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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May 01. 2024

3분의 기쁨들이 모여

봄을 보내며

봄날, 세량지 벚꽃길을 걷는 속도로 살고 싶다. 느리지만 찬란할 만큼 아름답게. 내 아이는 자폐성 장애다. 꽃길에서의 속도로 살고 싶은 봄날이다. 그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는 내내 그런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전국 벚꽃 명소로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있다는 세량지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다. 규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는 차의 주인은 분명,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일 다. 꽃 터널을 방불케 하는 그 길 위에서는 농장에서 일하랴, 가족들 돌보랴, 공부하랴 늘 바쁜 나조차도 속도를 낮추고 꽃길의 속도로 간다.



퇴직 후에 농사를 짓겠노라고 선언한 남편을 따라 느닷없이 농부가 되어 농장을 가려고 그 길로 간다. 고흐의 파란 바탕에 하얀 꽃이 핀 아몬드 나무 그림도 생각나고, 꽃길만 걸으라는 말도 생각나고, 그 일도 생각난다. 짧은 순간이나마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 말이다.  



둘째는 생후 4개월에 홍역을 앓았다. 당시 여든이 넘으신 노모를 모시고 사느라 병원에 입원하라는 의사의 말을 따르지 못했다. 둘째는 3.8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났으며, 산후 검진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홍역을 치르고도 순조롭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순하고 행동도 느려서 걱정되었지만, 시어머님은 ‘제 아비 클 때와 똑같다’라는 말씀으로 나의 걱정을 일축했다.    



생후 30개월 전후로 언어확장이 되지 않고, 신체 발달도 늦어서 소아정신과 검진을 받았다. 수 시간의 검사를 통해 '자폐성 장애' 판정을 받았다. ‘발달장애에 특별한 원인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열로 인한 뇌 손상의 가능성이 있다’라는 결과도 들었다.



시어머님은 신혼 초부터 94세까지 16년 동안 우리 집에 함께 사셨다.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하늘나라에 가면 내 손주 꼭 낫게 해 주마"라고 말씀하셨다. 치매를 앓기도 하셨고, 돌아가시기 5년 전부터 하반신 마비로 누워서 생활하셨다.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병환의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나에게 지인들은 요양병원을 추천했지만, 처음부터 나를 의지하시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 주신 시어머님과 떨어져 살 수는 없었다.



아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상동행동과 늘 기분이 좋아 소란스럽고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이 잘되지 않았다. 지능과 사회성이 낮아 초등 3~4학년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아이가 일곱 살 무렵, 친정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혼잣말을 계속하는 아이에게 큐브를 쥐여 주었다. 한 가지 색으로 맞춰서 달라고 했다. 30초쯤 조용하더니 모든 면이 노란색으로 된 큐브를 건네주었다. 아니, 이렇게나 빨리? 우리 아들이 사실은 천재였어? 묵묵히 운전하던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나도 가슴이 마구 뛰었다.  



노란색 큐브를 차의 앞 유리 쪽에 놓고 SNS에 올리려고 사진을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 마침, 창밖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우리의 기쁨을 마음껏 축하해주고 있었다. 세상에서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꽃길이 있을까 싶었다.



 아이를 치료해 보겠다고 찾아다니던 병원, 치료실, 공부시키겠다고 매달렸던 시간이 한꺼번에 떠올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펑펑 꽃들은 폭죽처럼 우리가 달리는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 꿈같은 꽃길을 통과하는 시간은 3분 정도다. 그렇게 꽃길은 계속될 것만 같았다.



10분쯤 지나자 아이가 다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다른 색깔로 맞춰 줘!”

“못해요!”

“잘할 수 있잖아. 다른 색깔로 맞춰 줘!”

“아니에요. 할 수 없어요!”

아무리 부탁해도 못하겠다고 말한다. 퍼뜩, 떠오르고 말았다.

“너! 혹시, 스티커를 뜯었니?”

“네.”



그랬다. 아이는 무엇이든 뜯어내기 선수였다.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다. 큐브는 노란색 바탕에 색색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아이는 큐브를 맞춘 게 아니라 붙어 있는 스티커를 모두 뜯어내고 원래 바탕색인 노란색으로 맞추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꽃길은 끝이 났다.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장애를 아우르는 말이고, 교육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스물일곱 살 성인 발달장애인의 엄마인 나는 발달장애라는 말조차도 고맙고 따뜻한 단어라고 가슴에 품게 되었다. ‘조금씩이라도 발전할 수 있다’라는 말에 의지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한글을 깨치고 간단한 수 계산을 할 수 있도록 교육했고, 독립심을 길러주기 위한 자립 훈련도 계속 실시하고 있어서 버스 타기, 간편식 조리 등 간단한 활동은 할 수 있다.



아이는 쇼핑백 끈을 끼우는 보호작업장에 다니며 틈틈이 농장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놀면서 보내지만, 부모보다 키도 크고 기운도 세서 도움이 된다. 늘 우리의 보살핌 속에 살던 아들이 우리를 돕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도 자신이 더 귀한 존재가 되었음을 아는지 점심과 저녁에 무얼 먹고 싶다는 등의 주문이 많아졌다.



우리 집은 둘째가 성공하는 자잘한 것들에서 큰 행복을 찾으며 산다. 기특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3분쯤은 걱정을 놓고 웃게 된다. 무언가 하기 싫어서 꾀를 부리는 것도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대견하고, 엄마 아빠의 한마디 말을 흘려듣지 않고 말투를 따라 하거나, 우리가 잊었던 것들을 알려 줄 때도 놀랍다. 철두철미한 분리수거, 반듯반듯한 정리 정돈, 정해진 스케줄 관리 등 좋은 습관들도 많다.



둘째는 요사이 부쩍 스스로 하는 일들이 많아져 으쓱대곤 한다. 엄마를 이기려고 고집을 부려 엄마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잦지만, 그마저도 아이가 성장했다는 것이기에 기쁘고 감사히 여기고 있다.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 아름다운 꽃길을 만들 듯, 3분의 기쁨들이 모여 행복한 삶이 된다는 것을 배워가는 봄날이다. 세량지를 지나는 벚꽃길에서 무수한 꽃송이처럼 자잘한 기쁨들을 더듬어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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