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늘 느리고 조용하게 도착한다"
OECD 국가 중 이륜차(오토바이, 스쿠터 등)의 고속도로 및 자동차전용도로 통행은 대부분 허용되며, 대한민국만이 전면 금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누가 내게 물었다.
"오토바이로 고속도로 갈 수 있냐"라고 말이다.
현재는 갈 수 없다. 하지만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상대는 박장대소와 함께 내게 말했다.
"오토바이 타는 대통령이 당선이 돼도 고속도로는 절대 안 열린다"
그의 말은 틀렸을까?
아니면 내 말이 틀린 걸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
왜 해결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허송세월 날로 먹으려고 하는가?
힘이 샘솟고 패기로 무장되어 있던 젊은 시절엔 저 말은 나약한 자들의 변명이었을 뿐이다.
삶은 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실패를 마주할 때면 영원한 미로에 갇힌 것 같은 상실감에 잠기곤 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에 섰다.
지동설을 철회하라는 압력에 굴복한 뒤 그가 조용히 읊조린 말이다.
17세기 종교/철학적 이유로 천동설이 정설이었지만, 17세기 후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등장하면서 지동설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정설로 자리 잡았다.
대략 150~200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 시간은 틀린 시간이 아니었다.
이해가 필요한 시간이었을 뿐이다.
변화는 언제가 온다.
지금 가는 길이 옳다고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변화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도 조급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명백한 증거가 없으니 누군가는 내게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다.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변수의 개입과 각자의 속도가 얽힌 흐름 속에서 존재한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았다.
매번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결과는 파국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변화가 당장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보냈던 모든 시간이 틀렸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 심지어 잿더미 같은 시간들은 기어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변화는 내 시간만 적용해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존중받지 못했던 나의 시간, 내가 존중하지 못했던 타인의 시간 이 모든 시간이 기꺼이 존중될 때 변화는 비로소 따뜻한 봄처럼 다가온다.
그때 나는 겨우내 <닦고, 기름치고, 조여두었던> 바이크에 연료를 가득 채우고 시동을 걸어 어딘가에 닿기 위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지 않을까?
기존 영종대교·인천대교는 고속도로로 이륜차 통행이 제한돼 배편 이용 등 제약이 있었다.
2026년 1월 5일 제3연륙교(청라하늘대교)는 이륜차 통행이 가능하며, 이륜차는 통행료 면제이다.
아주 작고 느린 변화일지라도, 그 역시 누군가의 시간 위에 조용히 도착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