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24)를 읽고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세계 20여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세계를 사로잡은 우리 시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이 작품은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보편적이며 깊은 울림”(뉴욕타임즈),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다룬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설”(가디언),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문학평론가 신형철)이라는 찬사를 선사한 작품으로, 그간 많은 독자들에게 광주의 상처를 깨우치고 함께 아파하는 문학적인 헌사로 높은 관심과 찬사를 받아왔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137546>
2024년 우리나라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소설 수업과 동화 수업 시간에 추천 도서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묵직한 이야기라서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 처참한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5·18을 떠올리면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함께 온다. 전남대 근처 자취방에서 여고 시절을 보냈다. 자취방 골목은 가끔, 사복 차림의 수상한 남자들이 기웃거렸다. 최루탄 냄새와 시위 소리는 오후의 일과처럼 이어졌다.
책 속에서 죽은 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끔찍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상처. 멈추지 않고 흐르는 피의 궤적을 따라 읽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잡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 무게감을 견디고 한 문장 한 문장 보태어 글을 완성한 작가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한강 작가가 어렸을 때 들었다는 이야기들은 증언과 증거와 자료가 확보되어 소설화되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는 걸.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다행이었을 이야기가 엄밀히 발생했고, 사과도 없이 묻혀가고 있다는 것을.
주인공 동호가 겪는 현장은 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펼쳐진다. 역전에서 시위하던 날, 눈앞에서 한집에 사는 친구 정대가 총을 맞고 죽는다. 그 광경을 직접 본 동호는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정대의 누나는 정미 누나다. 사랑채에 세 들어 살던 정대와 정미 누나에 대한 회상과 시신을 보관하는 장소인 상무관에 있는 동호의 모습이 번갈아 가며 묘사된다.
폭력, 죽음, 고문 등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잔인성 앞에 인간의 존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끝끝내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예우를 받지 못한 그들은 감옥에서 풀려나온 다음에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는 삶을 스스로 버리기도 하고, 구차하게 이어가게도 된다.
1장 시체 보관소에서 일을 하는 동호가 정대와 정미를 찾아다닌다.
2장 정대가 혼이 되어 죽음 후의 자기 몸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3장 출판사에 근무하는 김은숙, 고문의 흔적 뺨 일곱 대를 지우려 애쓴다.
4장 기억하기 싫은, 절대 잊히지 않는 고문 취조실이다.
5장 청계 피복 노동자였던 여성 시민군 임선주의 아픈 이야기다.
6장 소년의 엄마. 치매 중에 아들의 혼을 본다. 소년이 되어 엄마한테 오는 모습이다.
노모의 넋두리는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이라서 끝끝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버렸다. 어머니가 된 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이 가서 노모의 마음이 너무도 절절하게 느껴졌다.
아래의 시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하게 읽혔던 부분이다. 시적표현이 뛰어난 부분이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
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기는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p57)
세상 모든 것이 정지한 것 같았다. 누군가는 죽음을 미화해 놓았다는 말했지만, 죽음의 순간을 이토록 정밀하게 그릴 수 있는 작가의 절제된 마음이 느껴져서 호흡을 멈추게 된다. 정지한 그림 사이로 총알이 내 살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을 상상해 본다. 총을 나눠 가졌지만, 사람에게 겨눌 수 없어서 총을 쏘지 못했던 시민군. 항복의 의미로 손을 들고나가는 아이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던 군인도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p115~116)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계산 없이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순수하고 진실한 것, 폭력과 죽음 앞에서도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힘. 진정한 광주의 모습이었고, 광주의 정신이었던 것.
소설일 뿐이라는 말로 외면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한낱 소설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을 두고 무어라 말을 더 보태겠는가. 위대한 작가와 위대한 작품 앞에 마음을 다해 작품이 말하는 바를 응원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