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휴 Jan 15. 2024

우리가 놓지 못하는 기억들

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창비, 2022)중 「사물과 작별」을 읽고

조해진 소설가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아무도 보지 못한 숲』, 『로기완을 만났다』, 『여름은 지나가다』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무영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사물과 작별」은

작가가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개인의 사건으로 사용되고 소설적 의미를 갖는지, 소설 속 아름다운 문장과 절묘한 비유를 찾아가며 읽으면 좋다는 설명을 들었다.    



  

고모는 다른 형제들 모르게 주인공에게만 이야기해 준다. 자식이 없는 고모와 주인공의 친밀함의 정도를 나타내기도 하고, 소설 속 여정을 다음 세대의 사람이 끌어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로 엿보인다. 기억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망각과 기억을 오가며 서사가 이어진다.   



소설의 중심 서사는 고모가 현재에 서 군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인물, 관계, 물건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만나야 비로소 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이 소설은 사물과 유실물, 소재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사유와 깊이를 더한다.    


  

주인공은 유실물센터에 근무한다. 사람도 사물처럼 생각한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된 고모는 과감하게 일상생활을 정리하고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담담하게 결정한다. 고모는 자식이 없는 예순 살이었다. 결혼을 안 했기 때문이다. 고모의 아버지는 청계천 평화시장 골목에 레코드 상점을 연다. 고모는 레코드 상점에서 서 군을 만난다. 서 군은 고모보다 여섯 살 연상이다.   



   

서 군은 1971년에 한국에 왔다.

“재일조선인이었던 그에게 국적은 무력하게 당하기만 해야 하는 폭력이자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였다. 폭력도 상처도 없는 고국을 막연히 동경해 보던 서 군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의 K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을 왔다.” (p67)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 이후, 당시 청계천은 학생들 사이에서 언제나 화재의 중심에 있던 공간이었다. 고모는 서 군을 만났던 이야기를 해준다. “늙고 병들었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있는 곳은 여전히 그 봄밤의 태영음반사야!”라고 고모는 회상한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고모를 모시고 서 군을 만나러 간다. 겨울방학이 되기 직전, 서 군은 일본어 원고 뭉치를 고모에게 맡긴다. 고모는 방학이 끝나고 원고 뭉치를 K 대학에 가져다준다. 서 군의 원고는 불온 문서로 간주하여 ‘일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둔갑하여 서 군은 죄인이 된다. 고모는 그렇게 자책했지만, 그 일이 있기 전 이미 서 군은 납치되었다.  

    


“고모와 서 군을 한 번만, 딱 한 번만 다시 만나게 해 주기로 결심한 건 내게는 고모의 삶 전체가 마지막 조난신호 같았다.” (p77)   

  



서 군은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을 앓고 있다. 고문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오랜 기간 잠복해 있다가 차츰 치명적인 병으로 발전했을 거라는 진단을 듣는다.


     

“서 군에게 잘못을 고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그가 자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 사이를 유령처럼 오갔을 것이다.” (p83)    

 


고모를 요양원에 도로 데려다주고 유실물센터로 왔다. 고모는 서 군을 보고 싶은 마음에 태영음반사에서 서 군을 기다리다 방학이 끝나고도 오지 않는 서 군이 궁금하고 걱정되어 원고 뭉치를 핑계로 K 대학에 갔다가,  서 군의 원고를 대학에 주었다가 오히려 서 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불안하게 살아간다.      



(고모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평생토록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모의 삶은 기억이 돌아온 순간마다 죄에 대한 사죄를 생각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요양원에서 쇠약해지면서도 끝까지 놓지 못하는 기억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고모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삶에서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어떻게 이겨나가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평생 마음속에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공감될 것 같다.)   

   


(작가의 좋은 문장으로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에 감동하며 읽으면서 마음도 서사를 따라간다. 유실물센터에 우리는 과거에 무엇을 잃어버렸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에게 받았던 소중한 마음이나 사람은 아니기를 바란다. 그저, 잃어버려도 별 상관없는 사물이기를.)  

이전 08화 희망이 젖어드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