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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r 12. 2024

7. 나파 밸리에서의 사흘(2)

뱃줄 달고 미국 여행


어제는 밤늦게 숙소에 도착하여 이곳의 전체적인 지형 파악이 되지 못했다. 그저 어둠 속의 숲길을 헤쳐 한적한 산중의 집에 도착하고 보니 마치 귀곡산장에라도 든 듯 썰렁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보니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눈 아래에 펼쳐진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이곳은 나파밸리의 북동쪽 산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듯, 나파 밸리를 감싸고 있는 건너편 산맥 아래로 나파의 포도밭 전경이 아스라이 보였다. 주위의 오크나무 숲에서는 새들의 요란한 지저귐이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크나무 숲 사이로 우리가 든 산장과 비슷한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곳도 있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나파밸리 전경


밖으로 나가보니 땅바닥에 도토리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바로 집 옆으로 커다란 오크트리가 약간 몸을 비틀듯이 자라고 있었다. 나파의 도토리들은 알이 굵었다. 미국은 나라가 크니 도토리도 크구나 하고 생각하며 나도 몰래 도토리를 줍기 시작하였다. 도토리는 금세 한 바가지는 되었다. 어느새 바깥으로 나온 사위가 장모를 도와 도토리를 주워주었다.


나파밸리의 산장 곁에 서 있는 오크트리


그런데 나의 도토리를 보더니 결백증이 있는 아들이 질색을 하였다. 벌레가 많으니 집에는 가지고 가지 말자고 하였다. 아들이 질색을 하니 남편도 아들 편을 들어 나더러 버리고 가자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굳이 고집을 부려 그걸 차에 실었다. 식구들에게 도토리묵의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은 한국모정을 누가 말릴 것인가!


나파밸리의 도토리


둘째 날 우리가 방문한 와이너리는 <Frog's Leap>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존 윌리엄스라는 사람이 1981년에 설립하였다고 한다. 원래 개구리 양식장인 곳에 와이너리를 설립하였다고 하여 와이너리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건물 입구에서부터 안락한 느낌이 드는 것이 마치 집에 돌아온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Flog's Leap Winery>의 라벨 모습


우리는 이곳에서 그야말로 ‘와이너리 투어 다운 투어’를 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와이너리 투어 다운 투어’란 포도밭을 직접 보고 포도 저장고도 둘러보며 그곳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마셔보는 그런 시음행사였다. 전날의 <알테사>에서는 한자리에 앉아 내주는 포도주만 여러 종 마셔보는 정도여서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은 나파밸리에서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와이너리답게 포도밭에서 포도 품종별로 포도를 볼 수도 있었고 투어 도중 포도도 자유로이 따먹어 볼 수도 있었으며 예쁜 꽃과 벌나비도 만날 수 있었다. 와이너리 중간에도 와인이 제공되었지만, 순회  마지막 장소에 도착하니 간단한 안주와 더불아 와인을 몇 잔 더 마셔볼 수 있도록 세팅이 되어 있었다. 와인뿐만 아니라 빵과 치즈맛도 훌륭하였다. 누군가가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투어를 하려고 한다면 꼭 이 와이너리를 추천하고 싶다.


카베르네 소비농 포도


와인 저장고


시음회


셋째 날에 우리가 방문한 와이너리는 <Domaine Carneros Winery>였다. 이 와이너리도 나파밸리 초입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Artesa>가 저 멀리 건너편에 보였다. 이 와이너리는 프랑스 와이너리의 샤토처럼 생겨 마치 프랑스 와이너리를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역시 프랑스 와인 경영자 끌로드 때땅제가 설립하였다고 한다( 1987년).


                                                               <Domaine Carneros Winery>의 전경


아름다운 샤토 때문인지 이곳은 방문자들의 인기가 높은 곳처럼 보였다. 건물 바깥에 마련된 테이블마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로 그득하였다. 나파밸리는 실리콘 밸리에 가까워 주말마다 실리콘 밸리의 IT업체에 근무하는 화이트 칼라 엘리트층이 자주 찾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마주 보며 와인을 즐기며 환담을 나누는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나파밸리를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이곳에서 삶의 여유도 함께 배워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곳은 특히 스파클링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여 우리도 스파클링 와인으로 테이스팅을 하였다.  와인의 향기가 거품을 타고 더욱 향긋하게 전해지는 듯하였다.



이 와이너리에는 새들이 많아서 이채로웠다. 테이블 파라솔 지붕 위에도, 나무 그늘에도 검은 새들의 노란 눈이 테이블을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잽싸게 날아와 와인 안주들은 낙야채 달아났다. 새들의 공격을 받고 들리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이곳의 흥겨움을 더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 왜 새가 이렇게 많으냐고 물었더니 지배인은 본래 새들이 이곳의 주인이었다고 농담을 하였다. <Flog's Leap Winery>가 개구리 양식장에 설립되었듯 어쩌면 이곳도 검은 새들의 본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며 손님들에게 집세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을까?. 유독 이곳에만 검은 새들이 많이 있어 흥미로웠다.





나파밸리에서의 마지막 밤에 우리는 산장에서 우리끼리의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나는 우리식구들만의 오붓한 자리가 마련되자 한마디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며 식탁 주변을 서성거리자 아들이 눈치를 채고 “어머니 한마디 하시지요” 하며 자락을 깔아주었다. 나는 온 식구가 다 모여서 하는 저녁이 너무 좋아 오랫동안 이 광경을 가슴에 간직하였으면 하는 소망을 품었다. 그래서 가족을 대표하여 감사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떤 어려운 난관을 만나더라도 사랑이 가득한 이 순간을 기억합시다”라고 한마디 하였다. 하고 보니 약간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사위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사실 우리는 사위와 가까워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사위와 딸은 결혼하고 금방 미국으로 가버렸고 그 후 한, 두어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일주일을 가까이서 지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함께 가까이 지내며  우리 부부는 사위가 품성이 바르고 사상이 건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기뻤다. 한국말로 유창하게 대화가 되지 못하여 약간 어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위에게는 한국청년들에게는 없는 순진함이 있었다(한국 청년들은 생각이 많다).

특히 나는 우리가 샌프란에서 마운틴 뷰로 돌아올 때 사위와 나눈 이야기로 인해 사위와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여행의 피로로 인해 남편과 딸이 잠든 사이 나는 사위와 대화를 나누었다. 사위가 졸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대화 도중 자주 “Do you understand? ”하며  사위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면 사위는 고개를 끄떡이며 알아들은 척을 했다.

아무튼 그 대화를 통해 우리는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같이 읽었고 그 소설에 같이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사위는 66번 도로를 달려 뉴욕에서 LA까지 여행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거야말로 나의 소망이었기 때문에 나는 사이와의 사이에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언젠가 그렇게 해보자고 사위와 약속하였다. 그날이 올지 안 올진 알 수 없지만  약속은 아름다운 법이다.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날씨에 주의를 기울이며 캠프파이어의 시간을 가졌다.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가득하였고 나는 우리 가족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아름다운 이 밤을 기억하기를 마음속으로 다시 빌어보았다.


나파밸리 밤하늘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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