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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Apr 19. 2024

일은 뒤영벌이 합니다

생명이 움트는 계절

[블루베리]


블루베리 하우스는 가끔 물 주고, 잣껍질까지 뚫고 올라온 풀을 뽑아 주고 있다. 물관리, 온도관리, 풀관리가 블루베리 3대 관리요소가 되었다.


"블루베리는 누가 키우냐고요?"

"하우스 안에서 일은 뒤영벌이 합니다."


블루베리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뒤영벌 통 들여놓았다. 온도가 조금 낮아서 벌통에서 잘 나오지 않던 벌들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윙윙윙 힘찬 날갯짓이, 꽃과 꽃 사이를 오가는 검정 바탕에 샛노란 줄무늬의 뒤영벌이 어찌나 예쁘던지 사진으로 담고 싶어 다가가면 어느새 눈치채고 다른 꽃으로 날아가 버린다. 자잘한 종들이 무수히 달린 블루베리 꽃들이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처럼 예쁘기 그지없다.




[복숭아]


복숭아 밭에 풀들이 무릎보다 더 높이 자라서 예초기를 임대해 풀베기 작업을 했다. 하루는 승용예초기로, 다음날은 손예초기로 이틀 동안 작업 했다. 남편이 예초기로 제초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가지치기와 수형 잡기를 했다. 5단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해서 무척 힘들었다.


그 작업을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데, 남편은 혼자 하지 못한다. 묶어 놓았던 줄을 풀어주기도 하고, 다시 매주기도 해야 하고, 새로 묶어 주기도 해야 한다. 묶어 놓았던 줄을 다시 풀어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매듭을 잘 지어야 되는데 남편은 매듭짓기를 알려 줘도 잘하지 못한다. 귀찮아서 배우려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한쪽 끝만 이용해서 묶어야 팔자모양의 매듭이 생기면서 튼튼하게 매듭이 만들어진다. 반대쪽도 한 줄만 잡아당기면 풀리기 쉽도록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그 쉬운 게 어렵다고 한다. ㅠㅠ


"언제 매듭짓는 걸 배웠어?"

"뭘, 이까짓 걸 배우고 말고요."


순하게 묻는 말에 툭하고 말이 뻗어 나간다. 줄을 묶을 때, 장갑을 끼면 미끄러져서 단단하게 묶어지지 않는다. 맨손으로 며칠째 계속되는 작업에 손이 붓고 쓰리고 마디마다 아파왔다. 손의 통증만큼 내 목소리도 부어 있을 터였다.




[감자밭]


감자가 싹을 틔웠다. 한 달 후에 싹이 날 거라는 말과는 달리 3주 만에 검정 비닐이 불쑥 올라와 있어서 서둘러 뚫어 주었더니, 싹이 노랗게 올라오고 있었다. 뚫어 주고 며칠이 지나자 노랗던 싹이 초록색으로 건강하게 변하고 더 통통해졌다. 한 줄기만 남기고 잘라내라고 했는데, 그 작업을 미처 못하고 있다.



텃밭에서 기른 시래기를 넣고 등뼈 감자탕을 끓였더니 둘째가 감자는 어디 있냐고 묻는다. 뼈의 부위가 감자라고 알려 줘도 "오잉?" 하며  믿지 못한다. 농장에서 감자를 캐면 넣어서 끓여 주겠다고 했다. 싹이 자라는 상황만 봐도 실한 감자들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감자를 심자마자 외할머니댁에 감자 한 박스 가져다 드리겠다는 말을 기억하고 외가에 언제 가냐고 묻던 둘째다.




[사철나무 울타리]


고향에서 키우던 사철나무를 가져다 심어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들쑥날쑥 자라던 것을 키를 맞춰 단발을 해 주었다. 비가 오고 해가 뜨기를 반복한 몇 날이 지났다. 잎이 수북하게 자라난 사철나무 울타리가 햇살을 받아 더 반짝인다.



매실나무도 느티나무도 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산자락은 봄의 천사가 그린 그림이다.  색색의 빛깔로 살아나고 있는 나무들이 어우러진 사랑스러운 숲. 봄 물살도 맑고 경쾌하게 흘러가고 바람도 봄이라고 속삭이는 날들이다. 꿈틀, 내 안에서도 무언가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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