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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탄이씨 May 16. 2024

입장료가 무료(無料) 되니
무료(無聊)해진 매표소

시민들의 여가생활이 늘어났다. 문화 욕구도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에 맞춰 나라의 정책도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가 ‘개방’이다. 박물관을 비롯한 많은 여가 및 문화시설이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전환되었다. 문턱 높던 시설이 누구나 가까이서 누릴 수 있도록 친시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료 개방이다. 

  유료에서 무료입장으로 방향을 선회한 거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설악산, 한라산 등을 등산할 때에는 1인당 1,6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했다. 또한 귀중한 예술 작품이나 문화재를 보고자 한다면 어김없이 비싼 관람료를 납부해야만 했다. 당연히 한 푼도 아쉬운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여가와 문화의 향유는 일부 계층만이 누리는 성공한 삶의 전리품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경제성장, 국민 의식 향상으로 대중성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변화를 포착한 국가가 먼저 앞장을 섰다. 나라에서 직접 관리하던 시설을 무료로 개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부를 축적하기 위해 국가가 입장권을 팔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무료입장은 국민의 마음을 사기에 좋은 선심 카드이기도 했다.      


  첫 번째 선심은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였다. 

  환경부가 국민의 문화 휴식 공간 제공 등을 위해 2007년 1월부터 전국 19개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했다. 환경부의 입장료 폐지는 입장료 징수를 둘러싼 해묵은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성격도 있었다. 하지만 자연 자원의 체험 기회 확대 등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이어 국립박물관 관람료가 폐지되었다.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2008년부터 무료로 전환했다. 당시 적용되던 관람료가 일반(19∼64세)은 2천 원, 청소년(7세∼18세)은 1천 원이었는데 이를 무료화한 것이다. 무료화 시행 이후 관람객은 계속 증가했다. 2023년에 국립중앙박물관 및 소속 13개 국립박물관의 관람객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아직 고궁, 능 등 일부 유적시설은 설 연휴,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수요일), 한복 착용자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입장료를 징수한다.     


  2023년 5월부터는 사찰 입장료도 무료가 되었다. 

  사찰에서 관람료를 감면하면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무려 61년 만에 이루어진 제도 개선이다. 이전에만 하더라도 2천 원에서 5천 원 정도의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했지만, 현재 해인사와 불국사 등 전국 65개 사찰의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사찰 또한 무료가 된 후 관람객이 꽤 늘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사찰 입장료가 무료로 전환되면서 전국적으로 관람객 수가 33.6%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렇게 공원과 박물관, 사찰 등이 무료가 되다 보니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던 직원은 사라지거나 안내 역할만 담당하게 되었다. 입장하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일일이 표를 검수하던 검수원도 마찬가지다. 입장료가 무료로 전환되면서 매표원도, 검수원도 모두 할 일이 줄어들어 무료해진 것이다. 

  이제 ‘안내소’로 기능이 전환된 예전 매표소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망설인다. 무료해 보이는 이분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입장료가 무료예요? ″라고 물어봐야 하나, 아니면 ″입장권을 팔지 않아 무료하세요? ″라고 해야 하나.     



  물론 무료화로 인한 논란도 존재한다. 

  진입 장벽이 낮아져 박물관은 대중 놀이터가 되어 버렸고, 자연은 훼손되며,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같은 분들이 그러한 점을 비판해 왔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료화로 인해 얻는 사회적 이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녀노소, 경제력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고 공평하게 즐길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문화나 여가는 경쟁으로 선택받은 사람만이 누리는 성질이 아니다. 

  공짜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짜라는 이유로 국립공원을 찾아가고, 공짜라는 이유로 박물관을 제집처럼 마음대로 드나들 사람 또한 없다. 설사 있으면 또 어떠하랴. 그 장소가 그분에게 필요하다면 그대로 소중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국민의 의식을 믿고 문턱을 낮추는 공공시설의 무료화는 계속 확장되어야 한다. 무료화로 할 일이 줄어 무료해지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무료화가 포퓰리즘이라고? 진짜 포퓰리즘은 인기 영합을 위해 마구 돈을 뿌리고 정당하지 않게 세금을 깎아 주는, 그런 행위다. 그건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개구쟁이도, 삶에 지친 실업자도, 쇠약해진 은퇴자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무료화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선물이다. 사랑이다.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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