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휴 Feb 07. 2024

밤하늘에 핀 불꽃

지난해 늦가을. 복숭아 작목반에서 여수로 여행을 갔다. 작목반이라는 말이 생소했는데, 우리가 작목반에서 여행을 가는 것으로 진짜 농부가 되어가는 것을 실감했다. 연일 바쁜 농사일로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주말도 휴일도 없이 살았다. 복숭아 농가들이 비교적 한가하다는 11월이 여행하기 좋은 인가 보았다. 여수 해양박물관과 오동도, 밤 유람선 타는 것이 주요 관광코스였다.



관광버스에서 식당에서 거리에서 온통 복숭아나무 키우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얼굴 위로 '복숭아'라는 동그란 말풍선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복숭아만 아는 것처럼, 복숭아에 대해서는 모두 박사님들이었던 사람들. 일 잘하는 사람이 놀기도 잘한다는 말처럼 일행은 버스 안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신나 했다. 관광하는 시간에도 즐겁고 밝고 씩씩한 모습들이었다.



우리에게는 왕초보로서 복숭아나무를 키우느라 몰랐던 것을 물어보고 배우는 관광이었다. 여행을 마칠 쯤에는 조금씩 친해서로들 농장에 오면 자세히  알려 주겠다고 스스럼없이 초대해 주셨다. 우리처럼 귀농하여 탄탄하게 자리 잡아가는 분들이 많아서 부러웠다. 몇 년 후에는 우리도 초보 딱지를 떼고 자립해서 과수원을 운영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른 저녁밥을 먹고 밤에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 꼭대기 층인 3층으로 관람객을 유도했다. 3층엔 관람객으로 가득 메워졌다. 홍도를 다녀오면서 뱃멀미를 심하게 해서 배를 타는 것 자체가 겁이 났었다.


"밤풍경을 구경하려면 위층이 좋을 텐데."


위층으로 가자는 말에 내키지 않았지만 따라나섰다. 어둡기도 하고 사람들도 많아서 혼자 있기가 어려웠으니까. 위층으로 갈수록 배가 더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여수 시내의 불빛과 색색으로 장식된 다리의 불빛들은 무섬증도 잊게 했다.



까만 밤하늘머리 위의 눈앞에서 터지는 불꽃들은 마술 같았다. 각양각색의 불꽃쇼가 한참 이어졌다. 옆에 있는 사람을 잠깐 잊을 정도의 찰나가 흘러갔다. 그림처럼 퍼져나가는 불꽃의 향연이 마음에 새겨졌다.



소읍에서 10년간 신혼을 보내고 도시로 올라왔을 때, 월드컵경기장이 바라다 보이는 아파트에 살았다. 그 경기장에서 가끔 큰 행사가 있으면 불꽃놀이를 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면, 숲을 사이에 두고 바로 위 밤하늘에서 불꽃이 펑펑 터지는 것처럼 보여서 아이들을 데리고 베란다에서 불꽃을 구경했다.



숲 속 동화나라에 온 것처럼 펑 펑 불꽃이 터졌다. 아이들의 얼굴엔 천사처럼 환한 미소가 퍼졌고, 구순의 시어머님도 천진한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생활에 찌들어 살던 시절 누군가 내게 선물을 보낸 것 같은 순간이었다. 하늘에 퍼지는 불꽃처럼 마음에도 퍼져나가던 불꽃들.



금방 사라져 버리는 불꽃이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어떤 광고처럼, 열심히 살아온 그대 휴식하라!!! 연중 흙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마련해 준 불꽃여행이었다.



이전 02화 결코, 외로울 수 없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