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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쁜 토끼 Dec 22. 2022

아바타 2

제임스 카메론(12.17)

 


전작 아바타 1(2008) 이후 14년 만에 돌아온 후속작 아바타 2의 리뷰입니다. 스포일러 아주 조금 있습니다.


우선 아바타 2에 대해 얘기하기에 앞서 1편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시리즈의 이름 '아바타'는 인간이 나비족의 DNA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육체로 외견상 나비족이지만 정신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나비족 사이에 위치한 존재입니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이 둘을 매개하는 바로 그 아바타가 되었기 때문에 관객들도 다채로운 볼거리와 생각거리가 생겼습니다. 영화가 제이크 설리를 기준으로 심리적, 공간적 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이크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객 또한 함께 이동하게 됩니다. 관객은 영화의 주제인 인간과 자연, 원주민과 침략자의 구도에서 한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한쪽 진영에서 반대쪽 진영으로 옮겨가는 제이크 설리를 따라가고 덕분에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자연, 원주민을 선택하게 될 때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같은 진영에 안착하게 됩니다.


덕분에 '아바타'라는 설정은 이 영화의 주제를 담아내는데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다리를 쓸 수 없던 제이크가 나비족의 신체를 얻어 달릴 수 있게 되는 일, 판도라의 경이로운 자연환경에 빠져들게 되는 일, 외부인으로 배척받던 주인공이 결국 나비족으로 인정받게 되는 일 모두 '아바타'라는 설정에서 비롯되죠. 관객들은 인간, 침략자와 자연, 원주민 사이에서 한쪽으로 향하는 강한 선택압을 영화 내내 느끼고 자연스럽게 후자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바타 2에선 '아바타'가 주는 그런 이점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시간상 십수 년이 흐른 뒤이고 이미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화 제목만 아바타 2이지, 따지고 보면 '판도라 연대기'라는 제목이 더 적합해 보입니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쿼리치 대령의 소대조차 인간의 신체로 돌아와야 한다는 '아바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직접 나비족 그 자체가 되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인간의 신체가 존재했을 때 자질구레한 설정이 필요한 것을 피하고자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은데, 이해가 가는 결정이지만 이로 인해 아바타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 느낌입니다.


'아바타'라는 설정이 사라졌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자연과 원주민의 진영으로 고정되어 버립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인간 측은 악, 주인공 나비족은 선이라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도 식상해질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제이크 설리의 가족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이 식상한 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또 다른 주제가 필요했던 거죠. 가족의 등장을 통해 아바타 2는 '인간과 자연의 싸움'에서 '인간과 자연의 싸움에 휘말린 가족의 사투와 사랑'으로 주제를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가족의 사랑'이란 게 빌드업이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는 겁니다. 영화 내내 빌드업을 해도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있죠. 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판도라 세계관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고 이를 보여주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결국 가족의 사랑과 판도라 세계관, 두 개를 모두 보여주려다 보니 3시간 12분이라는 괴랄한 러닝타임이 나와버렸습니다. 이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과연 이 영화가 가족의 사랑에 대한 빌드업을 잘했나?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이 너무 많습니다. 제이크 부부에 더해 네테이얌, 로아크, 키리, 투크에 스파이더 까지. 각각의 존재를 기능적으로 이해한다 쳐도, 투크는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영화 내내 끊이질 않습니다. 스파이더의 서사 역시 곁가지로 끼워진 느낌이고요. 이로 인해 아바타 2는 한 편의 완성된 영화라기보다는, 트릴로지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듭니다. 아바타 1,2가 이어지는 시리즈 영화가 아니고, 아바타 1은 프리퀄, 아바타 2는 트릴로지의 첫 편이며 빌드업을 위한 영화같이 느껴집니다. 키리 또한 영화 내내 '이 친구, 무언가 있다'라는 연출만 잔뜩 하고 결국 속 시원하게 보여주진 않죠. 결국 영화 초반부터 누군가 하나쯤 죽겠군 이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구린 장면은 연출 안 합니다. 뻔한 장면도 꽤 멋지게 그려냅니다. 후반부 전투 시퀀스도 멋지게 그려냈죠. 문제는 판도라 행성만의 다채로운 생명체를 이용한 전투 방식을 연출하기 위해 많은 인원을 카메라 밖으로 보내버렸다는 겁니다. 분명 시작될 때만 해도 전쟁에 가까웠던 규모가, 전투가 시작되자 설리 가족의 사투로 변해버리죠. 물 부족은 관객석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나요? 이로 인해 액션 자체는 멋있지만 보다 보면 '왜 싸우는 애들만 싸우는 것 같지?' 하는 찜찜함이 계속 머리를 맴돕니다. 결국 이 또한 가족이라는 주제를 위해 감독이 관객에게 포기를 강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됐건 영화가 '원주민 대 침략자'라는 식상한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그 사이에 가족이 들어가야 하니까요. 만약 전투 시퀀스가 규모가 커졌다면 주제가 모호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아쉬운 것과는 별개로요.


아쉬운 점을 주구장창 말했지만 저는 이번 영화를 굉장히 재밌게 봤습니다. 마치 실존하는 외계행성에 대한 다큐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창조해낸 이 세계관은 굉장히 경이롭고 매력적이어서 톨킨이나 dnd가 창조해낸 판타지 세계관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2차 창작물이 양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 감독의 세계관에 대한 자부심을 안 좋게 보는 관객들이나 설정이 빈약하다고 하는 관객들도 물론 있지만 저는 그 부분에선 걸리는 것 없이 즐겁게 봤습니다. 아무쪼록 스토리를 떠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관으로 들어가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3시간 12분이 마냥 길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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