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주 작가는 2007년 《문학과 어린이》에 동화가 2022년 《한국크리스천문학》에 수필이 당선되었다. 출판사 〈아동문예〉, 〈아침마중〉, 〈세계문예〉 대표인 박옥주 작가의 두 번째 동시집이 나왔다. 52편의 동시와 김천정 그림작가의 삽화가 만나 멋진 동시집이 '반짝,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박옥주 시인은 1976년 5월 1일 창간한 아동문학 전문문예지 《아동문예》의 편집과 발간을 40년 넘게 맡아 온 전문 편집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동시가 변화 발전해 온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겪어 온 분입니다. - (전병호 시인)
전문 편집자가 쓴 동시라서 믿고 읽는 책이라고 하겠다. 자연에서 찾은 동심이 어찌나 참하고 예쁘게 반짝이던지 감탄하며 읽었다. 첫 번째 문을 여는 시를 보자.
또
로
로
로
롱
!
처마 끝에서
빛방울
떨어지는 소리.
또
로
로
로
롱
!
초록빛
불러내는
실로폰 소리.
― 「봄 오는 소리」 전문
봄비가 내리는 것을 봄이 오는 소리라고 한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초록빛을 불러내는 빛방울이라고 한다. 비가 오는 소리를 한 줄로 세워서 비가 내리는 것을 글자로 볼 수 있도록 썼다. 봄비에서 새싹까지 연결한 동심이 빗방울을 빛방울로 연상하게 만든다.
별을 사랑하는 작가.
안개꽃도 별로 보고, 콩, 콩! 쥐어 박힌 머리 위로도 별이 쏟아졌다고 한다. “엄마 품의 우리 아기는 달님 옆에서 웃는 샛별”이라고도 한다. 전학 간 친구가 별똥별 되어 마음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꽃을 사랑하는 작가.
안개꽃을 별처럼 사랑하고, 반지하 방에 팬지꽃에도 햇살이 찾아온다. 산수유, 목련, 진달래 등은 봄꽃 릴레이를 펼친다. 봉숭아 씨가 터지는 이유도 알고 있다. 백목련을 보며 흰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을 생각한다. 비눗방울도 꽃으로 보는 꽃처럼 고운 작가다.
나무를 사랑하는 작가.
어떤 나무는 “앞 못 보는 사람의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한다. 어떤 나무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봉”이 되고 싶다고 한다. 버드나무는 아기 오리의 그늘이 되기도 한다. 자작나무 숲에서는 백설 공주와 꼬마 요정이 산다. 나무들의 꿈 이야기를 박옥주 작가는 들을 수 있단다.
가족을 사랑하는 작가.
엄마는 아이를 보며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시가 된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여러 모습도 시가 된다.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 보인다. “나랑 놀아주는 할머니가 진짜 내 할머니”라는 아이의 말이 함께 놀 친구가 귀한 상황과 심리가 드러나고, 함께 놀아주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할머니의 편지에도 마음이 뭉클해지고, 글자 공부하는 할머니도 멋지다.
고드름
― 뾰족하다고?
맑음, 깨끗함, 투명함, 영롱함, 반짝임…
좋은 말 다 놔두고,
그런 말로 기억되는 건 정말 싫어.
고드름의 뾰족한 모양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고드름에 좋은 말들을 놓치는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 고드름의 좋은 특성을 박옥주 작가는 안다. 잘 보이지 않는 좋은 점을 찾아서 볼 수 있는 안목은 마음이 따뜻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의 품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시들은 마음을 닦아 준다. 눈앞에 있는 문제들에서 시선을 더 넓혀서 맑은 심성을 보여 준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다음 시를 보자.
대나무 잎에 앉은 고요
잠자리
대나무 잎에 앉는다.
― 잠깐 쉬고 갈게요.
눈 뜨고 잔다.
숲이 고요하다.
내가 제일 좋아한 동시다. 제목을 읽으면 대숲이 펼쳐진다. 바람에 사그락거리던 대숲. 잠자리 한 마리가 댓잎에 앉아 쉴 때, 바람도 잠시 멎는다. 그 고요한 순간은 내 숨까지 멎게 한다. 어떤 방해도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잠자리와 일체가 된다.
평소 가볍지 않고, 늘 진중한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연의 숨겨진 면면에서 맑고 순수한 동심을 찾아내는 장면들이 좋았다. 엄마와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를 찾는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적인 박옥주 작가가 느껴진다. 넓고 깊은 정서가 만든 참 귀한 동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