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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갈빵 Aug 31. 2022

[맛동산 시리즈 06] 신당동에서-

금산제면소(압구정), 우정, 옥경이네 건생선, 올리브 호텔

2020년 1월 19일, 2년 전의 일이다. 회장님이 유럽여행에서 돌아왔고 우린 왜 때문인지 축구 유니폼을 입고 압구정에서 만났다. 드레스코드명 레플리카. 금산제면소는 맛동산의 첫 활동장소였다. 명동 본점에서의 후루룩을 잊지 못해 경험 없던 준회원을 데리고 압구정 2호점으로. 주인장의 극악무도함이 까발려진 덕분에 이제 다시는 갈 일이 없겠지만서도 어쩐지 후루룩 후루룩 그릇을 빠르게 비우던 추억은 선명하다. 다섯 장의 사진과 함께 말을 줄이고 신당동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0. 신당동

신당동 떡볶이,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신당동이 어디에 놓여진 동네인지도 모르는 나였다. 이날 또한 예정에 있던 곳이 아니었다. 총무님 합류  회장님 PICK 식당에 갔지만 문은 닫혀 있었고 근방을 탐색하다 '신당동 어때?' 나왔으며 어차피  번은 가볼 곳이 아니겠냐며 '신당동 떡볶이!'를 외치며 택시에 올라탔다. 춘천 닭갈비나 의정부 부대찌개처럼 '거기 하면 그거' 공식은 초심자에게 있어 안전빵인 선택지인 것이었다. 이왕 왔으니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길거리에 나와있는 뭇 사장님들을 보았다. 그 풍경이 신당동 떡볶이 타운의 첫인상이자 큰 문제였다. 어디로 가야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1. 우정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참으로도 다양한 상호명 속에서 우린 '우정'이라는 단어에 이끌렸다. 거리의  옆으로 주욱 펼쳐진 가게들  맛은 여기나 저기나 별반 다르지 을 거라 생각했다. 즉석 떡볶이와 닭발. 군침이  도는 음식을 시켰다. 닭발 사진은 찾지 못했다.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떡볶이의 맛도 특별하진 않았던 기억이다. 맛만으로는 이수역으로 이전한 애플하우스, 봉천동의 모모즉석떡볶이 같은 동네 즉떡집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다만 이곳 떡볶이 타운의 정취와 가게  복작대는 소란에서 묘한 향수를 느꼈는데, 80년대를 구경조차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젊음이 다녀갔던  시절 신당동 전성기의 공기가 아직 남아있는  아닐까 싶었다. 멋쟁이 DJ오빠가 사연을 읽고 음악을 틀어주던 그때가 궁금했다. 주구장창 골목을 거닐며  여고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쪽지깨나 날렸을 필자의 전성시대를 잠시나마 상상했다.



2. 옥경이네

낯선 동네로 멀리도 올라왔다. 온김에 뽕을 뽑아야지. 회장님과 내 지도에 '놀러와포차'가 있었다. 걸어서 도착한 가게 앞은 어두컴컴. 닫혀있었다. 다시금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좀만 더 걷자, 신당 중앙시장에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옥경이네 건생선.

시장 안에는 세월이 잔뜩 묻은 술집들이 많았다. 사실 걷다가 들어간 어느 곳이라도 소주맛이 제대로 날 그런 곳들로 보였다. 들어가고 싶은 여러 가게들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게는 밝았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회장님의 유럽 선물이  회원들에게 전달되었다.  마음에 들었다. 역시 센스가 있는 회장님. 인증샷을 야무지게 찍어놓고 소주를 마셨다. 통통한 반건조 오징어는 이따금씩 턱에 무리를 주곤 했지만 (필자는 당시 턱디스크가 빠져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고소하여 계속 손이 가는 요물이었고  반건조 뭐시기는...사실 살아생전 어떠한 어류셨는지  모르겠지만 몰라 무조건 맛있었다.  얘기하고 싶은 그날의 분위기였다. 출근을 위해 집에 가려고 했으나 회원들은 나를 꼬셨고, 이런 류의 유혹에는 어쩐지 강단은 찾아볼  없는 나였기에 큰 결심이라도 한 사내마냥 소주  잔을 털어놓고 말했다. '얼른  잡아'




3. 올리브 호텔

보통 숙박업소의 이름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어디  수영장 딸린 유명한 호텔이 아니라면 거진 그렇지 않던가. 우리가 올리브를 기억하는 이유는 글쎄, 기대없이 갔었지만 번듯한 시설에 놀랐기 때문이고 안에서 다시금 한잔을 나누며 하루를  짙게 색칠했기 때문이려나. 물감은 노오란 맥주였고 도화지는 우리의 간이었겠다. 하얗지만은 않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나아보겠다고 파워에이드 큰 거 하나를 챙겼던 양심없는 놈들. 먹을 건 다 먹고 무탈하길 바라는 심보는...꼭 필요하다. 뭐라도 숙취에 도움이 된다면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오랜만에 사진을 보아하니 콧방귀가 나온다. 감자칩은 어디에나 꼭 있는 물과 같은 안주이니 그렇다 치겠다. 컵라면 하나씩 호로록한 모냥새에다 소시지와 귤까지. 그리고  고급 안주는  무엇인가. 구구 크러스트? 이러니  마셨겠지. 지끈거린다. 침대로 직행하는 법을 모르는 이들의 밤은 즐겁지만  괴로움일 뿐이다.



0. 신당동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다시 보니 좋았다. 조만간 신당동으로의 활동을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세련된 맛은 없지만 우리가 언제 세련된 것을 좋아했던가. 이제 나도 어른이지만 그보다 앞선 어른들의 술자리를 빌리던 느낌이었다. 이때의 활동을 안주삼아 조금이나마  익숙하게 소주잔을 부딪히며 이야기할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신당신당 뛴다. ' 그때 여자친구 누구였지?'에서 시작하면 아마  귀가는  건너갈테고 올리브 호텔의 지하방에서 도란도란 맥주를  마시지 않을까 싶다. 아, 맥주 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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