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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an 22. 2024

내 삶도 너를 찾아 우주에

강태식 소설집 『영원히 빌리의 것』(한겨레출판, 2021) 중 「우주비행사의 밤」을 읽고     



강태식 작가는

2012년 《굿바이 동물원》으로 제17회 한겨레문학상을, 2018년 《리의 별》로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중편소설 《두 얼굴이 사나이》가 있다. 《영원히 빌리의 것》은 저자의 첫 소설집이다. - 작가소개에서     



서유미 소설가는 『영원히 빌리의 것』 발문에서

“강태식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상실을 견디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의 순간을 지나가는 나날들 자체가 곧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인물과 함께 어떤 장면에 머물려 그 안에서 정서를 끌어낸다.”라고 적었다.      




강태식 작가는

“인물의 정서에 주목한 작가, 특유의 감각적 시선과 만나 어떤 세부가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누락되는 영문학적 깊이로써 작품의 매력을 더 한다.”라는 평을 듣는다.    


  

「우주비행사의 밤」은

찬란했던 한순간, 인생의 내밀한 구석에 응어리진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이 알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공간과 시간 배경을 사용하는 방식도 인상 깊었다. 캐릭터 구축에 힘을 쓴 흔적이 나타난다. 소설에서의 비극은 슬프거나 나쁜 일이 닥치는 것, 일상이 무너지는 일, 좋았던 순간이 사라져 버리는 일이 인생의 비극이라고 말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주인공 캐럴은 일흔여섯 살이다. 50년 전에 우주선을 타고 궤도이탈로 실종되었던 남편이 돌아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는다. 50년을 넘나드는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남편이 탄 우주선의 실종을 알리는 전화를 받으며 주인공이 느끼는 표현할 길 없는 상실감에 낮고 잔잔한 문체로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50년 전의 블랙홀로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50년 전, 캐럴과 마크는 지인의 파티에서 만났고, 사귀게 되어 결혼한다. 새로 구입한 이층 집에 마크의 동료들을 초대한다. 여섯 명의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에 관해서 밤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 농담과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웃음과 오랜 시간을 두고 단층처럼 쌓인 신뢰가 가득한 밤이었다.” (p94)     



캐럴은 우주비행사들과 함께한 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캐럴은 50년째 한동네에 살고 있다. 제시카가 파이를 만들어 왔다. 제시카는 캐럴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는 5살 위의 친구다. 매기는 캐럴에 전화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댄다.      



50년 만에 만나는 우주비행사들과의 재회를 사이에 두고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의 이야기들을 펼쳐 놓음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인생은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남은 인생이 많을수록 더 그랬다. 딱 자기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시작됐다가 딱 자기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끝나는 것이 인생 같았다.”   


  

인생을 공간에 대비해 이렇게 정의하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캐럴은 마크를 만나려고 버스 승강장에 도착해서도 쉬이 버스를 타지 않고 계속 보낸다. 마크가 우주에 떠돌게 되면서부터 자신의 삶도 함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았고, 지구에서의 자기의 삶이 진짜 같지 않았다는 주인공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제 캐럴은 세 번째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앉아 나이를 먹은 사람처럼.” (p105)     




마지막 문장이 5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큰 사건을 겪은 주인공이 "인생이란 더욱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주인공의 상실과 쓸쓸함이 온전히 전해지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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