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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r 24. 2024

9. 마운틴 뷰 도시 탐험: 보라색 꽃의 거리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딸과 사위가 일주일 간의 휴가를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딸내외는 내년 가을에는 뉴욕에서 만나자고 굳게 약속하고 떠났지만 딸과 헤어지려고 하니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허전함을 느꼈다.


옛날, 딸아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 날, 나의 친정엄마가

“이제 헤어지면 언제나 만날꼬”

하며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딸아이가 유학을 다녀오고도 한참을 더 사셨다. 그런데도 자식들과 헤어질 때마다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

나의 엄마는 직장 생활하는 딸을 대신하여 우리 집 아들딸을 모두 키워주셨다. 문득 내가 외손녀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훔치던 엄마 나이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차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체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들과 며느리가 우리에게 집 열쇠를 하나 남겨놓고 각자의 직장으로 갔다.

식구들로 북적이다가 이제 남편과 둘만이 남게 되었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밥을 챙겨 먹고 마운틴 뷰 시내 구경을 나서기로 하였다. 우리 밖에 의지할 데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일단 굳건히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우선 마운틴 뷰 시티의 구시가 쪽으로 가 보기로 하였다.

나는 이곳이 높은 언덕도 아닌데 왜 마운틴 뷰(Mountain View)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였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 산타크루즈 산맥이 보인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아들 동네에서 남쪽으로 길게 누운 산들이 보였다.

     

아들 집에서 구시가지에 있는 마운틴 뷰 시청까지는 걸어서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걸어가면서 미국 가정집을 구경하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집들은 낮으막한데, 집집마다 큰 나무가 한 두 그루씩 심어져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나무는 사이프러스도 있었고 히말라야 시다, 향나무도 있었으며 이 고장에 특히 많은 레드우드도 있었다. 집집마다 다 특색 있는 나무를 심어둔 것도 보는 재미를 더했다.


사이프러스가 있는 집


레드우드가 있는 집


태산목이 있는 집


히말라야 시다가 있는 집


키 큰 나무들은 이곳이 오래된 대륙임을 깨닫게 한다. 나무들은 이곳에 살던 인디언들과 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디딘 스페인 탐험대와 스페인 정찰대를 위시하여 미션을 건설하던 스페인 선교사들을 지켜보았을 것이고 이곳에서 일어난 미국과 멕시코 간의 전쟁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에 살다 간 수많은 인생들의 삶의 모습을 지켜본 증인이 되었을 터였다.


어떤 집 앞에 커다란 참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저 나무 가지에는 아이들이 그네를 걸고 놀던 추억이 서려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큰 참나무가 있는 집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어린 시절의 검프와 그의 여자 친구 제니가 사이좋게 걸터앉아 놀던 큰 나무 덩걸이 등장한다. 검프와 제니가 걸터앉아 놀던 그 거대한 나무까지는 아니어도 집 안에 큰 나무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았다.


<포레스트 검프>의 나무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쓸 때

“어릴 때 우리 집에는 큰 레드우드 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라고 시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낭만적으로 펼쳐질지 상상이 가지 않은가!


이곳 주민들은 모두들 정원 가꾸기에도 열심인 듯 집집마다 정원이 개성 있고 아름다웠다.

내가 줄곧 주장했듯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보라색 꽃을 사랑함에 틀림없다. 마운틴 뷰 시내를 천천히 걸은 이날 관찰한 보라색 꽃들에 대해 몇 가지 피력해볼까 한다.


마운틴 뷰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보라색 꽃은 멕시칸 세이지인 듯했다. 싱싱하게 뻗은 보랏빛 꽃무더기가 가정집 정원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많이 보였다. 도시를 우아하게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꽃이 단연 멕시칸 세이지였다.

 

어느 가정집 정원의 멕시칸 세이지와 차이브


멕시칸 세이지와 라벤더가 있는 정원


길거리의 멕시칸 세이지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꽃나무는 티보치나라는 큰 보라색 꽃을 피우는 나무였다. 이 티보치나는 색깔도 화려하고 꽃도 커서 단번에 이방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티보치나는 본래는 브라질이 원산지라고 하는데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듯, 어디에서도 이 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마운틴 뷰 동네에서는 가정집 울타리 나무로 이것을 많이 심고 있었다. 그런데 꽃말이 ‘말괄량이’라니 의외였다.


어느 가정집 정원에 심어진 티보치나


티보치나



또 다른 집의 울타리 나무로 심어진 티보치나


가까이에서 본 티보치나: 말괄량이처럼 보이는가?


마운틴 뷰에서 자주 만나는 대표적 보라색 꽃으로 리모니움 페레지(Limonium perezii)를 뺄 수 없다. 우리말로 갯질경이를 리모니움속이라고 부른다는데, 잎모양을 보면 틀림없는 질경이의 잎이나, 질경이라고 하기에는 꽃이 너무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 질경이라고 하면 밟아도 밟아도 일어서는 대표적 잡초로 여겨지고 있는데, 질경이과에서 어쩌면 저런 탐스러운 보라색 꽃무더기를 만들었는지 볼수록 신기하였다.

보라색 꽃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리모니움 페레지의 꽃은 꽃무더기의 끝에 붙어있는 흰색이고 그 흰꽃이 떨어지고 나면 보라색의 꽃부리가 남는데, 그것이 마치 커다란 꽃잎처럼 여겨진다.

보라색의 큰 꽃무더기를 자랑하는 이 꽃을 가정집 정원에서는 물론 가로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들 집 가까운 곳에 큰 중국 마트가 있는데 그 마당에는 온통 리모니움 페레지가 심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중국인들이 보라색 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다시 들었다.   

영어 이름으로는 Perez's Sea Lavender, Seafoam Statice라고 불린다고 한다.  봄 철에 꽃을 피우면 가을까지 풍성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다.


길거리의 리모니움 페레지


시청 앞 화단의 리모니움 페레지


중국 마트 앞 화단의 리모니움 페레지


또 하나 빠뜨려서는 안 되는 보라색 꽃이 캘리포니아 라일락이다. 캘리포니아 라일락은 캘리포니아 자생식물이라고 하니 이 땅의 진정한 주인공이 이 꽃인지도 모르겠다. 이 식물은 청자색 꽃무더기를 피우는데,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짙은 푸른색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가을에 보면 보라색을 띄고 햇살이 강한 봄, 여름에는 푸른색을 띤다.

캘리포니아 라일락은 향기가 강하고 꿀을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꿀벌들이 몰려오는데, 내가 이 꽃을 보았을 때도 벌들이 윙윙거리며 꿀채집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 꽃에 유독 뒤엉벌처럼 생긴 큰 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뒤엉벌은 보라색 꽃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벌이다.  


가을의 캘리포니아 라일락: 청자색을 띈다


봄 여름철의 캘리포니아 라일락: 청색을 띈다


꿀 채집에 바쁜 뒤엉벌들


하나 덧붙이자면 라벤더도 가정집 정원에 많이 심어놓았다. 

 

프렌치 라벤더


프렌치 라벤더


마운틴 뷰 구시가지에 위치한 시청은 한적하게 보였다.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인구 천만의 서울에서 들볶이며 살아서인지 이곳의 한적한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마치 서부개척 시대의 마을에 온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시청 앞의 도로나 건물 앞에도 멕시칸 세이지나 리모니움 페레지,  버베나 같은 보라색 꽃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시청 앞 건물의 버베나 꽃 무더기


가로의 화단을 장식한 버베나


점심시간이 되자 구시가지의 식당들이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다. 거리 가운데에 파라솔이 펼쳐지고 어디에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노천식당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리도 한 파라솔 아래에 앉았다.

첫날은 일본식 라면을 먹었고 다음날은 태국식 요리를 먹었다.   

미국은 팁문화가 있어서 인지, 아니면 본래 서비스 정신에 충실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종업원들이 친절했다.


구시가지의 노천식당들


노천식당의 파라솔에 S자 고리를 걸고 남편이 뱃줄식사를 하자 종업원들이 티 나지 않게 배려해 주는 것이 역력히 느껴졌다. 나는 팁을 최고 수준으로 체크하였다. 라면을 먹고 낼 팁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 나름의 감사 표시를 한 셈이었다.


파라솔에 경관식을 걸어 식사를 하였다.


시청 근처에 마운틴 뷰 역이 있었다.

우리는 마운틴 뷰 시가 구경을 하면서 역사(驛舍)를 유심히 살펴두었다. 이곳의 역사는 마치 서부개척시대의 것인 마냥 조촐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운틴 뷰 역사(驛舍)

 

역사 앞에는 생뚱맞게 가방을 여러 개 두고 앉아있는 남자의 조각상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황금을 찾아 서부로 찾아오던 남자의 모습인지, 아니면 황금을 찾아 고향으로 떠나는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저 남자가 어디서 출발하여 이 역에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도 이 역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마운틴 뷰 역사 앞의 조각상:  황금을 찾아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인가?

          

역사 앞에서 만난 아름다운 꽃사진 하나를 더 덧붙인다. 박태기였다.

참고로 이곳에는 박태기나무가 가로수로도 심어져 있었는데, 봄철에 환상적인 보라색 꽃을 피운다.


박태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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