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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an 31. 2024

결코, 외로울 수 없었다

앙코르 와트를 가다

2015년 남편의 중학교 동창 모임에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 모임은 몇 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갔었다. 우리는 연로하신 시어머니와 돌봐야 하는 둘째, 남편 직장 등 여건이 맞지 않아서 두 차례는 해외여행을 함께 갈 수 없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도 직장에 나가고 있었다. 주말 포함 며칠 휴가 받고, 둘째는 듬직한 첫째에게 부탁하면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여행 갈 팀을 조사하고 여행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남편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남편이 여행참가 인원에서 빠지게 되었다. 혼자라도 다녀오라고 권한다. 모두 부부동반인데 어떻게 가냐고 망설였는데 모임분들이 함께 가자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모임에서 떠나는 여행은 빠진다고 해서 비용을 돌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앞에 갔던 두 번의 해외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남편은 다른 모임에서 다녀온 곳이라 혼자라도 가기로 했다.



결혼 후 그때까지 혼자인적이 없었다. 신혼 초부터 16년 동안 시어머님이 계셨고, 두 아이와 남편까지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나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때가 첫 해외여행이었다.



가족들이 4박 5일 동안 일용할 양식들과 여행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나무 위키에서 -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결코, 외로울 수 없었다. 그토록 기다렸고, 붐비는 생활 속에서도 고독의 문턱을 기웃거렸건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남편들을 떼어 놓고 내게로 오는 부인들.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서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고, 친구도 있다. 남편 모임인지 내 모임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그들이다. 혼자 계시기 어려운 시어머님을 모시고 같이 갈 수 있는 유일한 모임이었으니까.



밤에 읽으려고 챙겨갔던  시집과 수필집도 펼치지 못했다. 저녁식사 후 헤어져 간단히 일기를 적고 훈훈한 밤공기를 맡으며 잠시 바깥 풍경에 취해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그 부인님들이 남편을 두고 내 방에 모였다. 밤을 새울 것처럼 떠들다 밤이 깊어 다음날 여정이 걱정될 즈음에야 돌아갔다. 사흘 밤마다 남편들로부터 놓여 난 우리들만의 하하 호호 신나는 휴가였다. 한낮에는 너무 뜨거워서 여행 불가라 낮마다 전신마사지를 받았는데 부인들이 모두 좋아했던 시간이었다. 남편들 없이 우리끼리 온 여행 같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앙코르 와트... 당연히 경이롭고 신비한 건축물을 마주하며 숙연해졌고, 인간의 위대함과 신을 경배하는 마음 등 의미 깊은 해외여행이지만, 내게는 나를 지켜주던 든든한 그녀들 속에서 미안하고 감사했던 잊지 못할 최고의 여행이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꼭 어떤 것을 구경하러 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고 더 깊이 알아가고 더 가까워지기 위해 함께 떠나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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