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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May 08. 2024

봄비 따라 기차여행

능주에서 벌교까지 기차여행

농장 앞으로 지나가는 하루 왕복 네 차례 볼 수 있는 무궁화호를 탔다. 언젠가 기차여행을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얼마 후부터 이쪽 노선이 없어지고 나주에서 바로 보성 쪽으로 는 노선으로 바뀐다고 하니 더 서두르게 되었다.



지난주 월요일은 종일 비소식이었다. 복숭아 열매 솎아주기 작업이 밀려 있는데 비가 온단다. 별 수 없이 쉬게 될 상황이라서 차일피일 미뤘던 기차여행을 하면 좋겠어서 휴가를 가자고 했다.



기차시간을 검색해 보니, 능주에서 벌교까지 1시간 10분이 걸렸다. 벌교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35. 기차를 타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벌교에서 유명한 꼬막정식만 먹고 오면 될 것 같았다. 무궁화호는 완행이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쾌적했다. 앞 의자나 건너편과 간격이 KTX보다 넓어 앉는 자세도 편했다.



기차역에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많았다. 아름드리나무들은 초록으로 이파리를 흔들거리며 손짓했다. 산과 들의 풍경이 살아서 말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이 우리의 휴가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날씨가 흐려서 사진은 밝지 않았지만, 푸른 생명력을 마주하고 선 벅찬 감격에 마음은 밝았다.



왕복 두 시간 넘게 차창으로 흘러가는 풍경이 좋아서 사진을 200장 가까이 찍었다. 늘 바라보기만 하던 기차에 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풍을 가는 것 같았다. 어릴 적, 소풍 전날에 잠을 설쳤던 그 마음으로 들떠서 둘째도 나도 전날 밤을 빨리 잠들지 못했다.



벌써, 모내기철이 되었는지 모내기를 끝낸 논도 보였고, 모를 심기 위해 물을 받아 놓은 논많았다. 구불구불 논두렁을 걷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길을 걸을 때면, 개구리나 뱀이 나타날까 봐 지팡이로 풀을 치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보는 논두렁은 평화롭고 예쁘게만 보였다.



벌교역사에는 벌교 특산물인 꼬막을 채취하는 사진과 널배 등의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다. 이렇게 어렵게 채취하는 꼬막을 정말 맛있게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는 생생한 현장과 더불어 태백산맥문학관을 가진 문학여행의 테마 도시로 변모했다.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 원고와 독자들의 필사 원고들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났다. 책으로 읽었던 원고지를 대하는 경이로움과 작가를 향한 마음이 동일시되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불가였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소설『태백산맥』의 첫 시작 장면인 현부잣집과 소화의 집이 있는 제석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학관은, 소설 태백산맥이 땅속에 묻혀있던 역사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산자락을 파내서 특이하게 설계된 건물로 세워졌습니다. - 보성군청 누리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화순 이양에 있는 홍수조절지의 넓은 부지에 놀라워 사진에 담았다.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사랑스러웠다. 자연 그대로 인간들이 건드리고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평화로운 모습 그대로 유지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사월은 나무들의 신비한 힘에 감탄하는 계절이다. 꽃을 피우고, 이파리가 돋아나고 열매를 맺으며 자라는 나무들의 일생이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몸피를 키워가는 나무들의 성장만큼이나 우리도 흙속에 뿌리내리기에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농장이 기차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내다보았다. 은행나무 50여 그루가 도열해 있어서 블루베리 비닐하우스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지석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다 보이는 풍경이 우리의 땀과 눈물이 함께 한 농장이다.



벌교역 앞에 연등을 설치하고 있는 풍경이다. 초록빛이 짙어가는 계절이다. 색색의 연등에 걸린 하나하나의 꿈과 희망이 더욱 커져가고 사람들의 소망도 모두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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