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Grand’란 단어가 쉽게 쓰이다 보니 낮은 희소가치로 인해 감흥이 없었다. 뭐 얼마나 크고 웅장하길래 그랜드까지 붙었나 했는데 이런 곳을 ‘그랜드’라고 안 하면 대체 어느 곳을 가리키겠는가. 신이 오랜 시간 동안 갈고닦아 온 실력을 마음껏 뽐내기 한 듯한 예술 작품이었다.
‘아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하구나. 어마어마하다는 건 ‘자연’을 수식하는 형용사였구나.’
팬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면 ‘(다가가며) 안녕하세요? 저 오빠 팬이에요. (웃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덕후가 되면 먼발치에서 입을 틀어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적당히 예뻤으면 ‘뭐야 뭐야 여기 장난 아니잖아. 미쳤네.’라며 호들갑 떨었겠지만 정도를 넘어버린 아름다움에 언어를 상실한 채, 그랜드 캐니언과 눈 맞춤을 했다. 과거의 나의 모든 행적이 이곳을 오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내가 이걸 보려고 살아왔다고 해도 가치 있다 여겼다. 이런 곳에 오면 생각나는 사람, 부모님. 버킷리스트 추가요. ‘부모님과 함께 그랜드캐니언 여행하기’
콜로라도 강이 지나간 흔적은 밥 아저씨의 붓 터치처럼 아트 한 자락을 뿌리고 가셨다. 강에 의한 침식 작용은 ‘맨스 헬스 Men's Health’의 표지 모델들의 초콜릿 복근만큼이나 선명하게 드러났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의 그림자가 협곡에 드리워졌다. 그렇게 우린 사진작가가 되어 열과 성을 다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드’에 보내면 우리 1등이라고 설레발을 치면서. 찍은 사진이 모두 비슷해도 한 장도 지울 수가 없을 정도로 소중했다. 찍은 지 고작 5분 만에. 그곳에서 차마 나누지 못한 감상평을 캠핑장에 돌아와서 방언 터지듯 쏟아내었다. 최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쏟아내는 찐팬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주접이 폭발하는 별 헤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