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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탄이씨 Jun 06. 2024

잦은 회의(會議)에 대한 회의(懷疑)

- 생선회의 종류보다 더 많은 회의

  어느 영화에서 본 장면이다. 

  영업팀장이 팀 회의를 주관한다. 팀장은 팀원들에게 실적을 공개하며 “너네는 이러고도 밥 먹고 똥 싸냐?”라며 질책한다. 회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일방적인 지시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회의는 진행된다. 팀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듣고만 있다.   

  

  ‘회의(會議)’하면 흔히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상사가 중심에 앉는다. 안건을 제시하고, 참석자의 의견을 묻고, 결론을 내린다. 결론이라기보다는 보통 지시로 마무리된다. 상사에 의한 상사를 위한 회의다.      

  이러한 상사 중심의 회의 문화는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예전 아시아 최대 저비용 항공사인 에어아시아의 최고경영자(CEO)가 한 장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셔츠도 입지 않은 채 마사지를 받으며 회의 중인 모습이었다. 그는 “마사지를 받으면서 회의할 수 있는 문화를 사랑해야 한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비난 여론이 거세자 게시물을 삭제했다. 

    

  회의가 회의(懷疑)를 들게 하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회의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업무가 회의로 시작해서 회의로 끝나는 곳도 적지 않다. 

  회의 종류도 다양하다. 주간회의, 월간회의, 대책회의, 직원회의, 간부회의, 사례회의, 화상회의, 전략회의, 긴급회의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활어회, 숙성회, 광어회 같은 생선회의 종류보다 더 많을 것이다. 어느 회의 종류가 더 많은지 한 번 헤아려 보시라.      

  회의가 이렇게 많다 보니 미안한지 명칭을 슬쩍 바꾼다. 미팅(meeting)으로. 오죽하면 회의를 미팅(meeting)으로 바꿔 부를까. 회의를 미팅으로 바꿔 부른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만 그래도 ‘회의를 자주 한다.’라는 시선만큼은 피하고 싶은 심리일지 모르겠다.     


잦은 회의에 대한 회의가 든다.

  

  2024년 조선경제 WEEKLY BIZ가 직장인 대표 플랫폼 리멤버와 함께 직장인 총 614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회의 문화’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69%가 불만족스러운 회의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회의가 불만족스러운 이유는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나서’라는 답변(27%)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기껏 참석자를 모아 회의를 해놓고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는 회의에 회의감이 든다는 뜻이다. 

  회의 시간에 대한 시각차도 컸다. 응답자의 61%가 이상적인 회의 시간으로 ‘30분 이내’를 꼽았지만, 실제 30분 이내 회의를 마친 경우는 28%에 불과했다. “쓸데없는 사담 때문에 회의가 산으로 가거나, 다들 책임지기 싫어 말을 돌리면서 한없이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설문조사도 있다. 그 조사에 따르면 업무 시간 중 회의 시간이 가장 쓸데없는 시간이라고 답한 직장인이 전체의 47%에 달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회의로 인해 “업무에 방해받는다.”라고 답변한 사람도 67%나 된다고 했다.      

  결과가 이렇다면 회의에 관한 생각을 바꾸는 게 답이다. 물론 목표 달성을 위해 회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한다. 다만 회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헌법 같은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마침 근래 들어 많은 기업에서 회의 문화를 개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회의 시간 25% 줄이기를 목표로 내건 기업도 있고, 회의 시간 체크를 위해 모래시계를 배치한 직장도 있다고 한다. 또 일부 기업은 정례 조회를 대신하여 자료를 이메일 발송으로 바꾸는 등 대면 회의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회의 장소 또한 사무실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이색적인 장소를 선택, 창의성을 유발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회사도 있다.    

  

  회의를 해봐야 회의감만 드는 회의는 나쁜 회의다. 

  혹시 오늘도 어디선가 “회의 문화를 개선하는 회의를 하자.”며 또 직원들의 머리를 쥐어짜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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