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 애가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아이가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날 향해 묻는다.
"유치원에서 친구가 '끔찍' 하다고 했어."
"응? 뭐라고? 너한테? .. 깜찍하다고 한게 아니고?”
“응. 끔찍하다고 했어. 나한테 왜 그런거지?“
유치원에서 한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끔찍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아이는 저 단어를 모른다. 하지만 상황상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았으리라.
그러니까 저 똘망한 눈으로 나에게 물어보고 있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차갑게 식어갔다. 어쩌지? 잠시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가 눈앞에 아이가 보였다.
"누가 그렇게 나쁜 말을 했어~ 속상했겠다. 울진 않았어?”
무심히 장난감을 만지작 대는 아이가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리 와봐."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토닥여 주었다. 품 안에 아이가 쏙 들어왔다. 이렇게나 작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이는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선생님한테 얘기했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엄마 품에서 아이는 조리 있게 얘기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자꾸 와서 뺏어가고 구겨놓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고 한다. 그 친구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내 아이는 그 행동이 싫었고, 하지 말라고 거부의사를 표시했는데, 그랬더니 그 친구에게서 돌아온 말이 저 단어였다.
단어의 의미를 몰랐던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 아이를 품 안에 꼭 안고 애써 눈물을 삼키며 생각했다.
물론 ‘끔찍’이라는 말도 쓸 수는 있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말은 쓸 수 있는 상황과 대상이 있다.
이제 만 네 살, 한국나이로 여섯 살 아이들이 지내는 반이었다. 그곳에 '끔찍'이라는 단어는 아직 어울이지 않았다. 그것도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했다는 건 말 그대로 끔찍한 일이었다.
아이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 간의 다툼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우리 아이의 행동이 그 아이를 속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이가 단어의 의미를 알고 썼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매체에서 들었거나 저보다 큰 형이나 누나가 하는 소리를 들었겠지. 그리고 뭔지도 모르고 따라 하면서 단어가 입에 붙어버렸으리라. 그것도 물론 문제 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까?
어떻게 된 건지 지금 원에 전화해 물어봐야 하나?
상처받진 않았을까?
내가 뭘 해야 하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는 들들 볶아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객관성을 잃어버리기 쉽다더니 지금의 내가 그랬다.
그런데 그때, 마치 어디선가 보고 있던 것처럼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원에 물통을 두고 갔단다. 그러고 보니 가방을 열어 물건을 꺼내볼 정신도 없었다.
원에서 소독해 주신다는 말에 감사함을 표시하고 슬쩍 아이가 속상해했다는 말을 꺼내보았다.
사실이었다. 선생님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주의를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이 안 좋은 말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고 했다. 세상에.. 사실이라니.
알겠다고, 잘 도닥이겠다고, 그리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고 끊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차라리 내 문제였다면 그냥 잊고 지나갈 터인데, 아이 문제가 되다 보니 참 어렵다. 내 인간관계보다 아이의 인간관계가 더 어렵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남편은 그 복잡했던 마음을 하나로 정리해 주었다.
"괜찮을 거야. 우리 아이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걸 훌륭하게 다 했잖아.
잘못된 행동에 하지 마! 하고 거부 의사도 밝혔고, 안 되니까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집에 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한테도 얘기했잖아. 그래서 선생님하고 면담도 했고.
얼마나 훌륭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게 나는 대견한걸? 그게 감사한 거지.
걱정하지 말고 믿어봐. 스스로 헤쳐나가면서 단단해질 거야."
MBTI 대문자 T(극사고형)인 남편은 가끔씩 MBTI 대문자 F(극 감정형)인 나를 진정시키는 재주가 있다.
남편의 한 발짝 물러선 객관적 판단에 갑자기 시야가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나의 F는 가끔 T가 필요해.
그러고 보니 유치원에서의 경험이 아이를 그렇게나 힘들게 했다면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할 법도 한데, 다음날 아침 아이는 순순히 따라 나온다. 오히려 내가 보내기 싫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 믿어보자. 잘할 거야. 친구관계도 헤쳐나가 봐야지.
그리고 등원길에 아이에게 슬며시 주지시켰다. 아니, 주지시키려고 했다.
"우리 ㅇㅇ, 재미있게 놀고 와. 그리고 혹시 그 친구가 또 나쁜 말을 하면.."
아이) "하지 마! 그건 나쁜 말이야. 하면 되지~."
"다른 친구가 괴롭히거나 귀찮게 하면.."
아이) "나랑 놀고 싶으면 놀고 싶다고 하면 되지. 왜 그렇게 해. 그럼 안 되지~"
"....."
옴맘마.. 이 녀석 보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 그러면 되지. 혹시 그래도 자꾸 속상하게 하면 그땐 선생님하고 엄마한테 얘기하면 돼. 알았지?"
"응. 나 다 알아~."
태연하게 대답하는 만 네 살에게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하원한 아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재잘대기 시작한다.
"엄마, 나 오늘도 속상한 일 있었어. 어제 그 친구는 안 그랬는데 다른 친구가 내 그림을 막 구기고 갔어."
"아이고. 속상했겠네. 반에 장난꾸러기 친구들이 많나 보다. 많이 속상했어?"
"아니, 괜찮았어."
"어제 그 친구는 오늘도 나쁜 말 했어?"
"아니, 오늘은 안 그랬어. 그리고 오늘은 같이 놀았어."
"어?... 같이 놀았어?"
"응. 이제 친해졌어."
"어. 그래. 잘됐네~"
내 아이는 엄마의 생각보다 강했다.
엄마는 괜한 걱정, 사서 하는 걱정을 하며 유치원을 계속 보내야 하나까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답은 내 아이를 믿는 거였다.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자랐고, 엄마 생각만큼 약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 거였다.
엄마는 그럴 줄도 알아야 하는 거구나. 아이를 통해 나는 오늘도 엄마가 되어가는 법을 하나 더 배워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아이 앞에서는 말조심을 해야 한다.
아이들은 본 대로 따라 행동하고 들은 대로 따라 말한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모두가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오늘도 44살 엄마는 네 살 아이에게 한 수 배우고 간다.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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