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줄 달고 미국 여행
마침내 그랜드 캐년에 도착하였다. 죽기 전에 그랜드 캐년을 한번 보아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과연 그랜드 캐년은 노래를 부를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었다.
우리의 다른 여행팀은 헬리콥터 투어를 예약해 두어 캐년 입구에서 우리와 헤어졌다. 이 거대한 풍경을 한눈에 보려면 헬리콥터 투어가 제격일 것 같았지만 남편과 나는 그냥 두 발로 걷는 쪽을 택하였다.
예전에 히말라야에서 탔던 경비행기의 추억이 별로 좋지 않게 기억되어 있는 까닭이었다.
대학시절에 산악부 활동을 했던 나는 잠시 히말라야의 고산을 등정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히말라야에 대한 꿈은 잊었지만 네팔을 갔을 때 아내의 옛 꿈을 기억한 남편이 히말라야 경비행기를 예약하였다. 그러나 구름이 끼어 눈 아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종사는 관광객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골짜기 깊이 내려가곤 했는데 그것이 굉장히 두려운 기억으로 남았다. 다시는 경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때 생겼던가 보았다. 우리는 확실한 우리 두 다리에 의지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캐년의 전경을 가장 잘 둘러볼 수 있는 사우스 림으로 갔다. 오솔길을 따라 걸어간 끝에 전망대가 나왔다. 그리고 눈아래 엄청난 비경이 펼쳐졌다. 숨을 멎게 하는 웅장한 대자연의 모습이었다.
고원의 평평한 지형 아래로 한없는 깊이로 땅이 깎여있었고 마침내는 콜로라도 강줄기가 있는 곳으로 땅은 하데스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보였다. 한없는 깊이의 어둠은 경탄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하데스의 아가리가 저런 모습일까. 만일 <신곡>을 쓴 단테가 생전에 이곳을 보았다면 죽은 영혼이 타고 가는 배를 띄우는 강으로 콜로라도 강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세계인들의 버킷리스트를 조사해 본다면 그랜드 캐년이 틀림없이 일등을 차지할 것 같았다. 세계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전망대에 서서 거대하게 펼쳐진 대자연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콜로라도강과 바람이 빚은 거대한 협곡을.
그랜드 캐년을 만든 콜로라도강은 로키산맥에서 발원하여 라스베이거스 쪽으로 흐르는데 이것을 막아 후버댐을 만들면서 거대한 호수인 미드호가 탄생하였고 후버댐을 거친 콜로라도강은 캘리포니아만으로 흘러간다고 하였다. 그랜드 캐년의 총규모는 길이 450km(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이다), 폭 3~30km, 깊이 1,000~1600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콜로라도 강의 침식작용과 바람에 의해 이 거대한 골짜기가 만들어졌다고 하니 실로 대자연의 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랜드 캐년을 만드는 지형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먼저 7000만 전~3000만 년 전에 지각운동이 일어나 이 지역 땅이 융기하면서 평평한 콜로라도 고원을 형성하였고 그 후 약 600만 년 전~500만 년 전부터 콜로라도강이 지반을 깎아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그랜드 캐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랜드 캐년의 아래 모래층은 이곳이 과거에 바다였음을 입증하는 바다 진흙이고, 빨간 층은 화산 폭발로 생성된 부분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20억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된 거대한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자연을 바탕으로 이곳에 인디언들이 삶의 터전을 닦았고, 백인들에게 몰린 인디언 여러 부족들이 지금도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살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지역이 나바호 인디언 자치국이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해병대의 암호통신병으로 참여하였는데 나바호족의 언어로 된 암호로 인해 일본과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미 정부는 이들에게 광활한 자치국을 허용했다.
나바호자치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랜드 캐년 웨스트 림에서부터 이스트 림에 걸쳐 왈라파이(Hualapai) 족, 하바수파이(Havasupai) 족 등의 인디어 보호구역이 있는데, 이 부족들은 서기 5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이 지역에 살았던 코호니나(Cohonina) 인디언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그랜드 캐년에는 이 지역에 살았던 인디언의 전설이 남아있다. 먼먼 옛날, 인간의 질병과 고통을 가엾이 여긴 태양신의 아들이 인디언 추장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 그랜드 캐년 근처에서 의술 활동을 벌였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있는 선한 본성을 깨닫고 이 본성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밝혀주는 치유를 시작했다. 그런데 외부 세력의 침략을 받아 그도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가 죽기 전 “내 몸은 비록 죽더라도 나의 영혼이 이 그랜드 캐년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그랜드 캐년의 붉음은 살아있는 내 영혼의 증거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그랜드 캐년의 림 주변의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20억 년 전쯤 형성된 지구의 지각운동이 만든 붉은 사암지대는 어느 인디언 현자의 영혼이 남아있다는 증거라고 하였다. 나는 어디엔가 남아있을 인디언들의 영혼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인생사진을 건진다고 위험한 암벽 위에 올라가 두 팔을 벌리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여럿 보이기도 했다. 일전에 이곳에서 사고를 당한 한국 대학생 사건이 기억났다. 보호장치가 별로 보이지 않는 쿨한 곳이 미국 관광지이니 만치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석양이 지는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함을 보기 위하여 이스트 림의 데저트 포인트(Desert Point)로 이동하였다. 그곳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해가 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해가 지고 있고 계곡 사면을 통해 햇살이 긴 여운을 이끌며 기울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유명한 일몰지역이라고 하였다. 나는 절벽 끝에 앉아, 지는 태양을 응시하였다. 장대한 골짜기가 내 품으로 몰려오는 것 같은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 사진을 찍어준다는 가이드의 권유에 일행 중 내가 제일 먼저 절벽 끝에 나 앉았지만 사실은 다리가 떨렸다. 그런 후에 아래의 인생사진 하나가 완성되었다. 나는 이 사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살아서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그랜드 캐년에서 인생 사진 하나를 건지게 되어 기뻤다.
우리는 <그랜드 서클 투어>의 거점도시인 플래그스태프(Flagstaff)에서 일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랜드 캐년의 장관에 취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늦었다.
가이드는 깜깜한 밤길을 바쁘게 운전해 나가고 나는 창에 기대 어두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수많은 별이 내려와 명멸하기 시작하였다. 아! 저렇게 많은 별이 보이다니.
감탄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한적한 어느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나는 가이드의 계획을 간파하였다.
과연 우리는 차에서 내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소위 <별 보는 밤> 프로그램이었다.
서부 지역은 불빛이 별로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라고 하였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별빛이 가장 밝게 빛났다.
남편은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왼손으로 별을 가르쳤고 나는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가이드의 연출이었다). 근엄한 남편이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즐거웠다. 여행은, 대자연은 우리의 허례의 껍질을 벗기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디언 영혼의 노래는 그랜드 캐년의 붉은 사암에만 스며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명멸하는 별 가운데에서도 반짝이고 있는지 몰랐다.