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로마 2011년 1월

by 불친절한 은자씨

어제 들어오자마자 온 식구가 잠든 탓에 새벽 4시에 모두 눈을 떴다. 둘째만 칭얼거리는 잠꼬대를 하며 자고 있다. 어차피 오늘은 바티칸에서 머물기로 했으니 지하철 말고 자동차로 가기로 한다. 사실 로마는 일방통행도 많고 보행자 전용도로며 ZTL같은 진입금지 구역이 있어 차를 가지고 다니는게 쉽지는 않다. 로마 도시 자체가 거대한 유적지이므로 정부에서 도로개발을 함부로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차도 당연히 힘들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 워낙 일찍 일어났고 어제 지하철을 타보니 아이들 데리고 타는게 만만치 낳아 차를 가져가기로 한다. 다행히 운수 좋게 바티칸 바로 들어가는 입구쪽에 주차를 하고 여유있게 BAR에서 카페까지 마실 수 있었다. 오늘은 왠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오늘의 트러블 메이커는 바로 남편이었다. 부득불 지난 출장 떄 보았다며 바티칸 미술관 티켓을 베드로성당에서도 통합판매한다며 성당안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확신에 차며 성큼성큼 들어가는 그를 막지 못하고 졸졸 따라갔다. 아이들은 익숙한 성당안으로 들어오자 저들끼리 숨바꼭질하고 난리다. 한시간 가량 지났을까. 남편이 갸우뚱거리더니 아무래도 본인이 잘못 안 것같다며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바티칸 밖으로 나가서 좌측방향 1KM정도 올라가야 입구가 나온다는 설명이다. 서둘러 나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으로 향하고 있고 나는 엄청난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장착하여 디럭스 유모차에 둘째를 앉히고 부리나케 뛰어 올라간다. 한 300M를 달렸을까. 줄이 길게 서 있다. 껑충뛰어 입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슬며시 욕이 나온다.

1시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입구로 들어간다. 그런데 입구에서 바로 티켓을 끊어주는게 아니다. 들어와 보니 온라인 티켓 구매자만 1층에서 바로 입장하고 현장 구매자는 또 올라가야한다. 우린 유모차까지 있어 리프트를 찾는데도 한참 헤맸다. 겨우 올라왔더니 아이들이 배로프다고 난리다. 이쯤되니 내가 굳이 여기를 왜 왔을까 싶다.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미술관에 입장했다. 사실 나는 이 미술관 전체를 다 관람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딱 4군데만 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미술관을 오려고 한 계획 자체가 무모했고 4군데를 볼 생각을 한 것도 잘못된 것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고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이라 1시 30분에 미술관이 문을 닫는단다. 게다가 이이들이 너무 걸었던 탓에 지쳐하고 칭얼거린다.

결국 시스티나예배당 천장화만 보기로 하고 표지판을 보는데....하...하필이면 미술관 마지막 구석탱이에 있다.

여기 신성한 바티칸에서 욕만 나온다. 이 와중에 큰애는 또 화장실이 급하시다고...지금 우리 가족은 시트콤을 찍는 것 같다. 아....남편이 결국 큰 애를 안고 뛴다. 신성한 바티칸에서 남편이 뛰어 다니고 나는 욕이 나올 것 같다. 어찌어찌 시스티나 예배당에 다다르나했더니....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우린...둘째가 탄 디럭스 유모차를 갖고 내려가야하는데....둘째가 그새 잠이 들었다. 남편이 또 영차영차 유모차를 들고 내려오며 결국 한 마디 나지막히 하기를,


"어떤 그림인지 제대로 안그렸음 가만 안둔다....."


드디어 도착해서 들어가는데 ,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림 감상이 ......힘들다....

겨울에 이정도인데 성수기에는.....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니다. 이곳은 1년 365일이 내내 성수기이겠지?


저게....신과 인간이 삐리릭하는거야?

그런가봐.....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보안요원들이 소리친다.


ATTENZIONE!!!

그렇다. 여기는 예배당이다. 정숙해야하는 공간이다.


우린 그렇게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남편의 관람평은, "이놈의 미술관은 여백의 미란게 없어..왜 이렇게 천장이고 벽이 다 어지러운거야"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술관은 온통 어지러웠다. 아주 오랜기간 계속 모여진 미술품과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라벨관리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관람객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차 있었다. 가이드없이 나같은 개인 관람객은 제대로 미술관 관람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고된 관람이었다.


역시 나의 과욕이 부른 화였다. 아직 어린 아이 둘을 끌고 바티칸 미술관을 보러 가다니 내 꿈이 야무졌다. 너덜너덜한 상태로 겨우 빠져나오자 이제 배가 고프다. 차에 애들을 싣고 돌아가는데 아이들은 금세 잠들었고 우리고 대충 허기를 채우고 밤잠인지 낮잠인지 모를 잠에 빠져들었다.

5시쯤 되어 눈이 떠진다. 한 잠 자고 났더니 미술관 악몽은 다 사라졌다. 밀라노보다 훨씬 좋은 날씨이다. 봄날 같은 날씨인데 야경이라도 보러 나가자 싶어 아이들을 챙기고 다시 밖으로 나가본다.

아이들은 밤에 밖을 나오니 좋은지 둘이 잘 걷는다. 한식당에서 저녁을 거하게 먹고 산탄젤로 성앞으로 가본다. 우와 여긴 정말 잘 왔구나. 낮과 달리 조명이 켜지니 황홀한 분위기이다. 산탄젤로 성 앞 다리를 오가며 야경을 보니 낮의 고단함이 풀리는 듯하다. 아이들과 여행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고 고난의 여정이다. 그래도 이런 야경울 보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한순간 그 고단함이 잊혀진다. 이 한 찰나를 위해 굳이 노력과 돈을 들이며 여행을 다니는건가 보다.


사진_6407.jpg
사진_6469.jpg
사진_6514.jpg
바티칸 야경(좌)산탄젤로성앞 다리(가운데)산탄젤로성앞(우)

다음 날, 바로 밀라노로 향하기가 아쉬워 스페인광장을 들려 가기로 한다. 내 비록 오드리헵번은 아니지만 로마는 스페인 광장이 유명하니까 그 계단은 걸어줘야 하는거 아닌건가. 네비게이션이 알려준대로 가서 주차하고 보니 분위기가 내 생각과 다르게 파리의 몽마르뜨언덕 같다.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가 내린곳은 스페인 광장 윗쪽 언덕부분이었고 스페인광장은 언덕 계단 밑이었다.

계단이 많지는 않지만 유모차끌고 내려가기가 귀찮아서 계단 중간에서 사진 몇 장씩으며 콘도티거리를 구경한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자 로마에서 이제 카페 한 잔 마시고 집으로 가기로 한다. 근처 카페테리아에서 카푸치노와 브리오슈를 시켰더니 15유로 관광지요금을 내고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이제 로마를 보고 내 언제 또 여기를 와 볼 수 있을까 싶다.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태리를 떠나기 전 로마를 와봤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2011년 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덧붙이자면 다시 못 가볼 것같았던 로마를 2017년 8월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의 여행기는 다음에 ....






keyword
이전 11화로마 2011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