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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Aug 05. 2022

결국 싸웠다

레이크 루이스 여행기

이뽈)

 친구끼리 여행 가면 싸운다더니, 우린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를 바가 없었다. 호주에서 1년을 넘게 같이 살아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있을 거라는 오만에 넘어가 화를 내고 말았다. 비극적이게 서로 헤어져 각자 여행을 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루 반나절을 넘도록 대화하지 않았다. 감정이 정리되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이번만큼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서운한 마음이 쌓여 옹졸했고 삐뚤어졌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Columbia Icefield’ 구경을 마치고 서둘러 캠핑장으로 향해야 했다. 예약이 불가능한 곳으로 주변 캠핑장에 비해 캠핑 시설이 가장 잘 갖춰진 곳이었다. 특히 샤워가 가능한 캠핑장으로 1일 1 샤워가 필수인 언니에게 최적인 곳이었다. 문제는 이 사실을 나만 알고 있었으며 나만 급했다는 것. 재스퍼 국립공원에서 샤워 시설이 없는 캠핑장에서 고생을 해봤고 일정에 대해서는 삐래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언니와 삐래가 화장실에 갔다가 느긋하게 걸어오는 모습에 순간 화가 났다. 둘은 어리둥절. 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화가 났는지 전혀 몰랐으니 당황스러울만했다.  


 원하던 캠핑장에 다행히 자리가 있어 한시름 놓았으나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 친구와 호주에서 살면서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건만 아침 일찍 시작된 일정과 해냈다는 안도감에 피로감이 급격히 몰려와 잠이 들어버렸다.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의도했을 수도 있다. 그때 난 감정이 여전히 날 서 있었기에 이대로 섣불리 대화를 시도했다가 되려 감정만 상할까 봐 대화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두 친구 사이에 아무런 대화가 없는 밤이었지만 우린 곧 화해할 것이고 다시 즐겁게 여행할 거란 믿음이 있었는데 우리 언니는 아니었나 보다. 그 밤에 혼자 침낭 속에서 울었다고 한다. 이대로 삐래가 떠날 것 같아서.


 다음날 ‘페이토 호수 전망대 Peyto Lake Viewpoint’에 들렸다. 역시나 대화는 없었고 짧은 트레킹 후에 펼쳐진 밀키스 색의 호수는 아름다웠지만 마음이 구겨져있어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온전히 감상하지 못했다. 내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를 품지 못했다. 주차장에서 삐래를 한참을 기다렸다. 오늘 레이크 루이스에 가서 장도 보고 여행자 센터에 들려서 하이킹 코스도 알아보고 캠핑장도 선착순이어서 여유를 부릴 수가 없는데 그녀가 오질 않는다. 15분 직선 트레킹 코스에서 길을 잃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가 이 정도로 지독한 길치일 줄도 모르고 볼멘소리를 했다.


 알아본 캠핑장의 예약이 모두 찼다. 비상사태 발생. 여행자 센터에 들려 다른 캠핑장을 문의하고 인터넷을 사용해 플랜 B를 알아보았다. 삐래가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을 했지만 우린 캠핑장을 찾는 게 우선이라는 합의하에 일단 당장 오늘 잘 곳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셋이 열심히 알아본 결과 더 좋은 캠핑장에 입성하게 되었고 우린 그곳에서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네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에서 시작된 서운함이 친구 간의 다툼으로 번졌다. ‘너도 모를 수도 있지’라는 너그러움이 부족했다. 서로의 오해가 이해로 바뀌었고 신경 써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나도 울긴 했는데 폭풍눈물을 흘리는 언니. 왜 언니가 더 울었던 것입니까? 싸움의 당사자들은 어리둥절. 언니의 쏟아지는 눈물에 다시 싸우지 않겠다고 두 친구는 다짐했습니다.  




삐래) 

 애써베스카 빙하로 가는 길이 꽤 멀었기에 아침부터 서두르기 시작한 날이었다. 새벽 공기가 추웠는지 목이 칼칼해 이뽈의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빙하 투어 하는 곳으로 갔다. 웬열.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매표소 앞에 줄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게다가 설상차와 스카이워크를 콤보만으로 구매 가능했는데 가격이 1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 입장 시간도 애매했다. 이뽈의 망설이는 표정. 이 표정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나랑 언니는 안 할게, 너 하고 싶으면 해’ 나의 예상이 맞았다. 사실 나는 뉴질랜드에서 기상 악화로 빙하 투어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해보고 싶었다. 단체(물론 3명이지만) 여행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나. 이대로 감행하자니 이뽈과 루나 언니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심지어 뒤에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없었다. ‘그래, 언젠간 다른 곳에서 해보겠지’하고 포기!  


 마음 편히 루나 언니랑 희희낙락하며 여유롭게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뽈은 이미 차에 도착해있었고 그녀 손에 내 목에 있어야 할 손수건이 있었다. 저 손수건은 이뽈이 17살 때부터 좋아한 아이돌이 새겨있는, 무려 8년 동안 애지중지했던 손수건이었다. 누구에게도 잘 빌려주지 않는 그녀의 몇 안 되는 애장품. 목감기 기운이 살짝 있어서 나도 처음으로 만져본 손수건이었다. ‘삐래 너니깐 빌려준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손수건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랐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바로 사과부터 했다. 대답 없는 이뽈. 어디서 주웠는지 물었더니 돌아오는 퉁명스러운 대답, ‘뭘 물어, 그게 중요해? 아, 그냥 내가 주웠어!’ 누가 봐도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순간 나도, 분위기도 모두 얼어붙었다. 차 안 공기는 우리의 침묵으로 더욱더 차가워졌다.


 아무리 아끼고 아끼는 손수건이라고 해도 물건에 크게 애착하지 않는 이뽈이었기에 이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고 한편으로는 저렇게까지 날 선 목소리를 내야 하나라는 생각과 이뽈의 귀중품을 잃어버릴 뻔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뒤섞였다. 캠핑장 도착해서 화를 풀어 줄 요량으로 가는 길 내내 감정 정리를 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런데 내 노력이 무색하게 이뽈이는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감았고 이 행동에 빈정이 상했다. ‘불편한 건 나뿐인 건가,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당장의 피곤함보다 우리의 관계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나름대로 두 사람을 배려해왔던 모든 것들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껴지니 화가 났다. 그녀의 손수건을 분실할 뻔한 나의 부주의함이 이 정도로 분노할만한 일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도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다음 날, 가시 돋친 분위기 속에서 일정은 계속되었다. 직선 트레킹 코스라고 했는데 나한테는 굽이굽이 오솔길이었고 그 끝에는 호수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실컷 호수 구경을 하고 차로 돌아오는 길. 화가 안 풀린 이뽈은 빠른 걸음으로 먼저 가버렸고 나의 길치 센서는 스위치 ON. 앞서 걷던 외국인들을 쫓아 걷기 시작했고 그 끝은 주차장이 아닌 풀숲이었다. 한참을 돌고 돌아 힘들게 차에 도착했다. 그런 나를 싸늘한 시선으로 본다. 길 잃고 고생하다 왔는데 위로는커녕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뭘까? 나에게 쏟아내는 감정들을 받아내기 버거웠고 인내심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손수건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닌 거 같은데 좀처럼 말을 안 하니 답답함이 하늘을 찔렀다. 목마른 놈이 우물 찾는다고 용기 내 건넨 한마디 ‘얘기 좀 해’ 돌아온 대답은 ‘나 이거 안내 데스크 가서 해야 하는데, 도와줘’ 청신호였다. 모든 일을 해결하고 캠핑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이뽈이 터트리는 눈물 앞에 나는 심히 당황했다. 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일정 몰랐어? 내가 이렇게 애쓰는데 너는 알고 있을 줄 알았지’ 서운함이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머리를 한 대 얹어 맞은 것 같았다. 얼마나 섭섭했을까. 처음부터 여행 일정은 이뽈을 주축으로 계획되었고 ‘똑 부러진 애니까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생각에 서서히 그녀에게 일정을 일임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정을 이야기해줘도 듣는 둥 마는 둥했고 일정을 되묻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물음과 대답 속에 쌓여 가는 섭섭함을 난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동안 이뽈이 여행을 위해 애써온 모든 시간과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차마 우리에게 속 시원히 말하지 못했던 부담감들이 가슴에 와닿았고 나의 안일하고 무심했던 말과 행동들로 속상했을 이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어떻게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난 ‘정말 너의 마음을 몰랐어. 미안해’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씩 웃으며 이뽈은 ‘알면 됐어’라고 쿨하게 말해준다. 고마웠다.

캐나다 레이크 루이스_두 친구는 화해한 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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