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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Jul 27. 2023

고비사막투어 22-숫자로 불리던 사람들

가이드는 한국에서 3년 정도 살았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이 글에 쓰고 싶지만,

그녀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없어야겠기에 이름 대신 가이드라고 쓰는 중이다.      

한때 그녀는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외국인노동자였다.


그녀는 인천 공항에 내린 후 곧장 여주로 이동해 가죽지갑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곳의 한국인 작업반장은 몽골인들을 이름 대신 숫자(번호)로 불렀다.

부르는 번호대로 사람들은 뿔뿔이 나뉘어 작업실로 배치되었다.

 사람을 숫자로 부르는데 대해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으나 차츰 익숙해졌다고 한다.


 이 얘길 듣고 있던 나는 미안하고 속상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당시의 상처가 얼핏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보았다.

 ‘그건 좀 잘못된 일이라 생각되네요’라며 나는 말했다.     


그래도 그녀는 한국에 있었던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듯 말했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고,

또 정 많은 한국 언니들을 따라 

서울과 안면도 바다까지 틈틈이 둘러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도 다시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녀의 얘기를 듣다가 문득 내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예전에 내가 다른 의료인들 열여명과 외국인노동자 진료를 하던 시절에

무엇이 제일 어려웠냐면

바로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이었다!


무려 16개국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을 상대로 진료를 하다 보니

우선 그들끼리도 말이 잘 안 통했고, 

영어가 그나마 통용되는 범위가 넓었으나 이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차라리 손짓과 표정을 섞어 한국말을 간단히 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예진 파트에서는 대기번호와 이름, 혈압과 심박수를 체크한다. 

이때 외국생활 경험이 많은 일반인을 동석시켜 환자의 이름을 듣고 한글로 써놓도록 한다.

그런데 막상 진료순서가 되어 한글로 써진 이름을 부르면 

사람들이 종종 '내 이름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짓곤 했다.


한글로 표기가 안 되는 어려운 이름들이 분명 있다.

진료시간은 제한적이고, 환자는 많은데 

이름 부르며 사람 찾다가 목쉬기 일쑤다 보니

결국엔 간호사가 대기표의 번호로 외국인노동자를 찾아 각 과 대기실을 한 바퀴 돌게 된다.   

 

그 일들이 떠올라서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혹시나 그 작업반장이 몽골 발음이 어려워서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고 번호로 불렀을지도 몰라요. “라고.

몽골발음과 그들의 러시아식 알파벳이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짐을 말했다. 


가이드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러시아 알파벳과 영어 알파벳이 주는 혼란을 충분히 이해하였고,

(일본어도 좀 하는데 영어만은 엄청 어려워함)

발음이 어려운 점도 공감했다. 


      

모 회사에선 지금도 외국인노동자들을 숫자로 부르고 있을까? 

 부디 개선되었길 바란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들을 존중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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