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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공돌이 Jan 19. 2023

학교에서 ChatGPT를 써도 될까?

AI 시대의 교육

학부시절 실험수업을 들었는데 저녁 여섯 시에 시작해서 자정이 넘어서도 집에 못 가는 날들이 있었다. 간단한 실험인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기본기에 대한 교수님의 철학 때문이었다. 유효숫자 하나 틀리거나 도선을 mm단위로 정확히 잘라 꽂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실험보고서를 반려하셨다. 교수님 본인께서도 자정까지 함께 남으셨으니 직장인이 된 지금 돌아보면 아주 큰 열의라 평가한다. 물론 그 수업 이후로 유효숫자를 정확히 맞추거나 도선을 mm 단위로 정교하게 자르는 일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기본기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대학의 학풍이었다. 이 학풍 하에서 학생들은 나중에 써먹지 않더라도 기본이 되는 지식과 스킬을 제대로 배워야 했다. 수학을 배우더라도 상대적으로 많은 배경, 원리, 증명까지 이해하기를 원했다. 교수님들은 기본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학부의 역할이고, 나머지는 대학원이나 사회 나가서 배워도 학부를 충실히 했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셨다.


물론 여기에 반기를 드는 교수님들도 있었다. 이 분들은 쓰지 않을 지식과 스킬을 배우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낭비고 꼰대짓이라며 수학도 이론적 배경보다 실용적 계산 능력이 중요하다 주장한다. 인생은 짧으니 빠르게 실용적인 것들 위주로 배워서 실전에 투입되는 것이 맞다 생각한다.


학부생은 성인이고 대학과 교육과정을 선택하기 때문에 이 논쟁이 그나마 쉬운 편이다. 초중고생으로 내려가면 논쟁은 더욱 어려워진다. 계산기는 언제부터 쓰는 것이 좋을까? 복잡한 연산을 머리와 손으로 하는 기본기가 중요할까 아니면 계산기로 원하는 답을 빨리 내는 것이 좋을까. 외우는 것이 좋을까 검색을 허용하는 것이 좋을까. 동양은 주로 전자를 서양은 주로 후자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계산기의 백만 배 이상 숙제를 쉽게 해주는 ChatGPT라는 도구가 나오면서 동서양을 불문하고 처음부터 다시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앞서 학풍을 언급했듯이 명확한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교육자마다 학교마다 철학이 다를 것이다. 또 양 극단을 선택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적절한 균형을 잡아나가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학생들이 AI에 의존하지 않고 기본기를 쌓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정답을 빨리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역량들이 있다. 이 역량들은 답을 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스키나 외국어처럼, 혹은 앞서 도선을 자르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역량들이다. ChatGPT도 계산기도 의존하면 할수록 이 훈련하고 체득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직업윤리를 보자. 직업윤리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직업윤리는 본질적으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보상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유예된 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각적 답변으로 쉬운 길을 가게 해주는 계산기와 ChatGPT 혹은 AI들에 의존하게 된다면 직업윤리에 대해 체득하게 될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비판적 사고도 마찬가지다. 비판적 사고는 정답을 빨리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반문하는 태도에 가깝다. 오라클처럼 정답과 컨센서스를 가져다주는 ChatGPT에 너무 일찍 의존하게 되면 독립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하는 역량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감도 영향을 받는다. 지게차는 사람보다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지게차 운전면허가 있는 것보다 내가 맨손으로 들 수 있는 무게가 더 큰 자신감을 준다. 화려한 도구에 의존하는 스킬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도구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일상의 자신감을 구성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산기의 시대가 오면서 계산기가 할 수 없는 일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AI시대가 열리면 오히려 AI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AI가 가지지 않은 역량을 AI에 의존한 방법으로 계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예들에 더해 통찰, 사회성, 인내, 사랑, 헌신 같은 것들도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고 AI시대가 다가올수록 우리의 교육은 오히려 이런 곳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따라서 교육 현장에서는 각 개인마다 사회적 역할을 제 때 찾아주는 범위 내라면 ChatGPT 사용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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