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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by 불친절한 은자씨

여름 휴가때마다 남편과 매번 일 순위로 올려놓는 곳은 바로 돌로미티 지역이다. 큰 애를 낳고 친정어마가 몸조리 해주러 오셨을 때 모시고 Carezza 호수를 갔는데 한마디로 그냥 뿅 반해버렸다. 그 때 이후 알프스 산맥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산맥도 굉장히 멋진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알프스나 돌로미티는 모두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이 부딪히면서 만들어진 것이라 같은 산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꼭 와야지 다짐했다. 2,000m 가 넘는 고산을 아이들과 같이 트레킹해야지..두 아이가 5살, 3살이 되어 이제 데리고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바르셀로나로 발령이났다. 그리고 다시 밀라노로 재발령이 났을 때에는 셋째가 너무 아기여서 갈 수가 없었다. 이러다 또 돌로미티는 가 보지 못하고 귀임하겠다 싶었다. 결국 2019년이 되어서야 돌로미티 지역의 세체다를 밟을 수 있었다.


이 지역의 여행을 계획할 때 사실 어떻게 일정을 짜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구글 위성맵이 없었고 숙소를 어느 곳에 잡아야 동선을 짜는데 효율적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꾸역꾸역 여러 블로그와 여행책을 보며 조사해본 결과 아이들과 가기에는 오르티세이 마을에서 움직일 수 있는 알페 디 시우시나 세체다 지역이 알맞아 보였다.

사실 아이들과 여행을 갈 때에는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여러가지 있다. 숙소를 정할 때 이왕이면 작은 수영장이나 놀이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여행이 엄마아빠가 좋아하는 곳을 억지로 따라다닌다는 생각을 안하게 된다. 그리고 숙소에서 가려고 하는 목적지가 너무 멀면 안된다. 이 지역은 2000m가 넘는 고산지역이라 당연히 구불구불한 산길이 많다. 따라서 거리가 짧아도 이동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고 멀미가 나는 경우가 많으니 웬만하면 목적지에서 너무 먼 곳을 숙소로 잡는건 좋지 않다.


2019년 세체다를 다녀오고 우리 가족은 이 지역에 푹 빠져버렸다. 그 다음 해 코로나 때문에 여행객이 줄어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는 여행다니기에 좋았다고 할 수 있는데, 2020 년에는 오르티세이의 알페 디 시우시를 갔다. 세체다에서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산의 모습을 보았다면 알페 디 시우시 에서는 고산들 사이에 마법처럼 펼쳐진 평원의 모습에 감탄했다.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야생화 만발한 평원의 모습이 이곳에도 있었다.

셀바 디 가르데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싸쏘룽고는 또 어떤가.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한 그곳은 큰 바위산들이 주욱 늘어져있어 내가 보는 풍광이 가짜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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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다에 올라서 본 모습(좌), 알페 디 시우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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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 디 시우시 빨간 케이블카(좌), 브라이에스 호수(우)


산이 많은 만큼 각양각색의 유명한 호수도 많다. Braies 호수를 보자 처음 Carezza 호수는 내 마음 속 넘버 원 호수에서 밀려났다. 바다같이 넓은 가르다호수를 볼 때와는 또 다르다. 호수를 둘러싼 산 사이의 옥빛의 호수를 보다보면 내 앞에 금방이라도 숲 사이에서 요정이나 티롤들이 뛰쳐 나올 것 같다. 청록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듯한 호수는 빙하가 녹아 그 특유의 색깔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트레 치메를 가려던 일정을 바꿔 충동적으로 갔는데 그 장관에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들과 뗏목이라고 해야하나, 작은 배를 1시간 동안 노를 저어 탈 수 있는데 호수 한가운데에서 사방으로 들러싸인 산을 보고 있으니 황홀하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트레치메일텐데 아직 이것은 가보지 못했다. 뭐랄까 그래도 가장 맛있는 것은 제일 나중에 먹고 싶은 마음같달까. 동시에 유명하긴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곳들보다 더 멋있고 감동적일까 싶은 의심도 있다.

어쨌든 나는 매해 한번씩은 꼭 이 돌로미티 지역을 가려고 한다. 이탈리아에 어느 하나 빼놓을만한 지역은 없지만 단연코 돌로미티는 이탈리아인에게 보석같은 곳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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