮아, 울지 마.”

그 아이는 김용남과 조동구이름이 오르내리자, 나중에 밝혀지면 혼날까 봐 겁먹어 문승협에게 이실직고하였다. 그 아이의 단순한 장난으로 시작된 해프닝이었다. 한 아이가 뛰어가 교탁에 있는 빵을 가져와 사실이 확인되었다. 4학년 아이와 함께 왔던 무리들이 조동구동생에게 사과하고 가면서 예사롭지 않게 째려보았다. 문승협이 조동구동생에게 집에 가서 동생들과 나눠먹으라고 문현아빵도 주었다. 조동구동생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 갔다. 문승협은 문현아에게 빵을 달라고 했을 때 오빠를 믿고 순순히 따라준 상을 줘야 했다. 수업 끝나고 집에 갈 때 오뎅과 떡볶이를 사가겠다며 동생마음을 달랬다. 문현아를 교문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김철종이 다가와 엉덩이를 뚝 쳤다.

“뭐야, 언제 왔어. 친구가 위험에 처했는데, 비겁하게 모른척했단 말이지?”

“아까부터 쭉 보고 있었는디 잘 하드만. 그란디 친구라는 놈이 원체 겁이 없은께, 오히려 고것이 걱정이다야. 그라고 본께, 너 지금 나한테 친구라 했냐? 처음으로 나한테 친구라고 했다잉, 인자 친구로 인정한 거여?”

“뭔 소리야, 같은 나이면 다 친구지.”

“고것이 아니제, 친구믄 의리제 뭔 소리여.”

“하하, 그래서 의리 있는 철종씨는 지켜보고만 있었구나?”

“그란디 승협아, 앞으로는 말이어, 가급적 남일에 끼어들지 말어. 그래도 정 못 참겄으믄 적당히 하든가, 친구로서 하는 충고다잉.”

“갑자기 뭔 소리야, 내가 남일에 끼어든 게 뭐 있다고. 그리고, 내가 심한 건 또 뭐야?”

“아야, 너 아까도 말이어. 많은 아그들이 지켜보고 있는디, 용남이 동생이라고 했는디도 니가 쪽 주믄, 고놈들이 가만있겄냐?”

“지들이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날 패기라도 하려나?”

“시끄럽고, 아무튼 항시 조심하라고, 알았냐? 고놈들이 언제 뒤통수 칠지 모르고, 용남이한테 말해서 보복할지도 모른께.”


문승협은 수업이 끝난 뒤 오뎅과 떡볶이를 사러 김철종과 분식집에 들렀다. 포장하는 동안 둘이 앉아 떡볶이와 오뎅을 먹고 있었다.

“친구동생이믄 내 동생이나 마찬가진께, 포장해 갈것은 내가 낼란다. 대신, 여그서 먹는 건 니가 내.”

“말도 안 돼, 왜 내 동생이 네 동생이냐? 그냥 맛나게나 드셔, 내가 알아서 낼 테니.”

“염병하네, 그라믄 나 안 먹을란다. 그냥 먹기 부담된께 나눠 내자는 말인디, 허벌라게 섭하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오늘은 내가 내고, 다음엔 네가 내면 되잖아.”

“어? 가분수다. 어이 가분수, 동생이랑 떡볶이 먹으러 왔냐?”

“지랄, 쓰잘데없이 아는 체 말고, 먹던 거나 쳐 먹어라잉.”

“아따 시끼, 입이 시궁창이냐? 반갑다는 말인디, 말이 무자게 험하다잉.”

“야 철종아, 동생도 있는데 별명을 부르면 쓰냐.”

문승협이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등뒤에서 '악, 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병수의 동생은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 지르며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돌아보는 문승협과 눈이 마주쳤다.

“어? 그 형아다. 형아, 저 형아가 저번에 나 도와줬던 형아여. 그때 엄마가 말한.”

“진짜? 진짜여? 잘못 본거 아니고?”

“맞단께. 형아, 나 기억하요? 저짝 골목에서 나 때린 시끼들 혼내준, 그 형아 맞지라우.”

“아, 너구나. 그래, 다친 곳은 괜찮니?”

“예, 인자 괜찬해라우. 엄마가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고, 만나믄 꼭 데려오라고 했는디.”

“하하, 아냐, 괜찮다니 정말 다행이다.”

김철종이 무슨 일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문승협은 아무 일 아니라고 고개 저으며 오뎅을 집었다. 가병수는 순대와 떡볶이를 포장해서 동생과 갔다. 김철종이 오뎅국물을 떠먹고 다시 물었다.

“뭔 일인디, 언능 말해 보란께?”

“별일 아냐, 그냥 그런 일이 좀 있었어.”

“아따 궁금해 죽겄다, 속 시원히 좀 말해라.”

“그래, 궁금해 죽어라, 하하하.”

“지랄. 어? 저 시끼가 으째 또 왔대?”

문승협이 돌아보니 가병수가 다가왔다.

“할 말이 있는디, 잠깐 앉아도 되까?”

“앉아, 무슨 일인데?”

가병수가 장애를 이유로 동생이 당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문승협도 지체장애가 있는 사촌동생이 있어 가병수의 마음과 고충을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했다.

“당한 동생 마음, 지켜보는 형 마음, 돌보는 부모 마음, 다는 아니지만 나도 조금은 알아.”

“우리 엄마가 남이 도와준 게 첨이라서 그런가, 엄청 고마워하고 그랬어야, 고맙다잉.”

“아냐, 고마워할 거 없어, 어찌 보면 당연한 할 일이야. 장애가 죄도 아닌데,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취급하고, 진짜 죄인은 나쁘게 대하는 사람들이지. 언젠가는 그런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이 분명 생길 거다.”

“니가 그렇게 말해준께 고맙다야.”

“고맙다는 말 이제 그만해라, 쑥스럽다. 장애인가족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니, 하지만 우리 작은엄마소원을 듣고 아주 조금은 알았어.”

“느그 작은엄마소원이 뭔디야?”

“장애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 이래.”

“맞어, 우리 엄마도 그런 비슷한 말한 적 있어.”

“장애 있는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부모의 소원에, 모든 이유와 절실함이 다 담긴 거 같더라. 그래서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장애인가족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됐어.”

가병수가 장애동생을 많이 애착하였다. 나름 열심히 동생의 보호자역할을 해왔다. 동생을 괴롭히는 애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김용남도움이 필요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김용남에게 아부도 하고 꼬붕행세도 했으며, 여러 가지로 상납도 했다고 고백하였다. 그동안 김용남지시로 문승협과 김철종을 적대시했으며, 따돌리고 괴롭혀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였다.

“거봐라 승협아, 내가 뭐라 드냐, 내 말이 맞제?”

“그러게, 슬픈 이야기네요 철종씨. 병수야, 너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우리한테 했던 것처럼 그대로 해. 너의 진심이 뭔지 알았으니까, 우리가 이해할게.”

“그래도 그렇지, 인자부터는 그라믄 안되제.”

“아냐, 네 행동이 달라지면 김용남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네 동생도 보호해야 하니까. 철종씨도 이해하셨지라우?”

“암은요, 이해했지라우 승협씨, 허허허.”

“그래, 이해해 줘서 참말로 고맙다잉.”

“그런데 이상한 게 말이야, 김용남의 동생들이라면 병수를 잘 알 텐데, 왜 병수동생을 때렸을까?”

“병수동생인지 몰랐든지 그랬겄제?”

“그럴 리가, 병수동생이 이 동네에 산지 오래돼서 웬만한 아이들은 다 알 텐데. 안 그러니 병수야?”

“잉, 맞어. 사실은 나도 그것이 괘씸해.”

“용남이한테 이번에 동생이 당한 일을 말했니?”

“아직 안 했는디?”

“김용남한테 말하고,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봐. 그 용남이 동생들도 용남이한테 좀 혼나야 하니까.”

“알았어. 용남이한테 말하고, 어떻게 하는지 너한테 보고하까?”

“너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보고는 무슨 보고야 친구끼리. 그럴 필요 없고, 내가 궁금하면 물어볼게.”

가병수는 이를 계기로 문승협을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적대시하였던 마음의 짐을 덜어 홀가분했다. 그러나 김용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문승협과 김철종에게 양면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어설펐다. 원래 착하고 순한아이라 행동과 표정에 다 나타났다. 김용남의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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