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품어 올린 시

김양화 동시집 『기린 된 들풀』(아꿈, 2025)을 읽고

by 민휴


정제된 단정한 언어로 자연의 섭리를 알게 해 주는 동시집을 만났다. 해, 달, 노을, 바람, 풀 등 자연과 어울려 놀다 온 느낌이 든다. 자연에 머무는 마음과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김양화 작가가 이끄는 세계로 들어가 보자.




수평선이 문 열어

종일 수고한 해를 맞는다.

어서 오라고 등 토닥이며

눈매가 빨개진다.

― 「저녁놀」 전문 (p17)


하루를 살아 낸 것들은 하루만큼의 토닥임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수고를 알아주며 다독이고 고생한 시간을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짠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따뜻함이 전해진다. 붉고 노란 노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고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라는 걸.




풀잎이 깨기 전에


먼저 일어나


숲의 초인종을 누른다.


꾹꾹! 꾹꾹!

― 「산새」 전문 (p29)


산새 소리가 숲의 초인종을 누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서가 부럽다. 산새 소리 초인종에 맞춰 깨어나는 숲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나무도 기지개를 켜고 풀잎도 이슬을 털 것이다. 옹달샘도 찾아올 친구들을 위해 제일 먼저 단장을 하겠지. 즐거운 하루가 시작되는 숲을 숨어서 보고 싶어진다.




옹달샘은

엄마 가슴


길 잘못 든

낮달

꼬옥 품어주고

종일 귀 아프게 재잘대는

산새

목 축이게 놔두고

― 「옹달샘」 전문 (p38)


모든 걸 품어주고, 살아나게 하는 존재인 엄마, 옹달샘은 산속에서 조용히 그렇게 큰 일을 하고 있었다. 지친 존재의 생명수가 되고, 편안한 자리가 되는 것. 자애로운 성품을 가진 김양화 작가님의 넉넉한 품을 닮은 시이다.



보이지 않아,

만질 수도 없어.


하지만

주먹질은 저리 가라야.


휘두르고 나면

두고 두고 후회할 걸.

― 「말망치」 전문 (p84)


내가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이 말이다. 내가 한다고 해서 아무런 규제 없이 마구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듣는 사람을 생각해서 바르고 고운 말을 써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 때문에 내 마음이 더 다치고 후회할 수 있다는 것 알게 해 주는 시다.





바람

씽씽 불어도

코스모스

끄떡없어.

내년에 꽃피울

까만 씨 품었으니까

찬바람

맞서

가슴

꼬옥 오므리지.

― 「꿈」 전문 (p90~91)


찬 바람도 센 바람도 꿈을 헤치지는 못한다. 희망이 씨앗을 품은 것들은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종족 번식의 본능적 유전자는 보호기능을 가동해 씨앗을 품게 된다. 어머니가 아이를 보호하는 본능처럼. 어린이들도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말고, 자기의 꿈을, 씨앗을 보듬듯 꼬옥 안고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용기를 주는 시다.




감자 찔 때

껍질이 툭툭 터지는 건

밭두렁에서 들은 이야기

죄다 들려주려는 거지.

바람의 말

들꽃 수런거림

별님 속삭임

― 「속내」 전문 (p93)

감자는 밭두렁에서 온갖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려고 껍질이 툭툭 터진다니 놀라운 발상이다. 그 많은 이야기를 품은 감자를 우리가 먹는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재미난 이야기, 구슬픈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들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다고 연상되면 자연과 내가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김지영 작가님의 삽화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짧으면서도 정갈하게 담긴 이야기에 맞춰 채색된 이미지는 시를 더 빛나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시가 좋으니까 그에 맞는 그림도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잔의 캐모마일을 마셨을 때처럼 어지럽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맑아지는 동시집. 자꾸 읽고 싶어지는 귀한 동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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