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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Dec 20. 2024

농부의 세상 읽기 1

[이렇게 추운데 뭐 하니?]




올겨울이 추울 거라는 예보가 있어서 모터함 속에 스티로폼을 재단해서 넣었다. 찬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바닥과 사방의 벽, 뚜껑까지 덮어 놓으니 이제야 안심이다. 모터를 점검하러 오신 전문가께서 "이렇게 완벽하게 보온장치를 해 놓은 농가는 처음이다. 아무리 추워도 끄덕 없겠다"라고 칭찬해 주셔서 추웠던 마음이 뜨뜻해졌다.



길이를 재고 또 재고, 깎고 또 깎고 꼼꼼하기 그지없는 남편을 따라서 추위 속에서 세 시간 가까이 벌벌 떨며 작업하는 사이, 우리 농원 주변에서 사는 냥이가 은행나무 아래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이렇게 살벌한 추위에 바위와 가시풀들이 엉킨 그곳에서 뭐 하니?



평화로운 농가에 내려와 싱싱한 무와 고구마를 초토화시키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멧돼지를 찾는 것 같은데... 선량하고 연약한 너 혼자 어쩌려고 그래?



"저쪽에 우리 친구들 엄청 많아요!"

위풍당당~~ 앞으로 너를 '위풍당당'이라고 부를게~

가시밭 조심하렴~♡♡♡




[눈, 금방 녹을 것]




농원은 바람이 많은 편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걱정이 되는데, 땅에 발목을 넘길 만큼 눈이 쌓여도 우리 농원의 비닐하우스 위에는 바람에 날려서 거의 쌓이지 않았다.



눈의 무게에 눌려 비닐하우스가 내려앉은 뉴스들을 보면, 남일 같지 않아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습설...

어젯밤에 내린 눈은 예상치 못했던 눈이다. 물기를 많이 품고 있어서 바람에 날리지 못하고 그대로 비닐하우스를 덮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햇살이 비쳐서 눈이 녹아내리고 있다. 믿었던 하늘과 바람이 허를 찌르는 일, 세상을 살다 보면, 법에도 없는 일이 생겨서 황당하고 기가 막힐 때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쪽으로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쌓인 눈을 녹이는 뜨거운 힘을 가진 수백만, 수천만의 햇살이 있기에...




[저 높은 곳에]




높은 곳을 좋아하고 절대로 내려오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집을 발견했다. 낙엽도 모두 떨어져 버린 은행나무 우듬지면 어떨까? 그곳이 얼마나 추운지,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이 얼마나 시린지,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한테는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지...





[마땅히 응달로~]




김장 준비로 연일 친정집에 드나들고 있다. 농원 옆집 할머니께서 무밭의 시래기 전용 무를 마음껏 뽑아다 먹으라고 했다. 친정엄마가 김장할 때, 깍두기를 담자고 뽑아오라고 하셨다. 무를 뽑아서 다듬었더니, 시래기가 많이 나와서 엄마께도 가져다 드렸다. 시래기는 말려서 먹으면 영양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굴비 엮듯이 줄줄이 묶어서 말리려고 끈을 찾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튼실한 줄에 시래기를 펼쳐서 걸어 올렸다. 마음먹으면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엮어서 말려야 한다는 결론이 정해지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보면 된다. 새파란 시래기를 말릴 때는 응달에서 말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양달에 말리면 초록색이 흰색으로 변해서 맛이 있을지라도, 먹음직스러운 색깔이 아니라고 만물박사이신 친정엄마가 묘책을 알려 주셨다. 응달에 있어야 할 것이 양달에 있으면, 큰 손상이 생긴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인도해야 되겠다.




[방해꾼 잔가지들]




블루베리는 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는 교육을 들었다. 물을 자주 주면서도 배수가 잘돼야 하는 이유다. 스위치를 누르면 스틱이 팽글팽글 돌면서 화분 위로 물이 떨어지게 된다.



블루베리 나무 밑동쪽, 스틱의 높이와 같은 위치에 잔가지가 많이 나와서 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작업으로 허리도 아프고, 무릎과 발목, 어깨, 고개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잔가지들은 깨끗하게 제거해야 한다. 햇볕도 잘 들고, 물도 제대로 먹어야 나무도 일을 제대로 할 것 아닌가. 나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서둘러, 시급하게, 재빨리, 깔끔하게  잘라내야 한다. 며칠째 가지치기에 매달려 있는데, 엉킨 나무들 사이로 가는 가지들이 박혀 있어서 가지 틈으로 손을 넣어가며 꼼꼼하게 제거하려니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시원하게 정리된 화분들을 보면, 잡념이 사라진 듯 생각도 명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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