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규
오늘의 시 한 편 (68).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내 귓속의 저수지
신철규
귓속에
저수지 하나가 들어 있다
저수지 위를 떠다니는 구름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멱을 감고
둑 위에 매어놓은 어미 소가 송아지를 부른다
논물 보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경운기 소리 들린다
돌팔매 하나가 떨어져도
물수제비 하나가 스쳐도
터져나올 듯
허물어질 듯
깨금발을 뛰어도
귓바퀴를 손바닥으로 때려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뜨거운 다리 난간에 귀를 대고
호박똑딱 귀신아, 내 귀에 물 내라.
호박똑딱 귀신아, 내 귀에 물 내라.
호박똑딱 귀신아, 내 귀에 물 내라.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둑 위에 매어놓은 어미 소가 송아지를 부른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징검돌이 놓여 있는 내를 건너야 했다. 지금은 다리가 만들어져 수월하게 다닐 수 있지만, 그때는 통통거리며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이 재미있었다. 장마철에 큰물이 지면, 선생님이 따라와서 한 명씩 등에 업고 건네주었던 넓은 천이었다. 그 위쪽에 보가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엔 보에서 멱을 감곤 했다. 동네 친구들 한 무리가 모여 놀 때, 둑에는 소가 매여 있기 마련이었다. 송아지를 부르는 소리가 나면, 늦었구나 싶어서 서둘러 옷을 챙겼다. 귓속에 들어간 물은 납작한 돌멩이를 찾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물이 빠져나왔다. 돌은 따뜻했다. 막 물에서 나온 찬 얼굴에 온기가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