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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에 농원에서는

by 민휴


"과일들 다 땄는데, 요새는 무슨 일 하냐?"


수확기가 지났다고 해서 농원에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쉼 없이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8월 말에 복숭아 수확을 마지막으로 9월부터 조금 수월해지기는 했다. 수확과 판매, 그런 시급한 일들은 없지만, 복숭아나무 가을전정이 늦었는데, 손도 못 대고 있다. 수확 후 과원 관리가 내년도의 수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농사 일인 것 같다.



농부의 딸인 내가 왜 그것을 모르겠는가. 내 엄마는 일 년 내내 쉴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가족 건사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5대 종부인 엄마는 시부모 봉양은 물론, 일 년에 21번의 제사와 5남매 양육과 훈육, 농사일들을 도맡아 집안을 이끌어 오신 분이다. 바깥일을 하시는 아빠의 내조를 본인의 본분으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사시사철 쉴 틈 없이 살아오신 엄마가 요새는 '쉬는 게 일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루에 한 번 엄마와 통화하는 것을 루틴으로 삼고 있는데, 바빠서 한 이틀 지나버리면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신다.

"우리 딸, 많이 바쁜가?"

"엄마! 하도 바빠서 전화를 못 드렸네요."

"알지! 알지! 일이 어디 끝이 있다냐!"

"그러게요. 오늘은..."

이렇게 한참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이 또 훌쩍 지나간다. 9월은 조금은 덜 바쁘게, 그래도 쉴 틈은 없이 흘러가고 있다.




[25.9.23. 복숭아 밭]



"풀을 못 키우는 땅은 과일나무도 못 키운다"라는 말을 들었다. 풀이 조금 자라나 있을 때는 '초경재배 중'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성장하려는 본능이 있다. 오늘 보다 내일, 현재 보다 미래에 더 나아지고 좋아지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자라나는 풀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빨리 자라서 번식시키려는 본능이 가장 강한 것이 풀이라는 생각.



복숭아밭에 풀은 너무 잘 자란다. 바닥 쪽은 승용 예초기로 제초가 가능해서 한결 수월한데, 두둑 부분이 문제다. 나무와 철골 지지대가 있어서 승용 예초기로 제초작업이 힘들기 때문이다. 승용 예초기로 바닥 쪽을 꼬박 하루 동안 작업하고도 손 예초기로 이틀을 작업해야 깨끗해지는 복숭아 밭이다. 그렇게 애써서 풀을 베도 금세 자라서 4월-9월은 풀과의 전쟁이 아닐 수 없다.



복숭아나무와 철골이 있는 두둑에만 제초 매트를 덮기로 했다. 큰 밭은 진즉에 마쳤는데, 작은 밭은 9월에 작업했다. 풀이 자라서, 모두 뽑아내고, 깨끗하게 만든 후, 제초 매트를 덮었다. 큰 밭의 부직포를 덮어 놓았던 두둑에는 풀들이 제초 매트 양쪽에서 자라서 부직포로 덮여 있는 가운데로 모여서 제초매트를 덮었다. 그 풀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경사로에 쪼그리고 앉아 힘을 쓰다 보면, 팔다리, 허리, 무릎, 손가락 마디마다 아파온다. 이것이 또 풀의 복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제초매트 덮는 일은 큰아들 왔을 때, 시작했던 작업인데 마무리를 못하다가 이달에 휴가 받아 온 큰아들이 도와줘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올 때마다 쉬지도 못하고 큰일들을 해결해 주는 큰아들이 고맙다.











[25.9.24. 콩밭]


하우스 옆을 개간해 만들어진 땅이 스무 평 남짓이다. 감자를 심었다가 콩을 심었다가 번갈아 경작하고 있다.



서리태 콩을 심은 후에, 제초제를 해야 한다는 최 회장님(친정엄마) 말씀을 따르지 못했다. 다른 일들에 밀려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급기야 풀이 자라서 콩을 덮는 경지에 이르렀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콩밭에 들어갔다. 콩꽃이 참 예쁜데, 그 귀한 꽃을 구경도 못하고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풀을 뽑으려고 콩대를 이리저리 젖히다 보니, 주렁주렁 매달린 콩깍지가 보인다.



심을 때부터 한참, 느지막하게 심어서 걱정을 했었는데, 쑥쑥 자라난 콩들이 열매까지 맺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꽉꽉 속이 차오르기를 기원하면서 풀을 뽑았다. 제 키를 덮는 방해꾼들을 제거해 주니, 골마다 바람도 잘 통하게 되었다. 살랑살랑 춤추며 초록 바람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니, 콩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다. 커다란 풀들을 뽑을 때면, 내 속의 나쁜 감정들이 뽑혀 나가는 것 같다. 미움, 불평불만, 게으름...



뽑혀 나간 풀만큼 깨끗해진 콩밭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시원하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수북하게 올라온 풀들 위로 누런 가을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봄부터 시작되었던 풀과의 전쟁도 막바지라서 긴 싸움 끝 휴전의 시간이 반갑다.








[25.9.25. 기차가 지나는 강]



콩밭 두둑의 풀을 뽑고 났더니, 두둑 아래가 심란하다. 콩밭에서 뽑아 던져 놓은 풀과 두둑 아래서 자라난 풀들이 엉켜서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오전 하늘엔 구름이 드리워졌고, 바람이 시원했다. 풀이 크게 자라서 바닥 쪽 흙을 덮고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뽑혔다. 꼬박 세 시간 작업으로 콩밭 아래까지 깨끗해졌다.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이라 허리 쉼도 할 겸 사진도 찍었다. 물소리, 라디오 소리, 손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세상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콩밭 옆에는 90평 하우스 속에서 블루베리 140그루가 자라고 있다. 주변 환경이 깨끗해야 나무도 잘 큰다는 진리를 생각할 때, 밭두둑과 그 아래에 있는 풀까지 모두 제거하고 나니, 블루베리한테도 좋을 것 같아서 정말 뿌듯했다.



올해는 여름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벌레가 적다고 한다. 하우스 바깥에서 자라고 있는 콩밭에도 벌레 먹은 흔적이 없는 편이다. 지나온 자리가 이토록이나 깨끗해서 좋았다. 콩들아! 이제 마음껏 하늘을 안고, 햇살을 품고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튼튼하게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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