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여름의 추억
해마다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늘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바로, 경기도 청평에 있던 시골집이다.
시골집에서 몇 분만 걸어가면 시원한 계곡이 있었는데, 장마가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가 물놀이하곤 했다.
튜브를 타고 놀기도 하고, 어른들이 만들어 주신 찌개를 계곡 옆에서 먹기도 하면서 틈만 나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다슬기 잡기.
이끼가 많은 돌 틈에는 다슬기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끼를 먹기 위해 붙어있는 다슬기를 잡는 것이 그땐 그렇게 이유 없이 재밌었다. 가끔 다슬기로 착각한 작은 돌을 주울 때면 괜히 민망해 더 짜증을 내기도 했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다슬기를 잡다 보면 꽤 많은 양이 모인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잡은 양이 세숫대야에 꽤 많이 찼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때면 항상 아빠는 다슬기를 집에 가져와 된장에 삶아 주시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골집을 정리하면서 더 이상 계곡에 가지도 않고, 물놀이도 하지 않으면서 다슬기는 내 머릿속 작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강원도 정선 아리랑시장에서 이 추억의 다슬기를 마주쳤다. 골뱅이라고도 부르고 올갱이라고도 불리는 이 자그마한 것이 어찌나 반갑던지. 1kg 2만 원의 가격을 주고 냉큼 사 왔다.
일단 사 오긴 했으나 조리법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다. 항상 된장에 삶아주던 아빠께 부탁하자니, 뭔가 민망하다. 일단 스마트폰을 열어 열심히 검색을 해본다.
다슬기 해감, 다슬기 끓이는 법. 다슬기 맛있게 삶는 법. 온갖 게시글을 읽고, 동영상을 보고 30개쯤 읽었을 때 결심했다.
일단 해감을 하자.
다슬기 해감은 딱히 어려운 것이 없다. 다슬기를 물에 넣어 검은 비닐을 위에 덮어준다. 수시로 물을 갈아주면 이들이 먹었던 이끼나 불순물을 뱉어낸다. 한나절 정도 해감을 시킨 뒤 물에 바락바락 씻어주면 된다.
해감이 된 다슬기를 엄마가 출근길에, 소쿠리에 담아놓고 나갔다. 삶기 전 한 번 헹궈줄 요량으로 물에 잠깐 담가놓고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오니 세상에나. 이 더위에 아직도 죽지 않았다. 무서운 생명력이다.
이렇게 끈질긴 녀석들을 먹자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2만 원이나 주고 사 왔으니 먹어야 한다.
다슬기를 물에서 건져 소쿠리에 놓으면 머리를 쭉 뺀다. 그때 끓인 물을 다슬기에 부어주면 얘들이 놀라 숨을 사이도 없이 익는다. 이 상태에서 물을 끓여 된장을 풀고 7분 정도 삶으면 통통한 살을 쉽게 분리할 수 있다.
다 삶았다면 이제 껍질을 까야지. 준비물은 이쑤시개와 담을 그릇, 그리고 은근히 많이 요구되는 체력이다. 1kg의 다슬기 껍데기를 분리하는 시간은 정확히 한 시간 반. 혼자 그 작은 다슬기를 이쑤시개에 꽂아 돌리는 일을 한 시간 반 동안 반복하다 보면 팔이며 어깨, 목이 욱신거린다. 그렇게 분리한 결과물을 보면 국그릇으로 한 그릇 정도. 은근히 많아 뿌듯하다. 이 많은 다슬기를 그냥 먹자니 아까워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겠다.
올갱이해장국 레시피
남은 껍질은 버리지 않고 다슬기를 삶은 물에 넣고 10분 정도 더 국물을 우려 준다. 그러면 더 깊은 맛의 국물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올갱이 해장국을 끓일 차례다. 해본 적이 없으니 가장 맛있어 보이는 레시피를 두세 개 정도 참고해 끓인다. 이렇게 레시피를 찾아 나만의 입맛으로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1. 우선 얼갈이배추를 후들거릴 정도로 데쳐준다. 된장 양념에 무쳐놓아야 하므로 너무 뻣뻣하지 않을 정도로 데쳐주면 된다.
2. 이 데친 얼갈이에 된장 적당량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준다.
(보통 이걸 바로 국물에 넣어 끓이는 것 같지만 나는 30분 정도 기다렸다)
3. 다슬기를 삶은 물에 추가로 물 500 ML을 부어 끓인 후 2번의 얼갈이를 넣어 20분간 끓인다.
4. 준비해 둔 다슬기를 넣고 조선간장, 액젓으로 간을 하고 대파를 썰어 넣어 몇 분간 다시 끓여준다.
(참고한 레시피들은 경상도식으로 밀가루를 푼 물을 넣어 국물을 걸쭉하게 만드는 것 같았는데, 깔끔한 국물이 좋아 이 과정은 생략했다.)
완성된 해장국을 한 입 먹어보니 정말 감동적인 맛이다. 그래. 다슬기가 이런 맛이었지. 내가 직접 잡은 것도 아닌데 차가운 물과 돌에서 쩍 떨어지는 손맛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아마 앞으로 여름이 올 때마다 이 올갱이 해장국 레시피로 나의 어린 여름을 추억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