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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May 10. 2024

천사가 다녀갔다

            

[블루베리]


열매들이 커가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뒤영벌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수정이 잘 되어 열매가 맺힌 것에 대해 감사했다.  열매에 꽃이 말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품종이 있었다.



전문가가 그 품종은 꽃이 자연적으로 떨어지지 않아 사람이 손으로 떼어 줘야 된다고 말했다. 다른 품종은 거의 다 꽃이 떨어지고 깨끗한 열매들이 크고 있다. 꽃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종류는 열매도 굵고 꽃을 뗀 봉오리 쪽이 예쁜 모양이었다.



뒤영벌을 넣어 두고 출입문을 닫아 둬서 바람이 부족해 꽃이 잘 떨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출입문에 방충망을 아직 설치하지 못한 탓에 조마조마하다. 매사에 심사숙고*3 형인 남편은 자기가 방충망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말한다.



농사일도 제 때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날씨는 점점 더워오고 여름 되면 곤충들이 들어와서 알을 까게 되면 안 되는데 시간은 너무 빨리 가고 걱정이 많은 나는 속이 타들어 간다. 직접 해보겠다는 실험정신이 강해서 어쩔 도리도 없다.



[복숭아나무 열매솎기]


올해 처음 복숭아나무 열매솎기를 하고 있다. 묘목을 사다 심은지 4년 차인데, 그동안은 나무를 키우려고 열매를 달지 않았다. 올해도 맛보기와 작업 실습용으로 조금만 남기고 따주고 있다.



주변에 복숭아나무를 기르는 분들이 모두 우리의 스승이다. 열매는 아래쪽에 달리게 하고, 잎은 아래쪽에 두면 안 된다. 잎이 열매를 상처 나게 한단다.



1. 주지와 측지에는 열매를 두지 않는다.

2. 측지에서 뻗어나간 결과지에 열매를 단다.

3. 본 가지로부터 10cm 이내는 열매를 두지 않는다. (큰 가지와 부딪힌다)

4. 결과지 끝에는 열매를 달지 않는다. (봉지를 싸기 어렵다)

5. 열매의 상처나 모양을 확인한다.

6. 모양이 둥근 것보다 길쭉한 모양이 더 좋다.

7. 길이 30cm 정도의 가지에 열매 2개 정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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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초보라서 전문가들이 알려 주는 내용들을 열심히 따라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공정 중에서 열매솎기가 가장 재미있다. 내가 남겨 놓은 열매만 과일이 된다는 사실이 내 손이 신이라도 된 느낌이다. 사람도 자랄 때, 나쁜 습관이나 버릇들은 모두 없애고, 좋은 성품만 골라서 자라게 하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서둘러 열매를 솎아주고 봉지 싸기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일정이 너무 바쁘다.



[복숭아밭 제초작업]


풀을 벤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벌써 또 풀이 올라왔다. 승용예초기에 이어 이번에는 경운기형으로 밀고하는 예초기로 해보겠다고 임대했다. 평지는 괜찮은데 두둑 쪽을 올라갈 때 너무 힘들었다고 어깨 통증을 호소한다. 어떤 작업이 더 효율적인지 보겠다더니, 앞으로는 승용예초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직접 해보지 않아도 당연히 승용예초기가 더 나을 것 같았는데 사서 고생하는 것이 체질인 남편이다.



제초작업은 어떤 기계로 해도 정작 나무와 철재 시설 주변의 풀은 손으로 제거해야 된다는 맹점이 있다. 나무 주변이 깨끗하지 않으면 개미가 들끓어 나무를 오르내리며 진딧물을 옮기게 된다.



예초기가 지나간 자리가 남동생들 이발기계 지나간 자리처럼 깔끔해진다. 풀들이 덜 자랐으면 좋겠는데 비가 자주 내려서 그야말로 우후죽순이다.



[천사 이야기]


비 오는 날에 블루베리 마른 꽃 떼어주는 일을 했더니 으슬으슬 추웠다. 아침부터 지끈거리던 머리가 가라앉지 않았다. 설상가상 춥게 일하고 먹은 점심이 체했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몸살기가 몰려와 어찌나 졸리던지...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여동생이 왔다. 형부 생일 꽃바구니와 늘 무리하는 나를 위해 영양주사를 준비해 왔다. 내 동생은 백의의 천사 간호사다. 어렸을 적부터 까칠하던 나와는 다르게 유순하고 착한 진짜 천사다. 늘 웃음기 머금은 얼굴에 평생 화 한 번 안 냈을 얼굴이다.



링거를 놓아주고, 두피부터 어깨까지 마사지로 풀어주고 간다. 두통이 심하면서 혈압이 상승한 나를 걱정하며 계속 머리가 아프면 꼭 병원에 가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네 살 터울이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여리게 컸던 동생이다. 늘 보호해 줘야 했는데, 지금은 부모님을 비롯해 온 가족 건강지킴이다.



우리 집에 온 천사 덕분에 아픈 몸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건강이 먼저랍니다."


천사에게서 온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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