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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r 22. 2024

8. 며느리와 친해지기: 호박 요리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며느리가 멋진 요리를 하였다. 커다란 호박의 속을 파내고 그 속을 훈제 오리고기로 채운 다음 쪄내는 요리였다. 직장에서 돌아온 아들과 며느리가 큰 호박을 앞에 놓고 속을 파내느라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며 만든 요리였다.

완성된 호박을 접시에 담아내자 제법 근사하게 보였다. 남편과 나는 아들 내외와 식탁에 앉아 호박 요리를 먹었다. 보기에는 근사했지만 조리시간이 부족했던지 호박은 충분히 익지 않아 서걱거렸다. 그래도 나는 며느리를 칭찬해 주었다.      


며느리에 대한 칭찬은 가식 된 것은 아니었다. 만삭의 며느리가 직장에서 돌아와 부지런히 움직이며 이런 거창한 요리를 해내었다는 것이 기특했다.

나는 며느리에게

“어떻게 이런 요리를 할 생각을 했어?”

라고 물었다.

아들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날 사실은 이 요리를 하여 온 식구가 함께 먹을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아들 내외가 메뉴를 짜고 시장을 보며 우리를 맞이할 준비에 고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우리가 아들 집에 도착한 첫날, 남편은 온 가족이 만났으니 함께 식당으로 가서 축하 만찬을 하자고 제안하였고 둘째 날은 딸 내외와 샌프란시스코 구경을 하다가 베이브리지 아래의 한 식당에서 굴요리를 먹었다. 셋째 날은 며느리 생일이어서 온 가족이 일본 스시 식당에서 축하 파티를 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며느리가 큰 냄비에 국을 끓이고 밥솥에 밥을 한가득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호박요리까지 하지는 않아서 저 호박이 오늘에 사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아들 내외는 밥은 소분하여 냉동실에 두고 쓸모없이 된 국은 다 쏟아 버렸다고 하였다. 남편과 나는 만삭의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가급적 밖에서 식사를 하려고 배려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아들 내외의 준비를 우리가 쓸모없이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는 정성껏 끓인 국을 쏟아부어 버릴 때 며느리가 느꼈을 좌절과 분노가 느껴졌다.      

아들과 단둘이 근처 한국인 슈퍼로 갈 때 아들이 내게 물었다.

“며느리와 시집 식구들이 사이좋게 지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그 물음에서 나는 아들이 우리를 초대해 놓고도 제 처의 불편한 심기를 해소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눈치챘다. 나는 며느리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만삭의 시기에 시집식구들이 대거 몰려왔고, 게다가 어려운 시부모가 한 달간이나 저희 집에 머무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부담이 클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 며느리와는 아직 서먹한 사이였다. 아들이 미국 대학에서 며느리를 만났고 둘이서 결혼하겠다고 우리에게 통보하면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둘 다 직장이 있었고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시기였기 때문에 결혼은 간단하게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들내외는 바로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우리가 며느리와 제대로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아마도 며느리는 우리를 경계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아들에게 대답했다.

“서로 상대에 대한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시부모나 시누이를 좋게 보려는 마음. 꼭 시집식구여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호의. 시월드에서 그런 마음을 갖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보통 상대에 대한 닫친 마음으로 관계를 가지다 보면 언제든지 관계를 단절한 기회만 찾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브런치 스토리>에 올라와 있는 많은 고부갈등의 사례들을 읽으면서 고부란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만나는 사이가 아닌가 하고 의심한 바 있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상대가 좋아질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마음의 문을 닫으려고 준비하고 있으면 그런 기회만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나는 나와 나의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시어머니는 시골 노인이었지만 참 대단한 분이셨다. 억척같이 일해서 집안을 일으켰고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를 오래 담당하시면서 평범한 시골 마을을 일신시키는데 전력하셨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업적 보다 나는 나의 시어머니의 인간적인 면모를 흠모하고 사랑하였다. 통이 크고 유머가 있으며 며느리를 사랑해 주시는 그 마음이 훌륭했다. 내가 시어머니를 좋아했던 탓인지, 시어머니가 나를 사랑해 주셨던 탓인지 우리는 사이좋은 고부관계로 지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셔서 그것이 슬플 뿐이다.  

  

나는 며느리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며느리에 대한 내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였다.

우선 며느리의 장점을 찾아보았다.

첫째 며느리의 음식 솜씨가 나쁘지 않았다. 하루는 황태해장국을 끓여내었는데 마치 살림을 오래 산 부인처럼 맛을 잘 내었다. 나는 며느리의 요리솜씨를 칭찬해 주었다.

“너는 공부만 한 줄 알았는데 어떻게 오래 살림을 산 부인네처럼 요리를 잘하니!”

하고 내가 칭찬하자 며느리보다 아들이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저 사람 음식 잘해요.”

하고 아들이 으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더 나아가 아들은

“저희 장모님도 음식 솜씨 좋아요”

라고 하며 장모 음식 솜씨까지 자랑하고 나섰다.

나는 순간 좀 서운하였다. 우리 집에서 나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던 유일한 인물이 이 아들이었다. 아들은 내가 카레를 끓이거나 냉이된장국을 끓여주면

“흠... 호텔보다 나은데요”

하며 기꺼이 나의 음식을 칭찬하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제 엄마가 왔건만 엄마의 된장찌개가 그리웠다든가 하는 소리는 일절 하지 않고 제 마누라와 장모 요리솜씨만 칭찬하다니!. 좀 섭섭하였지만 아들이 제 처 요리에 만족한다니 다행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둘째. 며느리는 전문가로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포스트 닥을 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현재 실험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가끔 물어보았다. 좀 샤이하게 보이던 며느리가 내가 전공 관련 질문을 하면 순간 희색을 띄며 열심히 실험 내용을 설명하였다. 아들도 곁에서 제 처의 업적을 거들며 칭찬하였다. 며느리는 생물을 전공하였고 스탠퍼드 의과대학에서 연구 중에 있다. 현재 연구 중인 과제는 노화와 암에 관한 것이라고 하였다. 노화가 일어날 때 근육 단백질에 일어나는 변화를 특별히 연구하고 있다고 내게 설명했다. 며느리가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했지만, 그것은 나의 이해영역을 넘어서는 내용이었다. 며느리는 현재까지의 실험결과를 세계 유명학회지에 투고하고 있다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대학에 잡을 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나는 며느리에게서 과학자의 열의를 느꼈다. 그것이 좋았다. 나는 며느리의 논문 내용이 훌륭하다고, 열심히 연구하면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며느리를 격려하였다.     


무엇보다 며느리의 훌륭한 점은 아이를 사랑하여 임신하려고 애를 썼다는 사실이다. 요즘같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시대에 더군다나 자기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을 터인데 임신을 하였고 그럼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는 며느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들에게

“우리 아들이 눈이 높은 줄은 알았지만, 며느리를 보니 네 안목이 뛰어나다는 것을 다시 알겠구나”

하며 아들을 칭찬해 주었다. 이번에는 며느리가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며느리가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며느리가 나에 대한 경계를 약간 허무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돌아올 즈음이 되자 며느리가 내게

“어머님은 참 아는 것이 많으신 거 같아요.”

하며 나를 칭찬하였다.

“그래 이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면 되는 거야”

라고 나는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며느리의 호박 요리는 우리가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나는 다음날 이것을 푹 익혀 맛을 더 내 볼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아들내외는 남은 음식을 다 디스포저에 넣고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 아까운 것을!      


그런데 호박에서 파낸 속이 남았다. 호박씨와 씨에 붙어있는 과육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뒤뜰에 소복이 쏟아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의 다람쥐들이 몰려와 호박씨 만찬을 벌였다. 청설모도 있었고 미국 다람쥐도 있었다. 나는 문간에 기대 다람쥐들이 호박씨 식사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람쥐들은 사람의 인기척에는 신경도 안 쓴 채 열심히 호박씨를 먹거나 땅을 파 숨기기 바빴다. 담장 위를 뛰어다니며 친구들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지난번 나파밸리에서 가져온 도토리도 결국 마을 다람쥐들의 양식이 되고 말았다. 거의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람쥐들이 호박씨를 다 처리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의 다람쥐나 청설모와 비교가 되지 않게 체격이 큰 미국 다람쥐들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뒷날 <자이언캐년의 한국다람쥐>라는 글을 쓴 계기가 되었다.


뒤뜰의 청설모: 영양이 좋아 털에 윤기가 흐른다.


미국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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