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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Nov 18. 2024

슬픔은 가슴에 담아 두는 게 아니야

한강 동화 『눈물 상자』(문학동네, 2024)를 읽고


한강 작가는 2024년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눈물은 모두 투명하지만, 그것들을 결정으로 만들면 각기 다른 색깔이 나올 거란 생각을 곰곰이 더듬다 이 이야기를 썼다. - 작가소개에서

    


책 표지에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나는 동화창작에 몰두하고 있어서 한강 작가의 동화책 두 권을 구입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동화다.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있었다. 눈물이 많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된다. 눈물 상자를 든 아저씨가 나타나 순수한 눈물을 사겠다고 말한 후부터 아이는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아저씨는 '푸른빛 새벽 새' 를 데리고 눈물을 사거나 팔려고 여행을 다닌다. 아이도 아저씨를 따라나선다. (나도 등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신발을 고쳐 신고,  일행과 동행하며 순수한 눈물이 궁금해진다.)     





눈물을 사겠다는 어떤 할아버지 집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평생 아무리 슬퍼도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전 재산을 주고라도 눈물을 사겠다고 한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도 간절하게 눈물을 흘리고 싶은 것일까?)


    

눈물을 산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내가 떠나갔을 때 등 삶의 고비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슬픔의 눈물을 모두 쏟아 낸 할아버지는 마침내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할아버지의 음울한 목소리가 밝아졌다. (진즉에 눈물을 흘렸더라면, 아내가 떠나가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하는 할아버지의 눈물이 슬프다.)     





행복해진 할아버지가 부는 피리 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아서,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린다. 아저씨는 아이의 순수한 눈물을 채취한다.   


   

“순수한 눈물이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담길 때, 거기 진짜 빛이 어리는 거야.”(p63~64)     



순수한 눈물을 흘리게 된 아이도 행복해져서, 자기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이 있는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눈물 상자』를 읽으면서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슬픔은 가슴에 담아 두는 게 아니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깊은 슬픔은 눈물로 흘려서 몸 바깥으로 배출해야 마음이 밝아지는 거라고.   

   


살면서 원치 않게 가슴에 품게 되는 아픔들을 너무 오래 안고 있으면, 슬픔의 무게에 짓눌리게 되는 것 같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세월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아픔이 있다. 아니, 세월이 흐를수록 더 두꺼워지는 아픔이 있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 아픔도 슬픔도 모두 씻겨 내려가는 순수한 눈물만이 마음을 맑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지 생각되었다. 책의 어느 곳에도 그런 말이 적혀 있지는 않지만, 내가 읽은 한강 작가의 책들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작사, 작곡, 노래까지 부르는 한강 작가의 말소리, 노랫소리에도 눈물이 담겨 있다고 느껴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평생 아픔을 품고 살아온 작가가 온갖 감정들을 담아서 흘려보내고 싶은 눈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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