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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Feb 28. 2024

위에서만 보이는 풍경

강천산에 오르며

나도 남편도 직장에 나갈 때, 토요일엔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다. 첫째는 취준생이라 공부한다고 방에만 틀어 박혀 있었고, 남편은 잠자는 것으로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를 푸는 사람이었다.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야 생각도 넓어지고 마음도 생기가 도는 사람이다. 둘째도 집에만 있는 날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툴툴거렸다.



출근할 때보다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내리 여덟 끼를 챙겨 먹이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나랑 둘째라도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서로에게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쓰러질 것 같았다. 토요일 점심을 준비해 놓고,



1. 나와 둘째는 나들이를 간다.

2. 일요일 한 끼는 시켜 먹는다.



조용히 쉬고 싶은 남편도 공부하는 첫째도 OK. 그렇게 시작된 둘째와의 주말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엄마 차 타고 어디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둘째다.



전북 순창에 있는 강천산은 가족들과 가기도 했고, 모임에서 여행으로 다녀왔던 기억이 있어서 둘째도 좋아했다.


위키백과



"세 번째 왔다."


누구랑 왔는지, 몇 번 왔는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둘째.



강천산은 단풍이 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곳이다. 갈 때마다 진입로에 차들이 긴 줄을 서서 주차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2월 중순엔 비교적 한적해서 산책하기 좋았다. 잎새를 틔우려고 가지 끝에  붉게 용쓰고 선 나무들과 한쪽에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도 힘차고 평화로웠다. 정비된 흙길은 맨발 걷기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깨끗한 바람결은 생활의 찌꺼기를 모두 씻어 주는 것 같았다.



폭포수 아래서 사진도 찍고 둘째랑 이런저런 말을 나누며 운동삼아 열심히 다녔다. 먼저 말을 걸어오지는 않지만, 둘째의 생각을 끌어내고 말로 표현해 주느라 묻고 답하고 따라 하게 하느라 나는 온 힘이 다 빠지곤 했다. 이렇게 나들이를 다녀온 날에는 둘째도 나도 꿀잠 예약이다.



아래서 올려다본 구름다리는 너무 멋있었다. 그 위를 걷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오랜만의 산행이라 다리가 너무 아팠다. 구름다리를 건너서 계속 위로 올랐다. 계단으로 이어진 데크길을 오르고 오르니 팔각정이 나왔다. 산에 들면 정상까지 오르는 게 습관이 돼서 둘째도 마다치 않고 잘 따라왔다. 둘째가 없었다면 혼자서는 산 위로 올라갈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위로 오를수록 체감상 공기도 더 맑아지는 것 같고, 보이는 풍경은 더 멀리 펼쳐져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막혔던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힘들게 산을 올라간 사람만이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신선봉 팔각정에서는 우리가 걸어왔던 아래쪽이 모두 내려다 보였다. 강천산 제1봉인 왕자봉과 제2봉인 형제봉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길 위에는 사람들이 꽉 찼는데, 산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광덕산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산길 쪽은 초행길이었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더 올라가기 무서웠다. 남편이 있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광덕산 정상까지는 올랐을 터였다.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하산 후, 강천사에 들러 내 간절한 기도도 올리고 오후 행선지인 체계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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