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남편에게서 졸업(卒業) 하였다.
졸업(卒業)
1. 명사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침.
2. 명사 어떤 일이나 기술, 학문 따위에 통달하여 익숙해짐.
나는 오토바이를 타는 평범한 주부다.
몇 년 전까지 남편의 뒤에 앉아 드라이브 다니길 좋아했는데, 복귀 길에 예순은 되어 보이는 대왕(?) 언니 라이더께서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유유히 지나가는 것을 보고 와 저거다 싶었다.
나는 그날 당장 면허를 따겠다고 설쳐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부부라이더가 되었다.
오토바이는 신체가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속도도 빠르다. 도로의 흐름을 읽는 시야도, 두 바퀴 이기에 도로 노면 상태도 잘 체크해야 한다. 바닥에 미끄러질 만한 모래나, 기름이 떨어져 있는지, 혹은 포트홀이 깊게 파여 있는지도 말이다.
해당의 내용들은 로드를 보는 남편의 몫이었다. 나는 왼손으로는 기어변속을 위한 클러치 레버를 쥐기 바쁘고, 오른손은 스로틀을 쥐고 있다. 왼발로도 속도에 맞는 기어변속을 진행하며, 오른발로는 뒷브레이크를 잡는다.
요약하자면 왼쪽은 기어변속을, 오른쪽으로는 가속 및 브레이크를 조작한다는 내용이다.
초보 오토바이 운전자인 나는 운전하기도 바빴다. 그래서 남편뒤만 쫄쫄 쫄 따라다니곤 했다. 지금은 남편으로부터 독립된 솔로 라이더가 되었다. 바이커끼리는 보통 혼자 타는 사람들을 솔투족이라고 부른다.
나는 남편과 속도가 다르다. 남편은 출력 좋은 바이크답게 빠른 주행을 원하고, 나는 출력을 낭비하는 유유자적 라이딩을 원한다. 그래서 남편으로부터 졸업했다.
내가 원하는 속도로 다닐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식사도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다. 가끔 심심하기는 하다.
처음엔 너무 좋았다. 같은 팀이 있고 소속감이 느껴졌고, 바이크 정보에 무지했기 때문에 어느 센터에서 잘 고쳐주는지 어떤 장비가 좋은지, 어떤 코스가 있는지 정보습득이 빨랐고, 투어팀의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그들과 너무 행복했다.
나는 가끔 혼자 타고 싶기도 했고, 남편과 둘이서만 타고 싶을 때도 있었다. 팀의 맏언니 J와 정말 깊은 우애를 나누는 사이였는데, 언니는 내가 언니를 피하는 걸로 오해를 했던 것 같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오해가 깊어졌고, 박 터지게 싸우고 모임을 땡쳤다.
그 뒤로 솔로투어를 즐기는 아줌마가 되었다. 이제는 완벽히 혼자 투어 다니는 것이 익숙해져서 타인의 속도나, 주행 스타일을 맞추기 힘들어졌다. 난 여전히 혼자 익숙한 길을 달릴 때의 안정감이 좋다.
내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맏며느리가 구정 설날에 시어머님께서 차려주는 밥상만 꼬박 받아먹고 복귀해야 할 정도로 끙끙 앓았다. 상대는 앞에서 오늘 내 덕에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었던 일들이 내게 상처로 남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그랬다.
"문희야, 차라리 앞에서 너 싫다고 대놓고 표현하는 사람은 양반이야."
그러다 문득 예전에 박 터지게 싸우고 땡쳤던 그 모임의 맏언니 J 가 생각이 났다. 나는 오랜만에 맏언니 J에게 연락을 했다. 안부를 묻다가 내가 그날의 일을 꺼냈다.
"언니, 예전에 언니랑 싸웠잖아요."
"단톡방도 말없이 나갔죠 제가."
"다시 한번 더 사과드릴게요"
"제가 너무 어렸어요.. 미안했어요."
"언니의 애정 어린 마음을 그땐 못 봤어요."
"늦었지만 사과 다시 하고 싶었어요."
"나도 미안해"
"내가 언니인데 욱하고 철딱서니 없었어"
"언니답지 못하게 널 몰아세웠어."
"시간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나의 미안함도 받아줘.."
우리는 처음으로 그 날의 일을 자세히 나누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숙제 같은 지인 두 명이 있다. 영 사이가 그렇다. 사실 할 일도 많은데 내 에너지가 종종 증발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자식도 키워야 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 내가 세상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전지현, 김태희, 송혜교도 그건 불가능하다.
숙제 (宿題)
[숙쩨] 발음 듣기
1 복습이나 예습 따위를 위하여 방과 후에 학생들에게 내주는 과제.
2 두고 생각해 보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
3 모이기 며칠 전에 미리 내어서 돌리는 시나 글의 제목.
그래도 나와 연이 닿는 순간까지는 내가 나쁜 인연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시간이 허락지 않아 서로에게 마음이 닿지 않더라도, 언젠가 돌고 돌아 다시 마주 했을 때...
숙제 같은 지인 두 명을 속으론 뾰족한 마음을 품고 겉으로 웃으며 대하고 싶지 않다. 은은한 미소로 대할 수 있는 깊이있고 성숙한 인격체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했다.
숙제같은 그 두명이 오늘 기분좋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