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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의 식감

신미나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49).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가지의 식감


신미나

물탱크에 걸린

해가 짧아졌습니다

야채 장수가 트럭을 몰고

오르막을 내려가고

해가 터진 것처럼

등 뒤에 구름의 둘레가 밝습니다


어제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생각했던 모습과 다르네요

자꾸 웃으면 사람이 약해 보여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왜 웃는 사람

양파가 굴러갑니다

언덕 아래로

감자와 토마토가 굴러갑니다

세상은 이상한 수건돌리기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납니다

등 뒤에 수건이 놓인 줄 모르고

식재료는 둥글고

짓물러서 흠이 많습니다

어느 바닥에서도

잘 구를 수 있습니다

야채는 하나의 색을 입고

벽장 속에, 커튼 뒤에

냄새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한 몸이 되어도

풀이 죽지 않은 푸성귀는

잃어버린 초록을 자책하지 않습니다




* 마음을 붙잡은 문장


등 뒤에 수건이 놓인 줄 모르고



(수건 돌리기는 전래놀이로 운동능력 향상, 순발력, 재미, 웃음, 즐거움을 준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왜 이 놀이가 수건 돌리기 일지 생각했었다. 수건 놓기가 아닐까라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수건을 놓고, 놓은 수건을 들고 도는 것은 사람들인데 말이다. 정확히는 수건 놓고 돌리기? 단체 게임 중에 이만한 게임이 또 있을까 싶게 많이 해 보았던 것 같다. 내 “등 뒤에 수건이 놓인 줄도 모르고” 있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생각지도 않게 무슨 일이 터질 때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내 삶의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삶이 게임이라면 언제 수건이 놓일지 긴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시의 제목이 ‘가지의 식감’이라서 가지에 대한 언급이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정작 본문에는 ‘가지’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는다. 이런 것이 바로 등 뒤에 놓은 수건 같은 시작법이 아닐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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