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내릴 듯하던 비가 잠시 그쳤다. 튜브에 몸을 맡긴 채 풀장 안을 동동 떠다니다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멈춘 듯 사방은 고요했다. 비현실적인 시공간이 낯설어 주변을 더듬었다. 이거 정말,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결혼생활 17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에서 맞이한 명절이었다. TV에서만 보았던 연휴 첫날 공항, 설레는 표정으로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드디어 나도 있게 되는 거였다. 마땅히 기쁠 일이다. 그런데 여행이 끝난 후 드는 이 마음은 뭘까.
시아버지에게 명절 차례상 준비는 거를 수 없는 의례였다. 장손인 남편, 외며느리인 나. 그런데 해외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니 내가 ‘우리도 명절에 온 가족 해외여행 좀 가보자.’는 남편의 말에 심드렁할 수밖에. 그런데 그런 아버님이 아들의 제안에 동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차례의 무릎 수술로 더없이 쇠약해진, 일 년 전 병원에서 더 속상한 내용의 진단을 받은 시어머니를 생각한 결정이었을까.
여행 시작 일주일 전부터 아버님의 본격적인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거동이 어려운 시어머니를 부축하여 매일 산책은 기본이고 현지에서의 차례상 준비까지 마쳤다. 음식은, 공항 검색대에서 줄줄이 정체를 드러냈다. 아버님은, 배낭 안에서 대추와 밤을 꺼내던 직원이 밤 까는 칼을 말없이 압수하자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어머님이 앉아 있는 휠체어를 힘껏 밀며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여덟 명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어머님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한 명은 지팡이를, 한 명은 가방을, 한 명은 휠체어를, 우산을 챙겼다. 어머님에게는 차를 타는 일이 등산과도 같아서, 차 안에서 한 명이, 밖에서 다른 한 명이 어머님을 끌고 밀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님은 우리 모두가 한자리에 있는지 연신 확인했다. 의사가 진단한 어머님 질환의 증상 중 하나였다. 옅어지고 있는 당신의 세계에서도 최선을 다해 가족의 안전을 챙기는 것.
여행 일정의 대부분을 숙소에서 보내던 어머님이 큰 결심 후 방문한 곳은 사파리였다. 동물의 왕국 애청자이신 어머님은, 그동안 TV로만 지켜본 호랑이와 사자가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도 우리 중에 자리를 이탈한 가족이 없나 확인하는 것도 함께였다.
떠나기 전날 조식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아버님이 준비한 차례상이 보였다. 회복이 더딘 채 침실에 누워계신 어머님과 조용히 차례를 준비하는 아버님의 모습은 한국에서의 여느 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소는 달랐으나 내용은 같았다. 전날 사파리에서 동물을 바라보시던 어머니와, 한국 집에서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점은 하나였다. 햇빛 아래에서 바라본 어머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해지셨다는 것. 어머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차츰 내게서 떠나가고 있다는 것.
차례를 마친 아버님은 일생일대의 미션을 해낸 듯 후련해 보였다. 사실 차례상은 아버님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손수 먹을 갈아서 쓴 지방과 위패를 정리하는 아버님을 보며, 아버님이 차례를 통해 끝내 붙잡으며 떠나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옛날일까, 어머니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일까, 시대가 바뀌어 훨훨 날아갈 채비를 하는 자식들일까?
하루 동안 쓸 에너지를 오전에 다 소진하신 듯한 아버님도 이윽고 침실로 향했다. 두 분이 주무시는 동안 나는 조용히 숙소 옆 풀장으로 걸어 나왔다. 다른 이들의 SNS에서 익히 곁눈질한 것을 흉내 낼 참이었다. 물에 몸을 담근 채 눈에 들어오는 순간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속의 나는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일 것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지나갔다. 이 순간도 떠나가고 있었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물에 떠 있는 채로, 조용히 나를 떠나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