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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이상국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50).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오늘 하루



이상국


막힌 배수구를 찾아 마당을 파자

집 지을 때 묻힌 스티로폼이 아직 제집처럼 누워 있다.

사람만이 슬프다.


앞집 능소화는 유월에 시작해 추석 밑까지 피고 진다.

립스틱 같은 관능이 뚝뚝 떨어진다.

꽃도 지면 쓰레기일 뿐.


유럽의 길바닥에는

시리아 난민들이 양떼처럼 몰려다니고

폐지 줍는 노인이 인공위성처럼 골목을 돈다.

누가 울든 죽든 지구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폐지 값을 대폭 인상할 것이다.

지구도 원래는 우주의 쓰레기였다.


대낮에 무슨 음모라도 하는지

동네 개들이 대가리를 주억거리며 골목을 돌아다닌다.

저것들은 여름을 조심해야 되는데


반세기가 넘게 평화가 지속되는데도

누가 또 별을 달았다고 거리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나는 벌써 오래전에 시인이 되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모른다.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누가 울든 죽든 지구는 아무 생각이 없다.



(지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직접 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자연을 해치면 그 해가 머지않아 인간들에게 돌아오듯이 지구는 많은 생각을 한다. 당장은 누가 죽고 사는 것과 내 삶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총칼을 앞세웠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차가운 길거리로 나선 이들과도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치, 그런 것. 관심을 끄고 오락 프로그램이나 보고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다. 그렇지만, 정치는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직접 참여해서 결정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폐지 값을 대폭 인상할 것이다.” 많은 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공약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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